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어머니와 대화하며 고향 곳곳을 걸었다"
[홍성식 기자]
▲ 포천 안내서이자 한 중년사내의 ‘자기 고백서’인 책 <포천>을 펴낸 가수 이지상. |
ⓒ 이지상 제공 |
한 사람이 한 가지 일을 제대로 잘하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그런데, 묵직한 중저음으로 노래하는 가수이자,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 거기에 사진전시회를 열 정도의 카메라 촬영 실력을 갖췄고, 대학에서 한국 대중음악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쳤으며, 글까지 잘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주인공은 가수 이지상(58)이다.
1998년 첫 번째 음반 <사람이 사는 마을>을 필두로 몇 해 전엔 여섯 번째 음반 <나의 늙은 애인아>를 대중들에게 선보인 이지상은 노래와 작곡 활동 외에도 여행기 <스파시바, 시베리아>와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북(北)>을 출간하며 음악 만들기와 글쓰기 2가지 측면 모두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 왔다.
▲ 이지상이 고향인 경기도 포천을 안내하는 책 <포천>. |
ⓒ 21세기북스 |
경기도 포천시는 이지상의 고향. 이번 책에서 그는 포천의 산과 호수, 숲과 거리를 수십 번 거듭 살펴 걸으며, 제 고향의 진면목과 숨겨진 아름다움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앞서 언급된 '도슨트(docent)'는 안내자 혹은, 길잡이로 해석이 가능한 단어다.
책에 수록돼 포천시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사진도 모두 이지상이 직접 촬영한 것이다. '팔방미인이 쓴 흥미로운 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고향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은 경기도 사람과 여타 지역 사람이 다르지 않다. 그래서다. 이지상에게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부탁했다. "그럽시다." 시원하고 흔쾌한 대답으로 시작된 기자와 이지상의 제법 길었던 대화. 아래 그걸 요약한다.
"포천 100여 번 넘게 다녀... 어머니 목소리 듣는 것 같았다"
- 포천은 당신의 고향이다. 그러나, 고향에 관한 책을 쓰는 건 다른 문제다. 집필의 이유는.
"출판사로부터 집필 의뢰를 받았다. 대한민국의 곳곳을 책을 엮어 안내하는 '도슨트 시리즈'를 기획 중이었는데 '포천'편을 내가 쓰게 된 거다. 지역의 역사와 문학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심도 깊은 인문 안내서 집필을 주문받았다. 책방을 꼭 넣어달라는 부탁이 인상적이었다."
- 취재를 위해 소요된 시간과 공력이 적지 않았을 듯하다. 지치고 힘들 때 에너지는 어디에서 얻었나.
"계약서에 도장 찍고 출판까지 4년 정도 걸렸다. 첫 문장을 바로 시작하지 못했고 최초 6개월 정도의 사전 취재를 거친 후 취재와 집필을 반복하는 형식이었다. 고향을 찾아가는 일은 묻어 두었던 옛 기억을 소환하는 일이다. 찾아가는 동네마다 생각나는 이름이 있었다. 각색되지 않고 고스란히 내 머릿속에 저장돼 있던 오래된 풍경들은 더없이 좋았다. 집필 기간은 3년 정도였는데 지칠 일이 없었던 이유는 그때마다 충전되는 그리움이라는 양식이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 포천은 당신이 '나의 하느님'이라 부르는 어머니가 살다가 돌아가신 곳이다. 거길 다녔으니 당연지사 어머니를 떠올렸을 텐데.
"난 자연을 신으로 믿는 사람이다. 내가 익혀왔던 자연의 중심에는 언제나 어머니가 있었다. 모든 순간 내가 신께 나의 기도로 의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믿는 신이 어머니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서다.
포천의 25곳을 선정하고 100여 번을 넘게 다니면서 그리움의 흔적을 적어내는 일은 거기서 어머니와 나눈 대화였다고 해도 무방하다. 아픈 다리로 절며 평생을 사신 어머니가 장터로 가신 길을 함께 다녔고, 생전의 어머니가 한 번도 다녀가지 못했던 포천의 명소도 함께 걸었다. '여기 참 좋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을 어머니의 육성을 환청으로나마 듣는 순간이었다."
