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성년의 의미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매년 5월 셋째 주 월요일은 성년의 날이다. 한국의 법정기념일 중 하나인 이날은 ‘만 19세가 되는 해의 1월 1일을 맞이한 신생 성인들을 장려하고 성인으로서의 책임감을 일깨워주는 목적’으로 지정되었다.
내가 성년의 날을 맞이했던 2000년대 초반에는 만 20세가 되는 해에 성년의 날을 맞이했는데 2013년 민법 개정으로 만 19세가 되는 2005년생 친구들이 이번의 성년의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성년이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성년이란 민법에서 법정 대리인의 동의 없이 법률 행위를 행사할 수 있는 나이를 의미하지만 통상적으로 성년의 나이가 되었다는 것은 어른이 되었다는 의미로 통한다. 여기서 어른이란 사전적으로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서 윗세대 선배님들은 항상 나이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어른이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갈 때가 되면 어른이 된다” 혹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봐야 진짜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불혹의 나이가 지나 예비군과 민방위훈련 모두를 마치고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해서 10년 넘게 회사에 다니고 결혼을 해서 아이 둘을 낳고 학부모까지 된 시점에서 “내가 진짜 어른이 되었나?”를 자문해보면, 딱히 그렇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비록 나이가 차고 삶에 있어서 겪을 수 있는 여러 단계를 넘은 것은 사실이지만 나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자신은 없다.
일본의 인기 만화 ‘주술회전’에서는 ‘어른이 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한 대사가 등장한다. 이 만화에 등장하는 나나미 겐토는 주인공인 이타도리 유지에게 사람이 어른으로 넘어서는 과정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당신은 그간, 여러 번 사선을 뛰어넘었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어른이 된 건 아니에요. 베개 밑에 빠진 머리카락이 늘어나거나 좋아하던 야채빵이 편의점에서 자취를 감추는 등 그런 작은 절망들이 겹겹이 쌓여 사람을 어른으로 만드는 겁니다.”
실제로 짧은 내 삶을 돌이켜보면 취업 혹은 결혼과 같은,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중대사 그 자체가 나를 어른으로 만든 적은 없다. 단지, 지금도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내가 매일매일 경험하고 있는 크지 않은 얕은 수준의 절망들이다.
가령 ‘화장실에서 우연히 뒷거울을 봤는데 어느새 정수리가 비어가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볼 때’, ‘아파트 분리수거 날을 깜빡해서 베란다가 재활용 쓰레기로 가득 차 버렸을 때’, ‘출근시간 급하게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몇 초 차이로 엘리베이터가 1층으로 내려가 버렸을 때’, ‘분명 주문할 때 시럽을 빼달라고 말했는데 한 모금 마신 아이스 아메리카노에서 달달함이 느껴질 때’, ‘지하철에서 에어팟을 꺼내다가 살짝 떨어뜨렸을 뿐인데 한쪽 에어팟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을 때’, ‘아끼는 만화책을 오랜만에 열어보았는데 첫 장에서 아빠 바보라고 쓰인 낙서를 발견했을 때’, ‘회사 동료에게 장난 섞인 내용이 담긴 이메일을 보냈는데 이메일 주소 한 글자를 다르게 적어 그 메일이 회사 사장에게 전달되었을 때’, ‘세면대 물을 받으려고 레버를 돌렸는데, 머리 위의 샤워기에서 찬물이 쏟아져내릴 때’와 같은 일상의 절망들. 나에게 매일같이 시행착오를 겪게 하거나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좌절을 맛보게 하는 이러한 작은 절망들이 오늘도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우린 앞으로도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대단한 수준의 성공 혹은 실패가 아니라 단지 이 작은 절망들을 넘어서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러니 부디 너무 심각하게 좌절하지 마시길. “올해 성년이 된 모든 2005년생 여러분께 축하의 인사를 전달 드립니다!”
임홍택 명지대 겸임교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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