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사건, 존엄사... 삶의 최전선 다룬 법률 이야기

이명옥 2024. 5. 2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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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청소년의 정치 참여와 생명 윤리 등 고민하는 <미래 세대를 위한 법 이야기>

[이명옥 기자]

▲ 미래 세대를 위한 법 이야기 여덟 가지 주제를 통해 살펴본 법 이야기
ⓒ 철수와영희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나요? 현실이 너무 팍팍하고 경쟁이 고달픈가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있을까요? 우리가 만들 수 있고 만들어야 하는 세상을 고민해 보겠습니다. (책 '머리말' 중)

<미래 세대를 위한 법 이야기(철수와 영희 출판사)>가 최근 나왔다. 저자인 헌법학자 이지현은 <10대와 통하는 법과 재판 이야기>의 저자다. 저자는 미래 세대가 행복하고 평등한 세상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미래 세대에 대한 부채감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힌다. 

저자는 생명권, 성적 자기 결정권, 존엄사,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따를 권리, 국가 폭력, 젠더 갈등, 저항권, 청소년 참정권 등 여덟 가지로 찬반 논란이 일고 있는 주제까지 폭넓게 다룬다. 

우리는 흔히 법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심판에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해 법에 대해 별달른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법은 인간이 자유와 평등과 존엄을 지켜내고 더 행복해지기 위해 알아야 할 권리다. 미래 세대들인 청소년이 법을 잘 알고 더 나은 법이 만들어지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생명의 존엄에 대해 생각해 보자. 과학의 발달이 가져올 트랜스 휴먼(인간과 닮았지만 개조에 의해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람)이나 인간 복제를 생명 윤리적 측면에서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내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인기 스타라고 상상해보자. 복제가 허용되어 나의 머리카락이나 손톱 등 유전자 정보를 이용해 누군가 나와 똑같은 인간을 만들어 상품화한다면 실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진짜 나는 누구일까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은 물론 인간의 존엄과 가치 훼손, 권리마저 심각하게 침해당하게 될 것이다. 

생명 윤리 및 안전에 대한 법률은 인간의 무한 욕망에 제동을 걸어 체세포 복제 배아를 인간이나 동물의 자궁에 착상시켜 출산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한편 여성의 낙태(임신중지)는 그간 오랫동안 범죄로 인식되었다. 2012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는 합헌' 결정을 내렸으나, 7년 뒤인 2019년 '헌법 불합치'라며 뒤집는다. 임신의 지속 여부에 대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인정된 것이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 인정이 바로 생명권 경시를 뜻하는 건 아니다. 상대에 대한 충분한 존중과 배려, 사랑을 통해 서로가 원하는 임신을 통해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지향하자는 것이며 생명을 더욱 존중하자는 의미다. 

성적 자기 결정권 문제는 또 어떨까. 성적 자기 결정권은 사랑에 대한 책임과 의무,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바탕이 되어야 함을 뜻한다. 아내가 원치 않는 잠자리를 억지로 할 경우 강간죄에 해당하는 것은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은 일방적 행위이며 성적 자기 결정권을 무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철수가 영희를 너무 좋아하지만 영희가 다른 사람을 좋아할 때 철수는 영희에게 사람을 강요하지 않아요. 철수는 영희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존중합니다. 사랑은 존중과 배려이기 때문에 철수는 진정한 마음으로 영희의 행복을 빌어 줍니다. -49쪽 

세상에서 처음 존엄사 판결을 내린 재판은 '퀸란 사건'이라고 한다. 퀸란은 1975년 21세에 친구 생일파티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뇌사 상태의 식물인간이 되었다.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생명을 이어가던 딸을 위해 부모는 기계장치 제거를 요청하는 소송을 진행한다. 퀸란은 평소 가족에게 연명 치료는 하지 말라고 말해왔다. 퀸란 가족은 승소했고 인공호흡장치를 제거했다. 의사들의 염려와 달리 퀸란은 금세 죽지 않았다. 돌봄을 받으며 9년이 지나서 요양원에서 사망했다. 

내가 존경하던 강민 시인은 암이 발병했을 때 병원 치료를 거부했다. 먼저 간 아내가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가족들과 작별 인사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것이 한으로 맺혔던 시인은 자신은 절대로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채 병원에서 죽어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암이 깊어져 죽음을 앞두고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긴 시인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모두 만나 추억담을 나누고 인사를 하고 함께 사진을 찍고 평온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의 선택은 존엄사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들었다(관련 기사: [고 강민 시인을 추모하며] 아름다운 이별 https://omn.kr/1kknv ).

아직은 본인이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어도 존엄사와 연명치료 대한 찬반양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적, 의료적, 종교적, 윤리적 정황상 생명 스위치를 내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남은 가족이 안타까움과 죄책감에 희망 없는 연명치료를 이어가기도 한다.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 존엄사에 대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 2016년 5월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부근 남녀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과 관련, 21일 오후 강남역과 사건 현장을 오가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이 수백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20대 여성이 살해당한 현장 부근에서 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추모행사를 하는 모습.
ⓒ 권우성
 
2016년 서울 강남의 공용 화장실에서 불특정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남성들은 그냥 보내고 여성만을 노려 살해한 여성 혐오 범죄였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차별 죽음을 당하는 세상, 여성들은 두려움에 떨며 불안하게 살기 쉽다(관련 기사: "여자라서 죽는 세상, 피하다보면 아무데도 못 가").
재판부는 이 사건에 대해 사회공동체 전체에 대한 범죄라며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피해자에게 어떤 잘못도 없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로서는 갑자기 가해지는 폭력을 회피할 어떠한 수단도 상정하기 어렵다는 점, 사회공동체 전체에 대한 범행으로 사회 전반에 큰 불안감을 안겨 준다는 점에서 그 죄질이 매우 나쁘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10.14. 선고 2016고합673 판결 중

젠더란 사회학적으로 규정된 성을 의미한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 적이나 혐오 대상이 아니다. 함께 살아가야 할 친구이자 동료며 가족이다. 젠더 갈등을 넘어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며 성평등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2022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18세 청소년의 참정권이 인정되었다. 고등학생도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6세부터 정당 활동도 할 수 있다. 청소년들이 올바른 정치의식을 가지고 정당 민주주의를 실현한다면 더 나은 세상이 앞당겨질 것이다. 

이 책은 법은 더 나은 세상, 행복한 세상, 인간이 존중받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장치임을 알게 한다. 학생 인권 조례 폐지를 반대하는 학생들 외침이 한참이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미래 세대들의 외침에 기성세대들은 겸손하게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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