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땜질식 응급실 운영, 언제까지 버틸지 장담 못해”
“더 악화하면 응급실 포기하는 상황 올 수도”
“지난 3월 국민일보와 인터뷰 때는 ‘응급실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했는데, 그 때는 의료 사태가 이렇게 오래 갈 줄 예상하지 못했다. 언제까지 땜질식으로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고 더 악화하면 응급실을 포기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대한응급의학회 김인병 이사장(한양대 명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은 29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주최한 미디어아카데미 초청 강연에서 이 같이 말했다.
김 이사장은 지난 3월 20자 국민일보와 인터뷰 기사에서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 한 달이 지났지만 한 응급센터당 1~2명의 전문의가 버티고 있는 덕분에 아직까지는 응급의료센터가 작동하고 있다”면서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은 마지막까지 환자들 곁에서 응급실을 지키겠다”고 밝혔었다.
김 이사장은 하지만 “ ‘전공의 없는 응급실’ 100일을 맞은 현재, 정부는 비상진료체제 유지로 대형병원 진료나 응급실이 큰 문제 없이 운영되고 있다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응급실을 제대로 운영하는 곳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그는 “그날 그날 ‘배후 진료’가 가능한 환자만 받고 있다. 아예 응급실 운영을 안하겠다는 분위기도 있다”며 “정부도 현장의 이런 상황 데이터를 다 갖고 있지만 공개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공의들의 부재에도 24시간 가동을 멈출 수 없는 응급실은 남아있는 교수와 전임의 등을 총동원해 겨우 버티고 있다는 게 김 이사장의 설명이다. 그는 “인력을 갈아 넣고 있다”고 표현했다.
정부가 응급의료 진찰료 2배 인상(6만2000원→12만원), 경증 환자 회송료 15만원 지급, 중증 응급환자 수가 인상 등 응급센터 지원을 늘렸지만 전공의가 빠진 응급실 상황을 개선하기엔 역부족이다. 진료지원 인력(PA)이나 군의관·공보의 지원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김 이사장은 설명했다.
학회가 응급의학과 전공의 수련 병원 59곳의 수련 과장(수도권 35명, 비수도권 24명) 대상으로 최근 설문 조사한 결과 모든 병원이 전공의 이탈 후 응급실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전공의들의 부재로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전임의·교수)이 당직과 진료에 모두 투입되다 보니 주간 근무 인력은 5.4명에서 1.8명으로 3분의 1토막 났다. 야간 근무 인력도 4.7명에서 1.6명으로 줄었다. 24시간 2교대 또는 3교대로 돌아가는 응급실 근무와 당직 등을 전공의 없이 전문의들이 도맡다 보니 근무할 수 있는 인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주간 근무 인원이 2명 이내로 떨어지면 환자가 와도 정상적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지금 응급실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에 따르면 언론을 통해 드러나지 않았을 뿐, 지역에서 서울 등 수도권으로 응급 환자 전원이 암암리에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내가 속한 병원(경기도 고양시 소재)에도 며칠 전 경상도 함양, 강원도 속초 등에서 투석 환자, 심근경색 환자의 전원 의뢰가 왔다. 오픈되지 않을뿐 타지에서 중증 환자의 전원이 굉장히 많이 오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달 16일부터 이달 15일까지 한달간 응급실 내원 환자는 11만7000명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75%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 기간 응급실에 방문한 중증 환자는 9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300명)의 98% 수준에 달해 큰 차이가 없었다.
설문 결과 이번 사태로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체감하는 중증 환자 감소율은 3.8% 정도였다. 내원 환자 감소율(30%)보다 훨씬 낮았다.
김 이사장은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부족한 인력에도 온몸으로 중증 환자 응급 진료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다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말하는 의료 개혁의 거대 담론이나 큰 방향은 맞지만, 지금 당장의 현실에서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상화에 대한 기약이 없는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끝까지 응급실을 지키겠다는 마음이지만, 상황이 더 악화하면 자칫 응급실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단, 아직 거기까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현재 의사로서 가장 크게 느끼고 있는 것은 상실감, 공허함, 나약함이다. 정부는 전공의를 만나서 복귀를 설득하라 하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힘든 심정을 토로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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