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전주 픽사돔 달군 '청소로봇의 대모험'

김성호 2024. 5. 2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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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735]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픽사 in 전주' < 월-E >

[김성호 기자]

영화제를 즐기는 방법엔 정답이 없다. 상영되는 영화만도 수백 편, 상영방식 또한 천차만별이다.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만 해도 그렇다. 출품된 영화는 한국 영화만 1513편, 외국 영화까지 합치면 2260편이 모여들었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43개국 232편이 초청돼 상영되었는데, 각기 적게는 한 차례, 많게는 너덧 차례까지 상영 기회를 가졌다.

영화제에선 경쟁부문, 즉 국제경쟁이며 한국경쟁이라 불리는 섹션을 즐기는 이들이 단연 많다. 다른 영화제에서 만나기 어렵고 아직 배급도 이뤄지지 않은 신선한 작품을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또 영화제 심사위원처럼 아직 떠오르지 않은 영화의 가능성을 먼저 내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팬에겐 놓치기 아까운 기회가 되어준다.

그러나 경쟁부문엔 여러 아쉬움이 따르고는 한다. 경쟁부문에 작품을 출품하기 위해선 다른 영화제에 초청되지 않았어야 한다는 등의 제약이 따르게 마련이다.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선보이지 않은 작품을 전주에 처음 거는 것이 당연하거나 자연스러운 일일 수는 없기에, 작품의 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 월-E 포스터
ⓒ JIFF
 
2024 전주 픽사돔 최고 인기작을 다툰

그리하여 한국의 여러 영화제는 나름대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에 골머리를 싸매게 마련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다채로운 섹션이다. 특정한 주제 아래 기획된 일련의 작품군이 상영되기도 하고, 감독이며 배우의 특별전, 또 특정한 나라며 문화권의 영화가 두루 조명되기도 한다. 아예 어느 시대나, 장르를 돌아보기도 하는데, 영화를 잘 갖춰진 극장에서 만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면 옛 영화를 다시금 상영하는 매력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도 다양한 섹션으로 영화팬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그중엔 전주국제영화제가 직접 투자해 지원한 작품군으로 꾸려진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세계 영화계에서 새로이 '마스터'란 칭호를 받을 만한 이들을 추려 그 작품을 초청한 '마스터즈', 기존 관습과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기술을 적극 활용해 제작한 작품들을 모은 '영화보다 낯선', 영화라는 매체 자체를 사유하도록 하는 '시네필전주' 등 다양한 섹션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픽사 in 전주 with <인사이드 아웃 2>'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상징인 전주돔에서 개막식과 폐막식 당일을 제외한 8일간 상영된 특별상영 섹션이 되겠다. 지난해 <스타워즈> 시리즈에 이어 픽사 작품군 상당수를 돔에서 상영했는데, 전통적인 극장이 아닌 곳에서 분위기 있는 단체상영을 즐기려는 이들의 발걸음이 꾸준히 이어졌다.

픽사가 낳은 수많은 작품군 중에서도 특히 몇몇 애니메이션은 예매부터 치열한 경쟁을 예고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두 영화, < 월-E >와 <업>의 경쟁은 대단하였다. 어쩌면 자연스런 일이다. 픽사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많은 이들에게 최고로 치는 작품을 물으면 십중팔구 이 둘 사이에서 결판이 날 테니 말이다.
 
▲ 월-E 스틸컷
ⓒ JIFF
 
픽사의 전성시대를 활짝 열어젖힌

< 월-E >와 <업>은 픽사의 전성시대 한 가운데서 태어난 애니메이션이다. 해로 따지자면 2008년과 2009년으로, 픽사는 두 작품에서 연타석 홈런을 날리며 명실상부 세계 제일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발돋움한다.

