예술과 함께하는 쉼, 부산을 가다

황다나 2024. 5. 29.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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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부산으로 향하는 여정은 발견으로 가득하다.

해안선을 따라 내륙으로는 산을 끼고 자리한 부산은 예로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휴양지다. 2004년 경부고속철(KTX) 개통 이전부터 이미 해운대해수욕장, 오륙도, 태종대 등을 찾은 인파에게 피서지의 대명사로 손꼽혔다.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대한민국 임시수도 등 굴곡진 시기를 거친 만큼 근대 건축유산 또한 오롯이 품고 있다. 도시가 지닌 다채로운 매력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1990년대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출범과 부산시립미술관 개관으로 문화예술 분야의 관광자원이 더해지고, 2002년 부산비엔날레와 2012년 아트부산의 전신인 아트쇼부산이 등장하면서 아름다운 해변 도시에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한층 다양해졌다. 자연경관과 역사, 문화예술, 미식까지 갖춘 오늘날의 부산으로 향하는 여정은 발견으로 가득하다. 아트부산 2024를 계기로 도시의 미술관, 갤러리에 정성스럽게 준비한 전시들이 연달아 오픈하며 도시 전체가 들썩였다. 지난 5월 12일, 나흘간의 아트 페어는 성료했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의 흔적은 곳곳에 남았다. 아트부산 2024과 이 시기에 맞춰 연 볼만한 전시들을 한 데 모아 소개한다.

아트부산 2024
올해로 13회째를 맞이한 아트부산은 키아프리즈(KIAF+FRIEZE)에 이어 국내 2위 규모 미술장터로 자리매김했다. 2024년 에디션에는 전 세계에 불어닥친 경기 침체의 여파로 전년도 22개국 145곳에 비해서 규모가 소폭 줄어든 20개국 129곳의 갤러리가 참여했지만, 한결 쾌적한 부스와 동선을 연출할 수 있었다. 널찍한 부스 자리에 작은 미술관이 들어선 듯 큐레이팅한 공간 조성으로 호평을 받았다. 동기간 타이페이 당다이, 뉴욕 TEFAF와 같은 해외 아트페어 개최로 원앤제이갤러리, 갤러리바톤, 더페이지갤러리를 비롯한 일부 갤러리가 불참한 것은 아쉬웠으나, 만 40세 미만 신진 작가를 조명한 ' 퓨쳐(FUTURE)' 섹션의 한층 강화된 콘텐츠가 부재를 메웠다. 올해 외부에서 커미셔너를 선임한 특별전 ' 커넥트(CONNECT)' 섹터는 갤러리 부스 사이사이에 배치되어 현대미술의 다채로운 면모를 제시했다. 현대미술을 견인한 여성 아티스트를 조명한 '허스토리(HERSTORY)', '포커스 아시아: 차이나(FOCUS ASIA: CHINA)', '존 지오르노: DIAL-A-POEM' 부스 등의 수준 높은 전시는 마치 아트 바젤 홍콩의 인카운터스(ENCOUNTERS)를 연상케 했다.
아트부산 2024 (제공: 아트부산)

4월 20일 공식 오픈한 2024 베니스 비엔날레의 여파가 아트부산 곳곳에서 포착된 점 또한 흥미로웠다. 89세의 나이로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작가로 초청되어, 전성기를 맞이한 1세대 조각가 김윤신과 한국관에 참여한 구정아 등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국제전의 공식 병행 전시인 달집 태우기 개인전을 베니스 빌모트 재단에서 선보이고 있는 '숯의 작가' 이배의 작품은 부산 기반의 조현화랑 부스뿐 아니라, 화랑의 달맞이 공간에서도 〈흐르는〉 개인전을 통해 공개된다. 국내에서 유명하지 않은 해외작가 작품은 평소보다 고전해 미술계 불황에 투자 가치를 중시하는 국내 컬렉터의 성향이 드러났다. 한편 홍콩, 자카르타, 싱가포르 등에서 해외 컬렉터가 방한한 점은 고무적이었다.

