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워싱턴서 열린 ‘한국전 추모식’…“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김형구 2024. 5. 28.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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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모리얼 데이인 27일(현지시간) 워싱턴 DC 한국전참전기념공원에서 열린 ‘한국전 참전 추모식’에서 한국인 장인어른과 삼촌을 한국전 참전용사로 둔 릭 보거스키 전 센트라 테크놀러지 수석부사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자유는 공짜가 아닙니다.”(Freedom is not free)

미국 메모리얼 데이인 27일(현지시간) 워싱턴 DC 한국전참전기념공원에서 열린 ‘한국전 참전 추모식’. 매년 5월 마지막주 월요일로 지정된 메모리얼 데이는 한국의 현충일 격으로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추모하며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날이다.

후텁지근한 날씨 속에 열린 이날 행사에는 한국전 참전용사와 가족 등 200여 명이 참석해 한국전쟁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날 행사에서 릭 보거스키 전 센트라 테크놀러지 수석부사장은 한국전 참전용사를 둘이나 가족으로 둔 자신의 이야기를 추모사로 전하며 '자유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 이유'를 역설해 박수를 받았다.

미 육군 야전 포병장교,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보좌관 등으로 24년간 근무한 뒤 2000년 전역한 보거스키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두 명의 가족을 둔 사람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말문을 열면서 “다른 영웅들과 함께 기꺼이 목숨을 바치려 했던 영웅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보거스키 전 부사장은 한국인 장인어른, 그리고 삼촌 조지 투시 전 대령이 한국전에 참전했다고 소개했다. 서울에서 세 자녀를 둔 고교 교사였던 보거스키의 장인은 한국전이 발발한 1950년 7월 대한민국 국군에 입대했고, 2주간의 훈련 뒤 중위로 임관했다. 영어에 능통했던 그는 미 제2보병사단 제23보병연대 연락장교로 배치돼 인천상륙작전 성공 뒤 북진하는 미군을 따라 청천강까지 올라갔다가 중국 인민지원군의 개입으로 후퇴했다. 이때 잠시 들른 서울에서 갓 난 딸이 전쟁의 참화 속에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보거스키는 이 대목을 얘기하다 감정이 북받치는 듯 잠시 말을 멈추더니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며 읊조리듯 말했다. 포화 속에 목숨을 잃은 군인과 가족들의 희생 덕분에 후세대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됐음을 기억해야 한다는 묵직한 한마디였다. 보거스키의 장인은 1951년 6월 대구 인근에서 적군과 교전 도중 부상을 당했는데 미군 중위가 엄호해줘 간신히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미국 메모리얼 데이인 27일(현지시간) 워싱턴 DC 한국전참전기념공원에서 열린 ‘한국전 참전 추모식’에서 스티브 리(가운데 연단에 선 이) 한국전참전용사기념재단 회장의 구호에 맞춰 참석자들이 헌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보거스키의 삼촌 투시 전 대령은 미군 제8기병연대 제3대대에 배치돼 의료 지원 임무를 부여받았다. 1951년 가을 미군의 대공세 때 전선 후방에 배치돼 부상을 당한 병사들의 치료와 보호를 도왔다. 제3대대의 헌신적 활동 속에 많은 부상병들이 건강한 몸을 되찾았는데, 투시 전 대령의 같은 부대원 8명 중 상당수는 숨지거나 몸을 다쳤다고 한다. 보거스키 전 부사장은 “용기와 헌신의 상징인 영웅들을 다시 한번 기억하자”면서 “하느님의 은총이 그들 모두에게 함께 하길 기도드린다”고 했다. 그는 5분여 연설 도중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는 말을 네 차례 되풀이했다.


“미 참전용사 점점 사라져 가슴 아파”


이날 추모식엔 한국전 참전용사 손경준(92) 대한민국6ㆍ25참전유공자회 워싱턴지회장도 참석했다. 지난 30년간 참전 추모식에 참석해왔다는 손 회장은 중앙일보에 “추모식에 오는 미국인 참전용사들이 해마다 점점 줄더니 올해는 거의 안 보인다”며 “고령으로 하나둘 돌아가시거나 병환으로 몸져누워 그런 거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미국 메모리얼 데이인 27일(현지시간) 워싱턴 DC 한국전참전기념공원에서 열린 ‘한국전 참전 추모식’ 참석자들이 행사 후 기념공원에 놓인 조화를 살펴보고 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이날 행사를 주최한 한국전참전용사기념재단 스티브 리 회장은 한국전참전기념공원 한쪽에 마련된 ‘추모의 벽’에서 헌화 행사를 하고 있던 젊은이들을 가리키며 “저들은 한국전 참전용사의 손주 세대로 군에 복무한 적이 없어 희생을 통해 얻은 자유의 소중함을 직접적으로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2022년 7월 건립된 추모의 벽에는 한국전에서 숨진 미군과 카투사 전사자 4만3808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날 한미동맹재단과 주한미군전우회가 추모의 벽 헌화식을 주관했다. 리 회장은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눈을 감기 전에 우리 후손들이 기억하고 그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념공원을 찾은 이들은 전사자 기념비 앞에서 헌화를 했고 일부는 구호에 맞춰 거수경례를 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김 오스터브링크-폼페이오는 “한국전에 참전한 큰삼촌 어니는 여전히 행방불명 상태”라며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그들 덕분이다. 모든 것을 바친 그분들을 우리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메모리얼 데이인 이날 워싱턴 DC 인근 알링턴 국립묘지를 비롯해 시내 곳곳에서는 성조기가 나부꼈다. 의회 의사당 인근에서 시작해 백악관 남쪽을 거쳐 내셔널몰까지 이어지는 퍼레이드도 진행돼 시민과 관광객의 눈길을 끌었다.


바이든 “독재와 민주주의 싸움서 민주 지켜야”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메모리얼 데이인 27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열린 화환 헌화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열린 메모리얼 데이 기념식에서 한국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 등에서 숨진 장병들을 기리며 “우리는 이 모든 전쟁을 우리와 타인의 자유를 위해 싸워 왔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세대는 독재와 민주주의의 전장에서 싸워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5일 미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 졸업식 축사에서도 ‘독재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라’는 웨스트포인트 졸업생들의 2020년 공개서한을 거론했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거듭 강조하고 나선 것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맞붙을 11월 대선을 앞두고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부각해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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