▲ 포천의 명소 중 하나인 비둘기낭 폭포. |
ⓒ 이지상 제공 |
▲ 포천 울미마을의 연꽃. |
ⓒ 이지상 제공 |
▲ 포천 명성산 산정호수. |
ⓒ 이지상 제공 |
- 출간 과정에서 행복했던 순간과 힘겨웠던 순간은.
"어려웠던 일이라…. 내가 원하는 장면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서둘러야 하는 일이 많았다. 울미마을 연꽃이나 산정호수의 잔물결은 새벽안개가 있어야 했다. 또한 밤늦게 까지 머물러야 하는 시간도 있었다. 명성산 갈대밭의 우체통은 저녁 무렵이어야 했고, 한탄강 하늘다리위에는 꼭 별이 있어야 했으니까.
명성산에서 하산할 땐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반면 행복한 기억도 많이 떠올렸다. 학창시절을 함께 보냈던 벗들의 이름을 기억할 때였다. 어느 동네를 가든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었고, 그 이름을 대면 동네 사람들은 마치 오래된 이웃처럼 반겨줬다. 그 중에는 벌써 세상을 등진 이름들도 있었다. 하지만, 안타까움과 회한조차 그리움으로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 책에는 포천 명소가 여럿 등장한다. 그중 딱 한 곳이라면 어딜 추천하고 싶은지.
"서점 '무아의 계절'이다. '이건 현실이지만 멋지군'이란 영화의 명대사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공간이다. 경영난에 언제 문을 닫을지도 모를 위태로운 공간이기도 했다. 미래의 불안을 책과 함께 이겨내려는 서점의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책이 나오기 전에 서점이 사라지면 어떡하지'란 걱정을 한 적도 있다. 다행히 공간을 옮겨 상가가 많은 곳에서 잘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나와 같은 삶의 불안을 내재하고 있어 더 애정이 가는 공간이다.(서점 '무아의 계절'은 2024년 4월을 마지막으로 잠시 휴업 중이다-편집자 주)"
- 본업이 가수다. 그럼에도 정확한 단어 선택과 유려한 문장의 조합이 썩 좋아 보였다. 문장 강화를 위해 특별한 노력을 했는지. 글쓰기 노하우가 있는 건가.
"대학에서 국문학과를 다녔지만 글 쓰는 것과는 무관한 학교생활을 했다. 다만 노래를 만들고, 시대와 불화하는 삶을 살면서 주워들은 얘기가 많았던 것 같다. 굳이 노하우를 묻는다면 어떤 창작을 하건 오래 걸린다. 분량과 무관하게 글 한 편, 노래 한 곡 만드는데 보통 이틀이나 사나흘 밤을 샌다."
- 이번 책의 제목이며, 당신의 고향인 '포천'은 어떤 매력이 있는 곳인지.
▲ 포천의 매력적인 서점 풍경. |
ⓒ 이지상 제공 |
▲ 이지상이 카메라에 담은 포천의 풍광. 포천성당 |
ⓒ 이지상 제공 |
▲ 이지상이 카메라에 담은 포천의 풍광. |
ⓒ 이지상 제공 |
- 당신 존재의 2가지 측면 즉, 가수와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각각의 계획은.
"다가올 가을에 7집 음반을 발매해야 한다. 기다리는 사람은 없어도 해야 할 일은 해야겠기에(웃음). 노래는 준비가 돼있다. 제목을 '천천히 순하고 뜨끈하게'로 해볼까 생각 중이다. 발매 후엔 당연히 콘서트도 열 계획이다. 또, 연말까지 순천 와온해변을 무대로 생의 가치를 재점검하고 새로운 삶을 기약하는 책을 써야 한다. 계약 기간을 훌쩍 넘겼는데 아직 시작을 못했다. 2년 동안 와온해변을 숱하게 다녔다. 지난해 9월엔 사진전도 열었다. 5년쯤 뒤 다시 준비할 사진전을 위해서도 열심히 발품을 팔아야 한다."
- 덧붙일 말이 있다면.
"포천을 소개하는 책이지만, 포천을 매개로 한 '자기 고백서'로 읽어주시면 더 좋겠다. 비슷한 삶을 살았거나, 비슷한 생각을 하거나, 비슷한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거라고 여긴다. 이 책을 통해 그들과 교감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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