김윤신(b. 1935),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 2019-27〉, 2019, Quebracho wood, 61 x 59 x 22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리만머핀
부산 아트위크
지난해에 이어 선보인 부산 아트위크 프로그램은 부산을 찾은 미술애호가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한 손에 가볍게 들고 다니며 도시 탐험에 길라잡이로 삼기 제격인 미니 가이드북에는 역동적인 항구도시의 근대사가 잘 보존된 문화유적, 예술 공간 외에도 로컬 F&B, 머물 곳(STAY)까지 두루 제안했다. 2016년 서울 편 출시 8년만인 2024년에 미쉐린 가이드 발간 도시로 처음 이름을 올린 부산의 미식 지도는 물론이고, 특유의 역동적이고 다층적인 매력이 녹아든 공간 소개 중 ' 노포(NOPO)' 섹션이 특히나 눈길을 끈다.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오래된 점포”를 뜻하는 노포에는 오는 6월 말이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예정인 해운대 인근 포장마차촌, 일명 '이모카세'가 포함되었다. 포장마차촌 철거 전 부산을 방문한다면 꼭 놓치지 말자.
아트부산 2024 부산아트위크 ©ART BUSAN Inc. (제공: 아트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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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현대미술관 〈이것은 부산이 아니다 전술적 실천〉 기획전
낙동강 하구 을숙도에 자리한 부산현대미술관은 동시대 미술에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전시기획으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부산시립미술관이 이우환 공간을 제외하고 장기휴관에 돌입한 현시점에 부산비엔날레의 주요 전시관인 부산현대미술관의 존재감은 더 빛을 발한다. 현재 진행 중인 〈이것은 부산이 아니다: 전술적 실천〉기획전은 로컬리티의 의미를 모색하고 재정의한다. 전시는 복수의 목소리와 작가의 관찰자적 시선을 빌려, “체화된 기억”의 집합체인 과거, “불안-조율-공존” 속 습관적인 일상으로의 지금, 나아가 “미래로의 연결망”으로 이어지는 경험, 뒤섞이고 흐려진 경계 감각을 이야기한다. 더불어, 작년 신설된 미술관 소장품 상설 전시 공간 '소장품섬'에서는 〈마크 리: 나의 집이었던 곳〉 전시가, 지하 1층 전시실에서는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관심을 갈망해 온 인간의 본능적 욕망을 탐구하며 이를 현대미술의 다양한 맥락에서 고찰한 〈능수능란한 관종〉 전이 열린다. 7월 7일 막 내리는 타 전시들과 달리, 새롭게 단장한 뮤지업숍과 1층 로비를 전시 공간으로 활용해 일상 공간과 감상 영역 사이 경계를 허물고 확장한 〈쿵〉 전시는 오는 12월 29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부산현대미술관 〈이것은 부산이 아니다: 전술적 실천〉 전시전경 (사진: 황다나)
부산현대미술관 <이것은 부산이 아니다: 전술적 실천> 전시전경 (사진: 황다나)
장소 부산현대미술관(부산시 사하구 낙동남로 1191)

기간 2024.02.24. - 2024.07.07. (〈쿵〉 전시는 2024.12.29. 종료)

OKNP 부산: 안상수 개인전 “홀려라”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거장 안상수(날개)의 개인전 〈홀려라〉OKNP 부산에서 아트부산 개최 1주일을 앞두고 막을 올렸다. 전시 이름은 작가가 2017년부터 히읗 등 한글의 닿자와 민화, 해체된 글자의 조형이 홀리듯이 한데 어우러지도록 만든 그림 연작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시, 서화, 미술을 아우르며 한때 문화예술의 중심에 있던 서(書), 문자와 조형이 하나로 만난 문자도를 방불케 하지만, 결코 소리 내어 읽을 수 없는 작품 앞에 선 관람객은 홀린 듯이 '의미와 무의미 사이', '발성과 묵음 사이'를 오가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한글.도깨비, 116.8x91cm, Mixed pigments of graphite and acrylic on canvas, 2024, OKNP 제공
알파에서 히읗까지, 116.7 x 91 cm, Mixed pigments of graphite and acrylic on canvas, 2024, OKNP 제공
안상수 개인전 〈홀려라〉 전시 전경, OKNP 제공
안상수 개인전 <홀려라> 전시 전경, OKNP 제공
장소 OKNP 부산 (부산시 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292, 그랜드 조선 부산 4층)

