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주 달아오르다 급락했지만…
올 들어 보험사 주가가 요동치고 있다. 정부의 증시 부양책인 ‘밸류업 프로그램’이 저PBR(주가순자산비율) 종목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1월 말부터 대표적인 저PBR주로 꼽히는 보험주가 일제히 급등했다. 이후 3월 말부터 배당락 여파로 잠시 주춤하다 4월 말부터 밸류업 프로그램 구체화와 1분기 호실적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가가 치솟았다. 5월 들어서는 신고가 종목도 속출했다. 여기에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회장이 이끄는 미국 투자 회사 버크셔해서웨이가 지난해 3분기부터 스위스 취리히에 본사를 둔 글로벌 손해보험사 처브를 비밀리에 사들였다는 소식도 국내 보험주에 호재로 작용했다.
그러나 최근 다시 보험주가 약세로 돌아섰다. 금융당국이 현행 회계처리 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안을 재검토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보험사들이 바뀐 회계기준제도에서 ‘실적 부풀리기’를 한다는 의혹이 제기된 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회계처리 방식이 바뀔 경우 보험사의 초기 이익이 현행 제도 대비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나 그동안의 실적 증대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우려에 주가가 내리막을 걷고 있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근본적으로 보험사 기초체력(펀더멘털)을 흔드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새 기준에 따른 착시 지적
올 들어 보험주 강세가 돋보였다. 올해 KRX업종지수 중 상승률 1위가 보험주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KRX보험지수는 연초 이후 지난 5월 21일까지 25% 상승했다. 삼성생명·삼성화재·DB손해보험·현대해상·한화생명·코리안리·롯데손해보험·미래에셋생명·동양생명·한화손해보험 등 국내 대표 보험주 10개 종목으로 구성된 지수다. 같은 기간 2.6% 상승한 코스피지수와 비교해 상승폭이 크다. KRX300금융과 KRX은행, KRX증권도 같은 기간 10~23% 올랐지만, 보험주 상승률에는 미치지 못했다.
올해 보험주 강세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꼽힌다.
먼저 1월 말부터 시작된 1차 랠리는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기대감 덕분이다. 이 프로그램이 도입되면 보험을 비롯한 만년 저PBR주로 분류되던 종목들이 수혜를 볼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이로 인해 KRX보험지수는 1월 31일부터 3월 15일까지 한 달 반 동안 21% 오름세를 보였다.
3월 말 배당락 이후로 잠시 주춤했던 보험주가 4월 중순 이후 2차 랠리를 이어간 배경은 보험사들의 1분기 호실적에 대한 기대감이다. 실제로 5월 들어 대형 손해보험사를 중심으로 호실적을 줄줄이 발표하면서 주가는 1차 랠리를 뛰어넘는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4월 22일부터 5월 20일까지 4주간 KRX보험지수 상승률은 21%에 이른다.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DB손해보험·메리츠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 등 5개 손해보험사의
별도 기준 1분기 합산 당기순이익은 2조5277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1조9921억원)보다 27% 증가한 수치다. 특히 삼성화재와 DB손해보험은 당기순이익이 각각 7010억원, 583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4.6%, 30% 증가하며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거뒀다.
그러나 보험사들의 이 같은 호실적을 두고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에 따른 착시 효과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장래 이익을 뜻하는 보험계약마진(CSM) 측면에서 초기 부채에 적용되는 할인율을 높게 설정한 탓에 계약 초기 이익이 과대평가되는 부분이 발생한다는 분석이다. 다시 말해 현행 회계처리 방식은 계약 초기에 이익을 크게 반영하고 후기로 갈수록 이익이 줄어드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IFRS17 도입 후 보험사들의 이익 증가분을 모두 착시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일부 회계기준 변경의 영향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제 도입 2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제도의 상세한 정비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실적 부풀리기 막는다
이익 감소 우려에 줄줄이 조정
결국 보험사 ‘실적 부풀리기’ 의혹에 금융당국이 직접 나선다. 초기부터 이익을 높게 반영하는 현행 회계 방식을 재검토한다는 소식이다. CSM을 현재 이익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현재 가치 환산을 위해 적용하는 할인율을 적용하지 않는 방안이 거론된다. 이 소식에 고공행진하던 보험주가 일제히 약세로 전환했다. 5월 22일 삼성화재 주가는 전일 대비 8% 급락한 34만4000원에 거래를 마쳤으며 DB손해보험(-6%), 삼성생명(-5%), 현대해상(-5%), 한화손해보험(-4%), 흥국화재(-4%) 등도 모두 하락 마감했다.
만약 CSM 상각률 산정 시 할인율을 반영하지 않는다면 보험사들의 계약 초기 이익은 현행 대비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 경우 보험사들은 전 보험 기간에 동일하게 이익을 배분하게 된다. 초기에 이익이 몰리지 않는 만큼 최근 보험사들이 누렸던 실적 증대 효과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설용진 SK증권 애널리스트는 “할인율 반영 여부에 따라 이익을 인식하는 시점이 변한다고 볼 수 있다”며 “향후 제도가 변경될 경우 보험사는 초기 이익 감소에 따라 단기적인 실적 저하 영향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긍정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시점별 상각률을 변경하는 조치라는 점에서 실질적인 손익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오히려 보험사 간 지나친 경쟁을 해소하고 재무 신뢰도를 높여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임희연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금융당국의 재검토 목적이 경쟁 해소와 재무 신뢰도 제고라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초기 CSM 상각 이익이 감소하는 방향으로 회계처리 방식이 변경될 가능성이 높다”며 “궁극적으로 CSM 규모와 본질적인 기업가치는 변동이 미미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현행 회계처리 방식에서 발생하던 재무 신뢰도 관련 우려가 해소되는 점을 긍정적으로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단기적인 이익 감소 우려보다는 향후 보험사의 주주환원 정책을 주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특히 현대해상을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증익 가능성이 높지만 밸류업 프로그램 동참이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로 경쟁사 대비 주가가 낮게 평가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현대해상의 연간 당기순이익은 약 1조2052억원으로 예상된다. 지난 4월 내놓은 추정치 1조124억원보다 19%가량 늘어난 수치다. 또한 현대해상 주가에 적용되는 PBR도 0.48배로, 0.76배인 업종 평균에 비해 지나치게 낮다는 분석이다. 이홍재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보험 업종 최선호주는 현대해상”이라며 “배당 불확실성 등으로 올해 주주환원 정책 기대감이 아직 반영되지 않은 탓에 경쟁사보다 주가가 저평가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만큼 다른 보험주보다 상승 여력이 높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가가 제시한 현대해상 목표주가는 평균 4만4414원이다. 5월 22일 종가(3만2600원) 대비 약 36% 높은 수준이다.
DB손해보험을 추천하는 애널리스트도 여럿이다. 실적 흐름이 견조하고 향후 주주환원 정책에 대한 기대감도 충분하다는 평가다. 강승건 KB증권 애널리스트는 “DB손해보험은 1분기 우수한 투자 손익 시현으로 실적이 예상치를 크게 웃돌았다”며 “경쟁 심화에도 상대적으로 양호한 CSM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어 “1분기 지급여력비율(K-ICS)도 231%로 투자와 주주환원 여력이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DB손해보험 목표주가는 평균 12만5714원이다. 5월 22일 종가(10만500원) 대비 25% 정도 상승 여력이 있다는 뜻이다.
[문지민 기자 moon.ji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1호 (2024.05.28~2024.06.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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