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손톱만한 게 내 휴대폰을 죽이고 살리고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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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마초 기자]
갑자기 핸드폰이 먹통이 됐다. 핸드폰 화면 오른쪽 상단 배터리 잔여량과 와이파이 중간에 유심 카드가 없다는 표시가 떴다. 분명히 심 카드가 장착돼 있는데도 말이다. 인터넷은 안 잡히지만 전화는 가능했던 강원도 한 산속인데 당황스러웠다.
실은 한 열흘 전쯤부터 증조가 있었다. 유심카드가 인식되지 않는다는 팝업 창이 가끔 뜨는 것이다.
▲ 화면 오른쪽 상단 배터리 잔여량과 와이파이 중간에 심 카드가 없다는 표시가 떴다. 분명히 심 카드가 장착돼 있는데도 말이다. |
ⓒ 조마초 |
유심 카드(SIM Card)란 무선 통신사가 사용자 번호를 알도록 모든 핸드폰 기기 내에 장착된 개인 데이터를 저장하는 장치다. 당장엔 핸드폰이 정상 작동되기에 새 유심카드 구입에 소홀했던 게 후회가 됐다. 금요일 월차를 내고 전날 밤부터 산행을 시작해 오늘 지는 해가 산 허리에 걸칠 때다. 야영을 포기하고 짐을 다시 싸고 내려가 새벽에야 서울 집에 도착했다.
원래 25년 넘게 이용했던 통신사가 있었다. 그런데, 십 년 전쯤 알뜰폰 사업을 시작한 지인을 도와주자 하고 번호 하나를 개통했다. 두 번호를 같이 사용하다가 몇 년 전 알뜰폰이 통신비는 30% 이상 싸고 음질도 좋고 별다른 차이를 못 느껴 기존 통신사를 해지한 후 알뜰폰만 쓰고 있었다. 거의 사용 안 하며 기본료만 빼먹던 집의 유선전화를 없앤 것도 그쯤이었다. 주말 먹통인 휴대전화로는 타인과 연락 못하기는 산속이나 집안이나 마찬가지였다.
4년 전 몇 주간 팬데믹으로 말레이시아 한 콘도에서 고립됐을 때처럼 불안하고 답답해졌다(관련 기사: 말레이시아에 열흘 예정 출장 갔는데... 50일 만에 귀국했다 https://omn.kr/1no1l ). 심 카드가 잘 작동돼 국내외 통화가 잘되던 그때가 양반이었다. 다행히도 인터넷이 정상이니 핸드폰에 깐 앱으로 지인들과 연락할 수 있었으나, 막상 연락하자니 주말에 쉬거나 가족과 함께일 텐데 기껏 내 하소연이라 안 했다.
우선 답답한 마음을 진정하고 편의점에서 통신사가 지정해 준 심 카드를 구입했다. 그리고, 통신사 홈페이지에서 변경신청서를 다운로드하여 작성해 이메일로 보냈다. 그러나 주말과 공휴일엔 근무를 안 하니 월요일 오전 9시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계속 안정이 안 되고 불안한 게 꼭 외진 곳에 혼자 있는 기분이다.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해서 먹통인 기존 심 카드와 새 심 카드를 번갈아 끼웠다 뺏다 하며 전원을 재시작하는 것을 반복하며 주말을 보냈다.
▲ 심 카드 트레이를 빼면 이런 메세지가 뜬다. 전화, 문자, 데이터가 다 안된다는 말이다. |
ⓒ 조마초 |
월요일까지 월차다. 새벽부터 지도 앱으로 공중전화를 찾으니 공중전화가 사라졌다는 말이 맞다. 예전에 길에서 언뜻 봤는데 막상 내가 사는 근처엔 없다.
통신사 고객센터는 전화로만 개통 상담을 한단다. 아침 9시부터 구청 민원실, 주민센터, 종종 가던 동네 편의점, 빵집 주인 등에게 전화 한 통화만 부탁해 볼지 몇 번을 망설이다가 결국 돌아섰다. 큰마음먹고 간 파출소는 오래전 폐쇄됐다.
고객센터에서 이메일 답장이 왔다. 규정상 변경신청서 내 정보 작성란에 컴퓨터 자판으로 친 게 아닌 종이로 출력해 손 글씨로 직접 써서 다시 보내야 한단다. 주말 내내 월요일 아침만 기다렸던 자신에 헛웃음이 나왔다.
집에서 변경신청서를 다운로드하여 USB에 넣고, 지나가다 본 집 근처 지하철역 무인 프린트 샵을 기억해 내 가서 종이에 출력해 볼펜으로 직접 다시 써서 핸드폰으로 촬영해 고객센터에 보냈다. "지금 전화도 안 되고 공중전화도 없고 빌려 쓸 전화도 없는 긴급상황이니 가능하면 이메일로 개통 안내해 달라"는 내용과 함께.
조금 후 전화로만 가능하다는 답장이 왔다. 마침 내가 며칠간 연락이 안 된다고 막 집에 들어오신 어머니 핸드폰으로 고객센터와 통화가 됐다. "전에는 몇 년을 사용해도 멀쩡했는데 왜 갑자기 심 카드가 먹통이 되냐?"라고 물어보니, "심 카드가 소모품이어서인지 요즘은 2년 정도 지나면 불량이 자주 난다"는 고객센터 담당자의 답이다.
▲ 심 카드 뒷면이다. 오염되지 않게 잘 관리해야 한다. 이 조그만게 전화, 문자, 데이터를 죽이고 살리고 한다. |
ⓒ 조마초 |
유심 카드가 오염되지 않게 잘 관리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 손톱 만한 게 전화, 문자, 데이터를 죽이고 살리고 한다. 무선통신 강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무선통신이 고립된 주말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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