< 월-E >의 감독은 앤드류 스탠튼이다. 픽사의 장편을 시작부터, 그러니까 <토이 스토리> 1, 2편과 <벅스 라이프> <몬스터 주식회사>부터 각본을 담당해온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다. 애니메이션의 총감독을 애니메이터가 해야 하느냐, 각본가가 해야 하느냐, 전문 연출가가 해야 하느냐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오가고는 하는데, 결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여러 분과를 제대로 이해한 이가 총감독을 맡아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앤드류 스탠튼이 바로 그러한 인물로, 앞선 여러 작품에서 각본을 넘어 연출과 애니메이션 작업에 이르는 이해도를 높여왔기에 연출자로 낙점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가 첫 연출을 맡은 작품은 <니모를 찾아서>다. 캘리포니아 예술학교, 일명 칼아츠 출신으로 애니메이터로의 정체성을 가진 존 라세터며 피트 닥터와 달리, 앤드류 스탠튼은 말 그대로 전문 스토리텔러로 분류된다. CGI 기반 애니메이션 기술력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던 픽사가 점차 이야기를 쌓아올리는 데 관심을 두게 되며 앤드류 스탠튼 휘하 작가진의 역할이 대두된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 월-E 스틸컷
ⓒ JIFF
 
애니메이션,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앤드류 스탠튼의 손에서 태어난 < 월-E >는 애니메이션을 넘어 영화 역사에 길이 남는 명작이다. 무성영화의 느낌을 한껏 살린 격조 있는 오프닝부터, 세련된 영상과 매력적인 설정, 탄탄한 이야기가 가져다주는 쾌감이 상당하다. 무엇보다 경쾌하고 재치 있는 장면연결도 인상적이다. 한마디로 끝내주는 애니메이션이다.

주인공은 로봇 월-E, 인류가 버린 지구에 홀로 남아 수백 년 동안 폐기물을 수거해 집적해온 로봇이다. WALL-E란 이름부터가 'Waste Allocation Load Lifter Earth-Class', 즉 지구 폐기물을 수거하고 처리하는 로봇이란 뜻이다. 그런 그가 수백년 만에 지표를 탐사하기 위해 온 첨단로봇 '이브'와 마주친다. 수백년간 잡동사니 수집만 하고 살던 월-E의 삶에 한 줄기 불꽃이 화르륵 타오른다.

고향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기다리는 우주선 속 인류와 그들에게 소식을 알리려 돌아가는 이브, 또 그를 쫓아 은하를 가로지르는 월-E의 모습이 다른 SF영화에선 마주한 적 없는 감상을 안긴다.

픽사돔의 열기, 영화제의 가능성

무엇보다 멋진 장면은 스탠리 큐브릭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의 그 유명한 명장면을 패러디한 부분, 그러니까 뚱뚱보 선장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웅장한 선율을 배경으로 그 위대한 걸음마를 시작하는 장면이었다.

오랜 시간 지구를 떠나 우주를 부유하며 육체를 쓰는 법을 잊은 나약한 인간이, 다시 한 번 스스로를 일으켜 걷는 장면을 영화는 그야말로 멋들어지게 연출한다.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에서 유인원의 뼈다귀가 하늘로 솟구쳐 마침내 우주선으로 화하던 그 유명한 연출을, 이 영화가 존경을 담아 다시 써보인 것이다. 죽더라도 인간으로 남고자 하는 인간다움에의 열망, 그 열망을 지닌 인간의 불굴의 의지, 그 모든 감동까지 증폭시키는 절묘한 패러디까지를 이 장면이 품어내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참말로 멋지고 멋지다.

폭우가 쏟아진 전주국제영화제에도 불구하고 픽사돔을 달아오르게 한 < 월-E > 상영은 이 작품이 지닌 생명력이 얼마나 강한 것이었는지를 확인하게 했다. 관객은 이 영화로부터 애니메이션과 영화가 지닌 힘을 느낀다. 픽사돔의 열기로부터 산업과 영화제가 품은 가능성을 깨닫는다.

단순히 매체와 개인의 상호작용을 넘어서 영화축제가 그를 찾는 이에게 일으키는 영향을 실감하게도 한다. 첨단 영상이 집 안에서 상영되는 21세기에도 영화제는 여전히 영화제만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가 그러했듯이.
 
▲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 JIFF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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