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간암도 중입자 치료 시대 열렸다…문의만 200건
난치암인 췌장암과 간암에도 중입자 치료 시대가 열렸다. 지난해 4월 국내 처음으로 전립선암 환자에게 중입자 치료를 시작한 이후 1년 여만에 암종이 확대되면서다. 중입자 치료는 양성자 치료에 쓰이는 수소 입자보다 12배 무거운 탄소 입자를 가속해 암세포를 죽인다. 주변에 손상을 거의 주지 않고 타깃만 정밀 폭격해 ‘꿈의 치료기’로 불린다.
연세암병원은 28일 췌장암 3기 환자 47세 김모씨에게 회전형 중입자 치료기를 첫 가동했다고 밝혔다. 그간 치료기가 고정된 상태에서 환자에게 중입자를 쏘는 고정형 치료기기만 쓰여 다양한 암을 치료하는 데 제약이 있었다. 전립선암에 한정해 치료했고 누적 270명(24일 기준)의 환자가 치료 받았다.
회전형 치료기는 360도 여러 방향에서 중입자를 쏠 수 있어 주변에 다른 장기가 있는 췌장암과 간암 등에도 적용할 수 있다.
김씨는 2021년 췌장암 3기를 진단받았다. 수술이 어려워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진단 당시에 종양이 복부 혈관을 둘러싸고 있어 24차례 항암을 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못 봤다. 황달 증세 때문에 스텐트를 삽입하고 약을 바꿔 항암을 지속하던 중 중입자 치료라는 희망이 생겼다. 김씨는 이날을 시작으로 3주간 매주 4차례 총 12회의 중입자 치료를 받는다.
췌장암의 생존율(5년)은 10%에 그친다. 병원은 “일본 방사선의학 종합연구소(QST)에 따르면 병기가 진행돼 수술이 불가한 환자는 항암제와 중입자 치료를 병행했을 때 2년 국소 제어율이 80%까지 향상됐다”라며 “중입자 치료 후 2년 생존율이 56%라는 성적도 나오고 있어 우수한 치료가 입증됐다”라고 했다.
국소 제어율은 치료받은 부위에서 암이 재발하지 않는 확률을 말한다. 특정 부위를 타깃하는 중입자 치료에서 치료 성적을 알 수 있는 주요 지표라는 게 병원 설명이다. 이날 간암 3기 진단을 받은 73세 여성 이모씨도 중입자 치료를 시작했다. 이씨는 총 4차례만 받으면 돼 일주일 만에 치료가 끝날 예정이다. 이씨는 2022년 진단 직후 수술을 받았지만 지난해 암이 재발했다. 이후 수술을 한 차례 더 받고 항암을 진행했는데 올해 또 재발해 면역항암제를 복용하던 중 치료를 받게 됐다.
병원은 “간암은 방사선 치료가 까다롭다”라며 “신경세포가 적은 탓에 통증을 잘 느끼지 못해 발견이 늦어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 진단받는다. 간경화 등으로 간 기능이 저하돼 방사선으로 인한 간독성 위험도 크다”라고 설명했다. 중입자 치료는 그러나 암세포만을 타깃해 고선량 방사선을 쏘기 때문에 부작용을 줄이고 치료 효과는 높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방사선 치료를 하면 주변 장기가 피폭돼 2차 암이 생길 우려가 있는데 그런 위험이 훨씬 덜한 것이다.
치료 효과도 기대해볼 만하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일본 군마대학병원에서 중입자 치료를 받은 간암 환자의 2년 국소 제어율은 92.3%에 달했다. QST의 임상 연구에서는 5년 국소 제어율이 81%로 나타났다. 병원은 “특히 종양 크기가 4㎝ 이상으로 큰 경우에도 2년 국소 제어율이 86.7%였고 2년 생존율은 68.3%로 높았다”라고 밝혔다.
금웅섭 연세암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췌장암과 간암은 주변에 정상 장기가 많고 발견이 늦는 경우가 잦아 수술이 어려운 상황이 많지만, 중입자치료는 이때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기존의 항암치료와 새로운 중입자치료의 조화를 잘 이뤄서 최고의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라고 말했다.
병원에 따르면 회전형 중입자 치료가 시작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날에만 예약 문의가 200건 들어왔다. 대기 환자는 췌장암 27명, 간암 2명, 폐암 1명 등이다. 폐암 환자를 대상으로는 이르면 다음 달 말 첫 치료가 이뤄질 예정이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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