기간 2024.05.02. - 2024.06.09.

국제갤러리 부산점 김영나 개인전
김영나 작가,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국제갤러리 부산점 김영나 개인전, 〈Easy Heavy〉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국제갤러리 부산점 김영나 개인전, 〈Easy Heavy〉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국제갤러리 부산점 김영나 개인전,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그래픽 디자인과 시각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김영나작가는 미술 언어를 사용하며 발생하는 흥미로운 지점들, 경계를 허물고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을 새롭게 규정하고 발견하며 창조적 행위를 이어간다. 이번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의 개인전은 전시 제목 〈Easy Heavy〉처럼 가벼워 보이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대상들의 집합을 전시장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보여준다. 산업 디자인의 산물과 닮은 기하학적인 도형, 숫자, 알파벳 등이 스티커와 표지판처럼 배열되어 미니멀한 단순한 형태 너머 독특한 미적 감각으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종종 기하학적 도형과 강렬하고도 활력 넘치는 색상을 바탕으로 추상적인 이미지를 창출해온 작가는 작품 제작 과정 자체를 중시하며, 실험적인 접근 방식과 개방적인 태도로 작업한다. 전시는 작가의 대표적인 연작인 〈SET〉(2015~) 작업과 여기서 파생되는 부산물 일부를 캔버스 화면에 옮긴 〈조각(Piece)〉(2020~) 연작, 디자이너로서 스케치하듯 수행하는 자세로 임한 〈발견된 구성(Found Composition)〉(2009~) 연작 등을 소개한다. 맥락을 제거한 채 기하학적 기준에 준하도록 분류한 〈SET〉라는 샘플 북을 만든 작가는 내용을 다시 다양한 공간으로 소환해 재해석하고, 시각 언어를 재편집해 새로이 소통하고자 시도한다.

장소 국제갤러리 부산점(부산시 수영구 구락로123번길 20, F1963 1층)

기간 2024.05.08. - 2024.06.30.

조현화랑 달맞이 이배 개인전 〈흐르는〉
'숯'을 캔버스에 층층이 쌓아 독특한 질감과 깊이를 표현한 흑백의 서체적 추상을 30년 가까이 선보여온 이배작가의 개인전이 조현화랑 달맞이에서 아트부산 오프닝에 맞춰 막 올랐다. 작가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프랑스로 건너간 후 서양 미술재료 대신 한국인에게 친숙한 재료이자,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숯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캔버스 위에 절단한 숯 조각들을 빽빽하게 놓고 접합한 후 표면을 연마해 낸 〈Issu du feu(불로부터)〉, 숯가루를 짓이겨 화면에 두껍게 안착시킨 〈Landscape(풍경 시리즈)〉, 숯 자체 또는 브론즈로 보여주는 조각 시리즈까지. 그의 작품세계의 중심에는 늘 숯이 있었다. 숯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그 안에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배의 작품은 자연과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며 명상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조각을 회화처럼, 회화를 입체처럼" 다루는 시도로 형식을 해체해온 작가는 매체 확장을 위해 꾸준히 고민하고 실천해오고 있다. 이번 개인전에는 전시장 벽에 바로 그린 회화부터 조각, 영상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공간 전체에 들어섰다.
이배 개인전 〈흐르는〉 전시전경 (제공: 조현화랑)
이배 개인전 <흐르는> 전시전경 (제공: 조현화랑)
이배 개인전 <흐르는> 전시전경 (제공: 조현화랑)
이배 개인전 <흐르는> 전시전경 (제공: 조현화랑)

