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의 마지막, 박병호의 선택은 과연 이기적인가
[이준목 기자]
새로운 도전을 위한 아름다운 이별인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노장들의 미련일까. 프로야구에서 기묘한 트레이드가 성사됐다.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두 거포 박병호와 오재일이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28일 프로야구 kt 위즈와 삼성 라이온즈는 일대일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kt 박병호가 삼성으로 가고 오재일이 kt로 이적하게 된 이번 트레이드는 박병호가 먼저 구단에 방출 및 이적을 요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삼성이 오재일 카드를 제시하면서 거래가 성사됐다.
그런데 모양새가 뭔가 묘하다. 선수들의 이름값은 분명 대형 트레이드인데, 막상 실속에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트레이드 대상이 된 두 선수가 좌타-우타라는 차이만 빼면, 나이도 같고 포지션도 같다. 거포 스타일부터 최근의 팀 내 입지까지 모든 면에서 비슷하다.
냉정히 말하면 최근 부진한 두 노장이 사실상 자리만 바꾼 모양새다. 소속팀의 성적이나 리그 판도를 흔들 정도의 기대치가 있는 거래와는 거리가 멀었다. 팀에게나 선수에게나 '굳이 트레이드 하는 게 의미가 있나?'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게 야구 팬들의 반응이다.
이번 트레이드는 사실상 박병호의 적극적인 의지로 성사됐다. 박병호는 KBO리그를 대표하는 거포다. 넥센(현 키움 히어로즈) 소속이던 지난 2014년과 2015년 각각 50개 이상의 홈런을 쏘아올린 데 이어, 2022시즌 kt 소속으로 35홈런을 터뜨리며 홈런왕에 등극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병호는 올 시즌 들어 44경기에서 타율 .198(101타수 20안타) 3홈런 10타점에 그치며 뚜렷한 하락세를 드러냈다. 시즌 초반에는 꾸준히 선발로 나섰지만 최근에는 문상철에게 4번 타자와 주전 1루수 자리를 내줬다. 박병호가 대타나 대수비로 나선 경기만 21경기에 이르렀다.
박병호는 팀 내 입지가 줄어들자 구단에 이적 혹은 방출을 요청했고, 잔여 연봉을 포기하고 은퇴하는 선택지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kt 구단은 박병호를 만류했고, 트레이드를 추진하는 것으로 원만한 이별을 선택했다. 박병호의 트레이드 대상이 된 오재일은 삼성에서 올시즌 22경기에 나서 타율 0.234, 3홈런, 8타점으로 부진에 빠져 있었다.
kt로서는 레전드인 박병호를 홀대하여 은퇴로 몰아갔다는 부담을 덜었고, 그 빈 자리를 메울 수 있는 백업 1루수에 좌타 거포 자원을 보강하는 데 성공했다. 박병호로서는 LG, 히어로즈, kt를 거쳐 KBO리그 네 번째 소속팀이 된 삼성에서 다시 한번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선수라면 당연히 누구나 경기에 뛰고 싶고 출전 시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박병호처럼 오랫동안 주전으로 뛰며 최고의 자리를 지켜왔던 선수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야구 팬들의 여론은 유독 박병호에게 싸늘하다. 특히 kt 팬들은 박병호에게 부활의 계기를 마련해준 이강철 감독과 kt 구단에 대한 신의를 저버렸다며 비난하고 있다.
박병호는 2021시즌을 마치고 FA 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당시 소속팀이었던 키움 히어로즈는 고심 끝에 FA 계약을 포기했다. 대신 중심타선 보강을 노리던 kt가 3년 총액 30억 원(계약금 7억 원, 연봉 20억 원, 옵션 3억 원)의 조건으로 박병호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첫해 박병호는 2022년 타율 0.275 35홈런 98타점을 기록하고 홈런왕을 차지하며 이름값을 했다. 지난 시즌에도 타율 0.283 18홈런 87타점으로 제 역할을 하며 kt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힘을 보탰다. 이때까지만 해도 kt의 '박병호 영입은 신의 한수였다'는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박병호는 지난해 가을야구에서 최악의 부진을 보이기 시작했다. 박병호는 포스트 시즌 내내 이강철 감독의 전폭적인 믿음 속에서 4번 타자를 맡았지만, NC 다이노스와의 플레이오프 5경기에서 20타수 4안타 1타점, 삼진 7개에 병살타 2개에 그쳤다.
심지어 LG 트윈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도 3차전의 투런 홈런과 멀티히트를 제외하면 나머지 4경기에서 13타수 무안타로 끝내 침묵했다. 박병호는 시즌이 끝나고 진행된 팬 행사에서 한국시리즈의 부진을 공개적으로 사과하기도 했다.
박병호는 출전기회가 줄었다는 올시즌도 무려 121 타석이나 기회를 얻었다. 이강철 감독은 어떻게든 박병호를 활용하고 꾸준히 기회를 주려고 했다. 하지만 삼진을 38개나 당할 만큼 컨택트 능력과 선구안이 하락한 상황이었다. 시즌 초반 kt가 꼴찌까지 추락한 데는 팀의 중심타자였던 박병호의 부진도 책임의 지분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팀이 어려울 때 고참 선수로서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스스로 부진을 이겨내려는 노력보다는, 본인의 출전 기회가 줄었다는 이유로 이적을 요구했다는 데 팬들의 반응은 냉랭할 수밖에 없었다. 계약기간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박병호의 요구대로 방출이나 은퇴를 수용하게 되면, 구단은 아무런 보상도 얻지 못하고 손해만 보게 된다.
박병호와 kt 측은 일부 언론에서도 보도된 충돌이나 갈등설은 와전된 것이라며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냉랭한 반응은 박병호가 히어로즈를 떠날 때 동정과 응원의 목소리가 많았던 것과 비교된다. 그만큼 박병호의 행보에 실망감을 느낀 팬들이 많다는 의미다.
현실적으로 박병호가 삼성에서 백업요원 이상으로 중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삼성에는 이미 박병호와 역할이 정확히 겹치는 외국인 타자 데이비드 맥키넌이라는 확실한 주전 거포 1루수가 있다. 결국 박병호는 사실상 지명타자 자리를 놓고 젊은 선수들과 경쟁해야하는 상황이다. 삼성에서도 타격감을 빨리 회복하지 못한다면 박병호에게 이번 트레이드는 별 소득 없는 자충수가 될 것이다.
KBO리그의 한 시대를 풍미한 레전드 거포가 말년에 여러 팀을 전전하는 '저니맨'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타까운데, 이적 과정에서 잡음까지 발생하면서 팬들의 실망감은 더욱 커졌다. 과연 박병호는 삼성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며 다시 한번 여론을 반전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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