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초 폐교 활용 ‘임실 오궁리미술촌’ 결국 문 닫나
작가들 “전국 창작 공간 명소 상징” 대책 호소
전국 최초로 ‘문닫은 학교(폐교)’를 활용해 30년 가까이 예술인들의 꿈과 희망을 품어 왔던 전북 임실 오궁리미술촌이 폐촌 위기를 맞았다. 건물들이 너무 낡고 붕괴 위험이 있어 교육청으로부터 “비워 달라”는 공문을 수차례 받았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오궁리미술촌은 폐교 활용과 창작 활동의 모범 사례라며 미술촌 보존과 예술인 지원 대책을 적극 세워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건물 붕괴 위험 “비워 달라”
28일 오궁리미술촌 등에 따르면 임실교육지원청은 임대 계약 해지를 알리고 퇴촌을 요구하는 공문을 최근 오궁리미술촌에 보냈다.
임실교육청은 “미술촌의 안전진단 결과 본관 건물은 D등급, 부속건물은 E등급을 받아 부득이 연장 계약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내년 6월까지 비워달라고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임실교육청은 1년 단위로 미술촌 임대 계약을 해 왔으나 2022년 12월 이후 연장 계약을 하지 않고 있다.
미술촌은 38∼42년된 건물을 그대로 활용하다 보니 너무 낡아 10여년 전 건물내에 비가 새고 지붕이 내려앉았다. 본관은 방수작업을 마쳤으나 전시장인 부속건물은 그대로 방치돼 있다.
그러나 비용 문제로 전면 보수작업이 어려운데다, 작가들에게는 손을 댈 권리가 없어 속수무책이라고 미술촌측은 밝혔다.
교육청은 폐교에는 시설보수와 지원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29년간 창작 공간 명소 충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신덕면에 위치한 오궁리미술촌의 스토리는 1995년 시작됐다. 1990년대 초 문을 닫은 오궁초등학교에 8명의 지역 작가들이 입주해 회화와 조각, 사진, 도예 등 다양한 창작 활동을 폈다.
당시 폐교를 문화공간으로 조성한 것은 전국 처음이었다. 작가들은 창작 스튜디오와 체험교육의 장, 농어촌 활성화의 산실로 운영하며 관광과 인구 유입 등 임실지역에 큰 보탬을 줘 왔다.
1996년에는 동계U대회 유치기념으로 16개국 작가들의 국제조각 심포지엄 작업공간으로 활용됐다. 또 지역민과 학생들에게는 문화예술 강좌와 방과후 미술체험, 일요 미술학교 등을 운영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입주 작가 중에 조각가들이 많은 덕분에 미술촌 마당은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조각공원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전국에 산재된 폐교들이 예술인들의 공간으로 잇따라 재변신했다. 지역 예술인들에게는 신바람을 안겨줬다.
2005년 당시 전병관 오궁리미술촌장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폐교에는 귀신이 나온다는 농담도 있지만 우리 삶터에서는 예술이 나온다”고 말했다.
작가들은 폐교활용 촉진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 한국예술촌총연합회를 창립해 전국문닫은학교연합예술제를 2003년부터 10년간 이어오기도 했다.
연합예술제에는 ‘가인예술촌(경남 밀양)’ ‘내곡미술관(경북 고령)’ ‘서해미술관(충남 예산)’ ‘경복미술문화원(전남 화순)’ ‘달오름미술관(전남 영암)’ 등이 참가했다. 어느 해엔 21명의 작가가 60여점의 작품을 전시하고 학술심포지엄, 주민들과 함께 하는 한마당 놀이 등을 펼쳤다.
당시 심포지엄에서 정준모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이 ‘전국 문 닫은 학교 활용방안’을 모색하고 박신의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폐교 문화 공간을 중심으로 ‘지방-중앙 간 미술교류 활성화를 위한 미술 스튜디오’의 가능성을 살펴봤다.
2021년 3월에는 7명의 작가가 전북도청 전시실에서 ‘오궁리미술촌 사람들’전을 열었다.
그동안 이 곳에서 창작 의지를 불태운 작가는 20여명에 이른다. 김한창(회화), 송계일(한국화), 선기현(서양화, 전북예총회장 역임), 이상조(서양화), 박인현(한국화, 연석산미술관 설립), 전병관(조각), 김경희(한국화), 이철수(사진, 용담호사진문화관 관장), 소찬섭(조각), 이길명(조각), 서경남(한국화), 최범홍(도예), 박승만(조각), 권성수(조각), 최헌(서양화), 소신영(조각) 작가 등이다. 이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국내외 전시와 개인 활동을 꾸준히 하며 중견 예술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 “대한민국 대표 재도약 도와달라”
작가들은 오궁리미술촌의 역사가 묻히지 않고 전북은 물론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창작 공간으로 다시 한번 자리매김할 수 있는 꿈을 꾸고 있다. 이를 위해 임실군과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전북자치도 등이 적극 나서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미술촌엔 2000년대 초반 9명의 작가와 가족 등 20명이 살았다. 그러나 갈수록 환경이 열악해진 탓에 현재 이 곳에서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작가는 4명뿐이다.
다른 도시에서 운영 중인 폐교 활용 미술촌과 비해 초라하기 그지 없는 상황이다. 대부분 자치단체에서는 미술인들의 창작활동을 돕기 위해 폐교를 리모델링하고 운영비까지 보조해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오궁리미술촌은 해마다 건물 임대료를 내고 있으나 관계기관으로부터 한 푼의 보조금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에서는 임실군이 폐교 부지를 사들여 예술인 지원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또 정치권도 작업장과 전시장, 숙소 등을 새롭게 꾸밀 사업비 확보에 앞장서야 한다고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범홍 오궁리미술촌장은 “우리 미술촌은 29년간 작가의 삶, 그 굴곡조차 묵묵히 지켜보며 품어 준 소중한 공간이자 문닫은 학교 활용 사례에 대한 상징성이 매우 큰 곳”이라며 “향후 젊은 작가들이 이곳에서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는 것은 물론 관광 임실을 유도하고 전국을 대표하는 예술인들의 요람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임실=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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