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 하나를 사이에 둔 낙원과 지옥... 최고의 홀로코스트 영화
[김형욱 기자]
▲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포스터. |
ⓒ 더콘텐츠온 |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절멸 수용소의 소장 루돌프 회스 중령은 아내, 네 아이와 함께 수영장 딸린 큰 집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그의 집은 다름 아닌 수용소와 담 하나를 사이에 둔 곳에 있다. 당연히 하인들도 같이 거주하며 집안을 돌보고 수용소를 관리하는 부하 군인들도 들락거린다. 멀리서도 사람들이 오간다.
자못 삭막할 것 같은 집은 더할 나위 없이 예쁘다. 루돌프의 아내 헤드비히 회스가 최선을 다해 꾸민 결과였다. 큰 집에 걸맞은 정원의 크기가 엄청나지만 수많은 종류의 꽃들이 만발해 있다. 그런데 그곳은 아우슈비츠, 하루종일 총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그런가 하면 시체 태우는 냄새도 진동한다.
아이들은 행복해 보이지만 몽유병에 걸린 아이도 있고 의외의 폭력성이 나오는 아이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루돌프가 상위 부대의 부감독관으로 영전한다. 하지만 헤드비히는 자신이 직접 꾸민 파라다이스 같은 집에서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녀가 보기에 아이들은 평화롭고 행복하다. 그렇게 부부는 따로 떨어져 각각 생활해 나간다.
▲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 |
ⓒ TCO㈜더콘텐츠온 |
1942년 초 나치 독일은 반제 회의에서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책을 '절멸'로 확정한다. 일찍이 1933년부터 홀로코스트는 자행되고 있었지만 1942년부터(사실은 그 이전부터) 최종 단계에 이르고 있었던 것이다. 대다수 유대인 희생자들이 이 과정에서 학살되었다. 그리고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절멸 수용소들이 최종 해결책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니 아우슈비츠 소장 루돌프 회스야말로 아돌프 히틀러 이하 하인리히 힘러,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아돌프 아이히만으로 이어지는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 핵심 책임자 라인에 있었던 것이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이 10년 만에 돌아온 장편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바로 그의 이야기를 담았다.
제목 'zone of interest'는 나치 독일이 폴란드인들로부터 강제로 뺏어 관리한 아우슈비츠 수용소 주변 땅을 가리킨다. 나치 독일은 그곳에서 농작물을 키우며 죄수들을 재교육시키는 한편 금전적 이득을 취하려 했다. 바로 그곳에서 루돌프 회스의 가족이 지냈다는 것이다. 단조롭고 평화롭고 행복해 보이기까지 한 일상을 영위하면서.
▲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 |
ⓒ TCO㈜더콘텐츠온 |
루돌프의 가족은 더할 나위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누구나 꿈꿀 만한 아름다운 집을 꾸며놓고 그 안에서만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은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온다. 그런데 가족들 상태가 정상은 아닌 듯하다. 루돌프는 갑자기 토를 하고 헤드비히는 갑자기 화를 내며 한 아이는 몽유병에 걸렸고 한 아이는 동생을 가둬놓고 웃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액면만 보면 무시무시한 사연이 있는 집에 들어와 사는 가족의 파멸을 그린 것 같지만 실상을 알면 완전히 전복될 것이다. 주지했듯 그들이 사는 곳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담 하나를 사이에 둔 '존 오브 인터레스트'다. 보이는 건 회색의 담벼락, 들리는 건 총소리와 신음소리와 비명소리, 그리고 시체 썩는 냄새와 시체 태우는 냄새가 풍긴다.
헤드비히는 누구보다 예민하게 그 문제를 캐치한 듯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꽃밭으로 만들었다.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냄새 맡는 것도 온통 꽃이다. 수영장도 만들어 아이들이 물에서 뛰어놀 수 있게 했다. 그럼에도 막을 수 없다. 나치 독일이, 히틀러가, 루돌프 회스가 짓고 있는 죄의 반작용을 오롯이 받을 수밖에 없다. 신이 있다면 그래야만 할 것이다.
▲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 |
ⓒ TCO㈜더콘텐츠온 |
루돌프 아닌 헤드비히 그리고 아이들을 직접적인 가해자로 볼 순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루돌프가 한 일을 잘 알고 있다. 다만 그냥 받아들일 뿐이다. 그러려니, 모른 척, 남일이니까. 극단적으로 말해 누구나 그들일 수 있다. 중동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남일이니까, 우리나라에서 각종 사건사고가 일어나면 그러려니, 집 근처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모른 척할 때가 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제시한 '악의 평범성'은 홀로코스트 실무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의 양심사를 접하고 제창한 '악은 악한 마음이 아니라 무사유에서 생긴다'라는 개념에서 비롯되었다. 루돌프 회스가 명령을 받은 인물이 다름 아닌 아돌프 아이히만이다. 그러니 이 영화는 악의 평범성을 논하는 또 하나의 작품일 수 있겠다. 루돌프의 가족 모두는 홀로코스트에 대해 사유하지 않았고 악한 마음을 가지지 않았을지라도 악마와 다름없었다.
작품은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과 음향상을 수상했는데 으스스하고 기괴하며 오래 듣고 있으면 미칠 수도 있겠다 싶은 음향이 종종 들려오는 바, 루돌프 가족의 상태를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아우슈비츠에 갇힌 이들이 내뿜는 기의 파장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또는 둘 다인지.
가히 역대 최고의 홀로코스트 영화라고 할 만하다. 수없이 많은 제2차 세계대전 영화, 홀로코스트 영화를 접했지만 이런 작품은 단연코 없었다. 그동안에는 텍스트를 읽은 느낌이라면 이번엔 텍스트 이면의 콘텍스트를 들여다보고 해석하고 대입해 보기까지 하니 가히 완벽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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