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아프고 죽는 노동자들, 하루에 '4명' [김용균재단이 바라본 세상]

문은영 2024. 5. 2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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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상 질병 예방을 위한 법과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문은영]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지난달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2년 동안 삼성전자 1차 협력업체에서 일하다가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진단받은 21세 수현씨 사건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 반올림
 
얼마 전 21살 청년노동자가 삼성전자 1차 하청업체인 휴대폰 조립회사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을 진단받고 투병 중이며 이를 알리기 위한 시민단체의 기자회견 소식을 기사로 접했다. 휴대폰 부품을 고온으로 접착하는 과정에서 접착제 성분 등이 녹으면서 휘발성 유기화합물,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에 노출된 것이 발병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2007년 삼성전자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고 황유미님에서 전자산업의 위험성이 알려진 지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위험한 화학물질은 관리되지 않고 20대 청년이 병마와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과 바뀌지 않는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이 답답했다. 여전히 노동자들은 자신이 다루고 만지는 여러 종류의 화학물질이 어떤 것인지, 얼마나 몸에 해로운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위험에 노출되다가 아프고 목숨을 잃는다.  

업무상 질병으로 하루 4명 꼴로 사망하는 현실

2023년 산업재해 현황을 살펴보면, 한해 산업재해자는 총 13만6796명이고 이 중 사고재해자수는 11만3465명이고 질병 재해자수는 2만3331명이다. 또한 작년 산업재해로 인한 총 사망자수는 2016명인데 사고사망자수는 812명이고 나머지 1204명이 질병사망자수이다.

질병사망자 통계를 살펴보면, 진폐(463명), 뇌심질환(364명), 기타(293명), 기타 화학물질중독(57명), 유기화합물 중독(16명), 금속 및 중금속 중독(11명) 순이다. 직업성 질병의 대부분은 과로 및 사업장에서 취급되거나 발생하는 유해화학물질 관리가 되지 않아 노동자가 상당기간 위험요인에 노출되어 신체손상이 발생한 결과다. 그런데 2023년 한해 산업재해 전체 사망자수의 67%가 업무상 질병 사망자이고 이는 하루에 4명 꼴로 사망하는 샘이다. 

각 직업성 질병의 위험요인이 여러 가지겠으나 직업성 질병 중 직업성 암으로 좁혀서 살펴보겠다. 2023년 고용노동부 통계로 확인된 바에 의하면, 직업성 암으로 사망한 재해자는 211명이다. 이러한 통계는 산업재해로 인정된 경우만 통계로 잡힌 것이고 전문가들은 직업성 암인지 인지하지 못하여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한 직업성 암에 대한 추청치를 적용하면 실제 직업성 암 발생  규모는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Doll과 Peto은 1982년 연구 각주1)에서 암 환자의 4% 정도는 직업적 노출에 기인했을 것이라고 보고한 후 여러 연구자들이 계산하였다. 2016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적으로 총 34만9천 명이 직업적 노출로 인해 암이 발병하여 사망했고, 이는 전체 암 사망의 약 3.9%라고 추정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추정치를 적용하여 직업성 암 환자수를 추정하면 우리나라 매년 신규 암 환자수가 24만 명이므로 국내 직업성 암 환자 규모가 약 9600명 수준이어야 하는데 2023년 통계에서 직업성 암으로 인정된 사망자는 200여 명 수준이므로 직업성 암으로 확인되거나 인정받는 비율이 추정되는 직업성 암 환자수에 비해 매우 낮은 비율인 것을 알 수 있다. 각주2).  

직업성 질병 예방을 위한 데이터 수집을 이제야 시작

직업성 암만 이렇게 발견하기 어렵고 인정이 적게 되는 것일까. 업무상 질병 자체가 현행 산업자해보상보험법 체계에서 엄격한 인정기준과 상당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인정받기 어렵다. 그나마 직업성 질병으로 확인되는 여러 사례들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도 없었다.

2023년 6월에서야 처음 직업성 질병 통계관리를 위한 전산망 구축에 착수하였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계기로 직업성 질병에 대한 통계관리가 시작되었으며 같은 해 문을 연 직업병 안심센터를 통해 축적되는 데이터를 활용하고 다른 의료기관 등과도 연계할 계획인듯하다.

