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강화” vs “직업선택 침해”…‘개원면허’ 도입 촉각

신대현 2024. 5. 2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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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1일 서울의 한 종합병원 로비에 걸린 병원 홍보물 옆으로 의료진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의대생이 의사 국가고시 합격 후 수련교육을 받지 않고 면허만으로 바로 개원할 수 없도록 통제하는 방안을 정부가 검토하는 가운데 제도의 필요성을 두고 시각이 엇갈린다.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 정책 다음으로 의정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28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가 지난 2월 의대 입학 정원 확대 정책과 함께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개원면허제’ 도입이 담겼다. 개원면허제는 의대를 갓 졸업한 경험이 없는 의사가 일반의(GP)로서 곧바로 환자를 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로, 일정 기간 임상 수련을 마친 의사에게만 진료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골자다.

정부가 개원면허제를 꺼내든 이유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피부미용 분야 일반의 개원을 억제하기 위함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8∼2022년 일반의가 개원한 동네 의원 979곳 중 86%가 피부과를 진료 과목으로 (중복)신고했고, 42%는 성형외과였다. 의대 졸업생 가운데 상당수가 힘든 전공의(인턴·레지던트) 과정을 밟는 대신 위험 부담이 적으면서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일반의의 길을 걷는 것이다. 전문과 임상 경력이 없어도 세후 월 1000만원의 임금을 받으며 도시에서 근무하는 의사를 칭하는 ‘무천도사(無千都師)’라는 신조어까지 생겼을 정도다.

소위 인기과와 비(非)인기과 간 양극화도 심각한 문제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문의 자격증을 따지 않고 인기 진료과인 ‘피안성정재영’(피부과·안과·성형외과·정형외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 분야에서 근무하는 일반의 수는 2017년 말 128명에서 2023년 9월 245명으로 2배가량 증가했다. 2023년 9월 기준 이들의 절반 이상인 160명이 피부미용 분야인 성형외과(87명)와 피부과(73명)에서 종사하고 있다.

정부는 개원면허제 도입이 양질의 의료 서비스 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말한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지난 2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관련 브리핑을 통해 “임상 경험이 부족한 의사들이 피부미용 등 개원가로 나가는 것에 대해 보건적 우려가 있다”며 “의사들이 충분한 임상 경험을 쌓아 안정적인 진료 실력을 갖추고 개원할 수 있는 방안을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통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5월1일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안으로 의료진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아직 구체적 내용은 결정되지 않았지만, 현행 1년 과정의 인턴제 폐지 후 2년 동안 수련병원에서 임상수련의로 근무하는 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면허 취득 후 개원을 준비하는 의사라면 수련 기간이 2년 더 늘어나는 셈이다. 해외 사례도 대거 참고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미국, 캐나다, 일본, 중국 등은 의사 면허와 별도로 2~3년간 임상 수련 교육을 받아야 의사로 활동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의료계는 개원면허제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고, 의사 인력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반발한다. 경기 A재활병원 전문의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실손보험 확대 영향 등으로 개원하는 의사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라면서도 “정부가 개원가를 통제하겠단 건데, 인센티브 정책이 아닌 의료 규제 정책은 부작용만 낳았다. 개원면허제는 전문의 수급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안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대한민국은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고 헌법에서도 이를 보장하고 있다”며 “개원을 못하도록 막을 게 아니라, 젊은 의사가 전공과 경험을 살려 대학병원에 남아 진료를 이어가도록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경기 상급종합병원 응급의학과 B교수도 젊은 의사들의 통제 수단으로 개원면허제 도입이 검토되는 게 우려스럽다고 했다. B교수는 “‘모든 의사가 다 전문의가 돼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져봐야 한다. 이는 ‘모든 사람이 4년제 대학을 나와야 하나’라는 의문과 비슷한 맥락”이라며 “외국에서 일반의는 일차적 진료를 담당하기도 한다. 오히려 전문의가 되면 자신의 영역만 알고 다른 분야는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젊은 의사들이 기피과나 중증의료를 전담한다는 보장이 없는 가운데 일방적인 통제는 필수의료 인력의 이탈 현상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도 했다. B교수는 “제도적으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고치는 게 아니라, 규제와 통제만 더하는 정책은 부작용을 낳고 의정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면서 “필수의료에 종사하고 있는 의사들마저 정부 정책에 회의감을 갖고 등을 돌릴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필수의료 정책을 의료 현장에 효과적으로 적용하려면 각각 제대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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