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22대 국회 초선 131명에 거는 기대와 바람

2024. 5. 29.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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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성 경희대 철학과 명예교수

귀한 선물이 생겼다. 베트남 틱낫한(1926∼2022) 스님이 오래전에 쓴 『인터빙』(Interbeing·상호존재)이다. 가족과 먼저 나누련다. 그다음에는 곧 출범하는 22대 국회에 입성하는 여야 초선의원 131명과 나누고 싶다. 이 책은 ‘네가 있어야 내가 있다’는 공존공생의 원리를 담고 있다. “저 원수 같은 인간”도 사람이니 상호존재이고, 그래서 공존해야 한다는 원리다.

이 책의 핵심은 14가지 마음챙김(Mindfulness) 수행법이다. 수행법이란 마음가짐이고, 윤리 덕목이자 인생 지침이다. 이 지침에는 마음의 개방, 견해에 대한 무집착, 사상의 자유, 고통의 자각, 화 돌보기, 진정한 공동체와 소통, 진실하고 사랑스럽게 말하기, 생명 존중 등이 들어 있다. 마음을 챙기며 지침을 수행하면, 가정이든 나라든 평화와 행복의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

「 틱낫한 스님의 상호존재 역설
‘마음 개방’으로 관용 자세 갖고
공존의 가르침 솔선하길 기대

시론

초선의원들이 지침 수행에서 생성된 에너지를 잘 살리면 국회법 제24조에 나오는 국회의원 선서를 잘 지킬 수 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헌법 준수와 국민의 자유·복리 증진을 위해 선서 주체인 ‘나’ 자신의 양심을 따랐던 의원은 지금껏 몇이나 될까.

틱낫한 스님의 수행법이 가정이나 불교 승단을 넘어서 세속 정치까지 포함하게 된 것은 그의 인생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오늘날 한국의 대다수 출가자와는 달리 그는 30∼40대에 참혹한 베트남전쟁을 경험했다. 1960년대 증오와 폭력이 그의 조국을 갈기갈기 쪼개던 시절에 나온 이 수행법은 전쟁과 참화의 불바다에 핀 연꽃 같다.

14개 수행법 중에 먼저 ‘마음의 개방’은 어떤 공동체든 그 안에 있는 광신(狂信)주의나 불관용, 이분법적 사고에 맞서는 톨레랑스(관용) 정신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상호존재한다(interare)’는 사실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견해에 대한 무집착’은 우리의 많은 고통이 자기 견해와 그릇된 인식에서 온다고 깨닫고 상대의 말도 경청하자는 것이다. 그래야 집단 지혜도 생긴다. 셋째, ‘사상의 자유’는 다른 사람이 우리와 다를 권리를 존중하기로 약속한다는 말이다.

‘고통의 자각’은 나와 상대가 느끼는 고통을 알아차려서 이해와 자비심으로 서로를 대하자는 것이다. ‘화 돌보기’도 중요하다. 정치인들은 민심의 비판을 들어야 하니 화를 내기 쉽다. 화가 나면 화를 아기처럼 안아주고 언동을 삼가야 한다. ‘진정한 공동체와 소통’은 자비로운 경청과 사랑의 말을 하겠다는 약속이다. ‘진실하고 사랑스럽게 말하기’ 지침에 따라 분열과 증오를 낳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도 필수다. ‘생명 존중’이란 전쟁과 분쟁을 막고 일상에서 상호존재의 통찰을 기르자는 지침이다.

틱낫한 스님은 ‘견해에 대한 무집착’이 집단 지혜를 낳는다고 역설했다. 대화하고 협치하는 것이 국가를 위해 이득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헌법이야말로 집단적 지혜가 낳은 최고의 산물이다. 대통령에게도 헌법 수호의 책무가 있다. 결국 자유민주주의와 삼권분립 정신을 담은 헌법은 1948년 이래 한국인의 집단 지혜만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가 전해준 집단 지혜에서 나왔다. 헌법은 굳건히 지켜야 한다.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2∼3가지 지침을 신용카드 크기의 종이에 적어 지갑에 넣고 다녀도 좋겠다. 하나의 지침에는 다른 모든 지침이 들어있으니 하나만 잘 지켜도 된다. 그 지침을 헌법과 양심을 지키는 죽비로 삼기를 바란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15분 정도, 아니면 자동차로 이동하면서 명상을 실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봄볕이 좋은 5월엔 사흘만 비가 와도 햇빛이 그립다. 한국 정치는 지난 7년 내내 편 가르기가 난무했고, 갈등과 증오로 음울했다. 틱낫한이 남긴 지혜를 따르는 당신의 존재는 한국 정치의 먹구름 위에 비치는 햇빛 같은 희망이다. 공존의 원리가 담긴 지침을 실천하는 당신은 자신뿐 아니라 국민 전체에 긍정적 에너지를 줄 수 있다. 공존의 가르침을 앞장서서 실천해줄 그런 당신을 손꼽아 기다린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허우성 경희대 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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