정부는 이러한 직업성 질병 데이터 축적을 바탕으로 예방정책 수립을 위한 정보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무수한 업무상 질병 사건들이 있었는데 정부차원에서 이를 관리하고 예방을 위한 정책 수립을 위해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을 2022년에서야 시작하다니 우리나라가 그동안 이룬 산업 규모에 비해 너무 늦었다. 그만큼 많은 노동자들이 병들어 아프거나 죽어가는 것을 방치한 것이다. 

직업성 질병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과정

필자는 직업성 암이나 파킨슨병, 만성신부전증 등 직업성 질병에 대한 산업재해 소송을 담당하면서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또는 확인할 수 없는 사업장을 재해자의 기억 속에서 불러내어 서면 위에 생생하게 재현해야 하는 업무상 어려움이 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취급한 화학물질의 종류도 위험성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당시 견디기 어려웠던 역한 냄새와 어지러움, 점점 몸상태가 나빠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묵묵히 사업장에서 맡은 바 업무를 성실히 한 기억만이 남아있고 그 결과로 질병을 얻었다.

생존한 노동자들은 그때 그 일로 이렇게 아플 줄 알았다면 그 일을 절대 하지 않았을거라 말한다. 유해물질에 대하여 누구 하나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았고 사업장이 안전한지 확인할 수도 없었는데 결국 그 사업장이 유해했음은 노동자들의 몸에 그대로 그 흔적을 남겨서 질병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럼에도 직업성 질병으로 인정받는 과정 역시 너무도 지난하다. 근로복지공단은 물론 법원에서도 질병은 '개인적 질환'으로 보는 것이 원칙이고 직업성 질병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로 보고 있기 때문에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기 위한 과정은 험난하다. 

직업성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사업장 관리 여전히 미비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 하는 경우는 중대산업재해로 규정하고 있다. 업무상 질병의 경우 유해물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을 때 대규모 인명피해를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중대재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직후인 2022년 두성산업과 대흥알앤티에서 트리클로로메탄 급성중독 사고가 발생하였다. 두성산업의 경우 세척제에 독성간염을 일으키는 트리클로로메탄이 들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화학물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유해화학물질을 상시적으로 취급하는 사업장에 국소배기장치도 설치되어 있지 않아 16명이 급성중독 피해자가 발생하였다.

두성산업 대표는 이 사건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의 범죄가 인정되었으나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현재 항소심 진행 중이다. 앞서 백혈병에 걸린 21세 청년 노동자가 일하던 휴대폰 부품 회사는 200여 명 노동자를 고용한 규모임에도 유해물질에 대한 안전관리가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50인미만 사업장의 유해물질 위험성 관리나 예방대책은 부재한 상황에서 직업성 질병 예방을 위한 법과 제도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해야하는지 갈 길이 멀다.  

직업성 질병 예방을 위하여

일하다 아프고 죽는 노동자들이 오늘 하루에 4명이라는 사실이 무겁게 느껴진다. 직업성 질병에 걸린 노동자들을 줄이기 위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현실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 필요하다. 직업성 질병 발생의 실태와 원인을 기록하고 현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통계자료 수집, 직업성 질병에 대하여 일반 국민들에게 인식 확산, 유해위험물질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져 사업장 위험성을 예방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법령의 정비가 필요하고 사업주들의 이행이 필요하다.

의무이행을 제대로 하지 않은 사업주에 대하여 그에 상응하는 제재조치도 필요하다. 작업환경측정 결과만 믿고 안전하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사업장 내 존재하는 모든 위험성을 점검하고 최대한 노동자들을 유해위험요인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의무를 부여하고 정부는 근로감독을 강화하는 한편 안전보건을 확보하고자 하는 사업주에게 정책적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현장의 노동자와 노동조합, 시민단체의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각주1) Doll R, Pete R. The causes of cancer: Quantitative estimates of avoidable risks of cancer in the United States today. J of the National Cancer, 1981:66(6):1192-1308
각주2) '노동자 암 예방, 현황과 전망', 김은아(산업안전보건연구원 원장)

덧붙이는 글 | 필자는 김용균재단 감사이자, 민변 노동위 노동자건강권팀 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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