전시장에 들어서면 보이는 3m 남짓 높이의 〈붓질(Brushstroke)〉은 조각 9개를 겹쳐 제작되었다. 회화로 변환된 조각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같은 이름의 평면 작업인 〈붓질〉을 마주한다. 벽면 위에 그려져 얼핏 평면 회화로 인식되지만, 바닥까지 이어지며 2차원과 3차원을 넘나들며 뿜어내는 존재감이 인상적이다. 2층에 들어서면 18m에 달하는 벽을 가득 채우는 영상작업 〈버닝(Burning)〉이 펼쳐지며, '신체성과 순환'이라는 본질에 집중해 숯이 타오르는 순간을 작가의 움직임과 맞물려 기록한다. 목탄에서 추출한 검은 안료로 캔버스 위에 형태를 그리고, 밀랍과 같은 두꺼운 재료를 여러 번 덮은 〈아크릴미디움(Acrylic medium)〉 연작 20점도 만나볼 수 있다. 한편 같은 기간 조현화랑 해운대에서는 현재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가 중 한 명인 전현선 작가의 〈두 개의, 누워 있는, 뿌리가 드러난 세계〉 개인전을 통해 신작 17점이 공개된다.

장소 조현화랑 달맞이길점 (부산시 해운대구 달맞이길65번길 171)

기간 2024.05.20. - 2024.07.21.

오초량 〈에디터갑의 집〉
오초량 〈에디터갑의 집〉 전시전경 (사진: 황다나)
오초량 <에디터갑의 집> 전시전경 (사진: 황다나)
부산에서의 즐거운 시간을 뒤로한 채 부산역을 통해 귀가한다면, 원도심으로 가는 길목에 필히 놓치지 말아야 할 숨은 보석 같은 공간이 있다. 도시의 작은 틈에서 숨 쉬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100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가옥 오초량이다.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 345호로 등록된 이곳은 그야말로 기억을 담는 그릇과도 같다. 1925년 일본 출신의 토목사업가에 의해 지어졌지만, 해방 후 한국 사람의 손길로 돌본 목조가옥이다. 고층 아파트로 삼면이 둘러싸인 이곳은 일제시대부터 도시 개발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보며 자리를 지켜왔다.

작년 아트부산 때 공개되어 화제가 된 분더카머 전시에 이어, 올해는 〈건축가가 지은 집〉, 〈집을 쫓는 모험〉의 저자이자 20년 가까이 예술, 건축, 공예 전문 에디터로 활동해온 정성갑 갤러리 클립(Clip) 대표가 나섰다. 〈에디터갑의 집〉을 만들며, 정성갑 대표는 많은 고민 끝에 ‘힘’이 있는 작품들로 갈무리하기로 한다. 단순히 임팩트가 있거나 기운에 국한되지 않는, 아름답고, 정교하고, 초월적이며, 깊은 철학을 담고 있을 때 비로소 작품 안에서 생명처럼 태동하고 서리는 ‘힘’이 있는 작품 말이다. 비단 회화뿐 아니라 설치작품, 가구, 조명에 도자 조각까지 다룬 김선형, 남춘모, 윤태민, 이정배, 황형신, 이혜미 6인 작가의 작품을 소개한다. 오초량에 거주했던 일맥문화재단 가족을 소개한 서재 벽면 아카이빙을 비롯해, 가옥이 품은 세월과 분위기와 어우러지면서도 기품 있게 박력을 발산하는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하루 2타임 예약제로 운영되는 전시는 사전 예약 후 방문 가능하다.

장소오초량(부산시 동구 고관로13번나길 22)

기간2024.05.09. - 2024.07.07. (사전 예약제, 월﹒화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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