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화학 무기 테러 예행연습? '오물풍선' 날린 김정은의 노림수

이유정, 이근평 2024. 5. 29.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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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살포한 대남전단 추정 미상물체 잔해들이 전국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는 29일 오전 대남전단 풍선으로 추정되는 잔해가 경기 용인시 이동읍 송전리에서 발견됐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오전 10시 30분 기자들에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현재까지 강원, 경기, 경상, 전라, 충청 등 전국에서 150여 개의 대남전단이 발견됐다″라고 밝혔다. 뉴스1

북한이 28일 밤부터 이틀째 남쪽으로 수백 개의 ‘오물 풍선’을 대규모로 내려보내고 있다고 군이 29일 밝혔다. 북한은 동시에 위성항법장치(GPS) 교란 전파 공격도 감행했다. 한국 사회에 혼란을 유발하고, 비(非)군사적 공격에 대한 우리 군의 대응 능력을 시험해보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지저분한 예행연습’이다.


오후 4시 기준 오물 풍선 260여개…"역대 최대"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29일 4시 현재 기준 260여개 넘는 오물 풍선을 남쪽으로 넘어왔다. ‘대남 전단 추정 물체’를 식별한 합참의 전날 오후 11시 첫 문자 메시지 공지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12시간 넘도록 전례 없는 물량 공세를 펼치고 있는 셈이다.

군 관계자는 “북한이 과거에도 대남 전단을 살포한 적이 있지만, 하루 사이 200개 넘는 풍선을 내려보낸 것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풍선은 서울·경기도·강원도·경상도·전라도·충청도 등 전국에서 수거됐다. 가장 먼 곳은 경상남도 거창군으로 나타났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체계 부대가 있는 경북 성주시보다 남쪽에 있는 지역에도 오물 풍선이 도달한 것이다. 앞서 26일 김강일 북한 국방성 부상이 오물 살포를 예고하며 “휴지장과 오물짝들이 한국 국경 지역과 종심 지역에 살포될 것”이라고 공언한 그대로다.

풍선은 높이 3~4m 크기로, 여기에 매단 비닐 봉투 속에 오물 등이 들어있었다. 과거 사례를 볼 때 풍선의 무게는 최소 수십㎏으로 추정된다. 2016년엔 차량·주택 지붕이 파손된 적도 있다. 풍선과 비닐봉투의 연결고리에는 풍선을 터뜨리기 위한 기폭장치·타이머도 달려 있었다. 나름대로 풍선의 체공 시간 등을 고려해 피해를 최대화하려는 목적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지상에 낙하된 풍선을 수거하기 위해 군은 화생방신속대응팀(CRRT)과 폭발물 처리반(EOD)을 투입했다. 오후 6시 현재 우리 영공에 떠 있는 풍선은 없다.

같은 날 북한은 남측을 향해 GPS 교란 전파도 쏜 것으로 확인됐다. 29일 오전 5시 50분쯤 서해 연평도와 강화도, 경기도 파주, 인천 해상에서 GPS 교란 전파가 포착됐다. 해양수산부는 이에 따라 서해 항행 경보를 발령하기도 했다.

앞서 북한은 올해 3월 4~14일 ‘자유의 방패(FS)’ 한·미 연합연습 기간에도 GPS 교란 전파를 수 차례 쐈다. 이후 이달 들어선 GPS 교란 시도를 하지 않다가, 29일 오물 풍선을 보내며 다시 재개했다. 피해가 즉각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는데, 이번 방해 전파는 직전보다는 고출력이었다고 한다.


’생화학 무기 테러’ 하이브리드전 예행연습 했나


29일 북한이 보낸 대남 전단 살포용 풍선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발견된 경기도 평택시 한 야산에서 군 장병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전단 도발’을 한 명목은 남측 시민단체들이 날려보낸 대북 전단에 대한 맞대응이다. 하지만 직전 군사 정찰위성 발사에 실패한 북한이 한국에 화풀이성 시위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북한은 지난 27일 오후 10시 44분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신형 운반 로켓”을 이용해 군사정찰위성을 쏘아 올렸으나, 1단 엔진이 2분 만에 공중 폭발했다.

김정은은 실패를 곱씹거나 문책하기보다는 과학자들을 독려하며 “실패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크게 발전하는 법”(28일 국방과학원 연설)이라고 강조했지만, 대수롭지 않은 척 해도 중대 국방 과업인 정찰위성 추진 계획에 차질은 불가피해졌다. 또 공중 폭발 영상이 일본 언론과 우리 군을 통해 만천하에 공개된 만큼 ‘최고존엄’의 위신에도 손상이 간 측면이 있다. 오물 풍선은 대남 공세를 통해 시선을 외부로 돌려 내부 결속을 꾀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

이와 동시에 향후 유사한 도발에 대한 한국군의 대응 능력을 확인하고, 풍선의 최대 도달 범위를 가늠해보려는 예행 연습 성격이 있을 수 있다. 실제 북한은 이날 수백개의 풍선을 순차적으로 날려보내며 풍향과 풍속 등에 따라 한국의 어느 지점까지 풍선이 도달할 수 있는지 실증적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28일 국방과학원 연설에서 “작전 초기에 한국 괴뢰 군대의 기본 공격력과 하부 구조, 지휘 체계”를 거론하면서 “우리는 이를 붕괴시킬 수 있는 압도적 역량을 보유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특히 북한이 ‘미사일 공격+풍선 테러’와 같이 군사 도발에 비정규전 요소를 섞는 하이브리드전을 위한 예행 연습을 하는 것일 수 있다. 최근 이스라엘·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전쟁에서도 이런 양상이 드러나 북한의 ‘학습 효과’가 우려되는 터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영토를 기습하며 로켓과 동시에 불도저·행글라이더를 이용한 비정규전 방식을 혼합했다.

북한이 풍선에 오물이 아닌 신경독소 VX나 탄저균, 기타 바이러스 등을 묻혀 보낸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김강일 스스로도 대북 전단에 대한 맞대응을 예고하며 “기구를 이용한 살포행위는 특이한 군사적 목적으로도 이용될 수 있는 위험한 도발”이라고 했다. 군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풍선 수거시 화생방신속대응팀을 투입한 배경이다. 한국 정부와 미국 국무부는 북한이 생화학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최소 2500t~5000t 이상을 보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규모 오물 풍선은 민간에 직접적 피해를 주는 만큼 대중의 혼란과 불안을 유발하는 대남 심리전 차원도 있다. 실제로 28일 밤 경기·강릉 지역에 문자 메시지 경고가 발송되면서 소셜미디어(SNS)를 위주로 북한의 대남 전단·오물 풍선 등 대한 소식이 빠르게 퍼졌다.

이근평·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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