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제약의 시대를 살았던 여성의 글쓰기

황융하 2024. 5. 28.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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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뮤지컬 <브론테>

[황융하 기자]

▲ 공연 포스터 배역을 맡은 배우와 오늘의 배우
ⓒ 황융하
 
일찍이 인류는 펜과 종이를 발명했다. 또한 붓과 캔버스도 활용할 줄 알았다. 그러나 문명의 사용이 모든 사람에게 허용되진 않았다. 오래된 남녀 차별은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도 여전했다. 그 시대를 살았던 브론테 세 자매(샬럿, 에밀리, 앤)의 삶, 그리고 글쓰기로 엮이는 여정이 뮤지컬로 제작되어 관객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 3월 4일부터 대학로의 링크아트센터드림에서 뮤지컬 <브론테>를 공연 중이다.

비 오는 날, 에밀리는 유령의 목소리가 들린다며 환청에 시달린다. 자매는 안타까워하며, 이를 모티브로 각자의 글쓰기에 풀어보자며 제안한다. 서로의 문장이 쌓이며 피드백을 위한 낭독이 진행된다. "요크셔, 히스꽃이 만발한 광활한 벌판…… 폭풍이 부는 날씨, 그곳에 한 여자가 있었다." 마치 소설 <폭풍의 언덕 (Wuthering Heights)> 어느 장면을 연상시키는 에밀리의 작품부터 샬럿의 <제인에어 (Jane Eyre)>, 앤의 <애그니스 그레이 (Agnes Grey)>. 작품 속 문장들이 줄줄이 튀어나온다.

자신의 글을 끝까지 밀고 나가려는 애절한 집착은 수시로 난관에 부딪히고, 자매는 서로를 응원하면서도 냉정한 비판을 감추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부르는 '써 내려가'와 '찢겨진 페이지' 등의 노래는 독주와 코러스로 전개되며, 앙상블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들 각자의 소설이 탈고되며 출간되는 과정이 애틋하고, "작품은 작가 자신이며, 삶의 투영이다"라는 말을 실감하도록 극이 전개된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았던 자매였건만, 그들 작품마다 고유하게 들어찬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어쩌면 우리는 1시간 40분이라는 러닝타임의 뮤지컬 속에서 그 실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극이 전개될수록 배우가 맡은 캐릭터의 성정은 더욱 두드러지는데, 자매가 집필했던 작품의 특징과 겹치기 때문이다. 배우들이 열연하며 드러낸 브론테 자매마다의 특성, 그리고 소설에 반영된 그들만의 고유성을 연결해볼 수 있는 기회이다.

자매와 관련된, 결코 소소하게 넘길 수 없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들은 모두 남자의 이름으로 작가의 필명을 대신했다. 자발적 검열이랄까, 성별을 감춰야 했던 당시의 모습이 지금에서는 희화적으로 다가온다.

이제 우리는 뮤지컬 <브론테>를 관람하면서 당시 여성의 포지션과 지금의 현재성을 비교하되, 그 차별과 배제가 어떤 양상으로 변모했고 어떤 층위를 향하는지 살펴야 하지 않을까. 이는 뮤지컬을 단순한 재미로 만족할 수 없고, 예술은 현실을 반영한다는 고유의 특성이 뭉그러지지 않는 한 여전히 붙잡아야 할 질문일 것이다.

뮤지컬 <브론테>를 관람하고 나오는 길, 입안을 맴도는 선율이 가락을 탄다. "써 내려가, 써 내려가." 샬럿, 에밀리, 앤 브론테. 세 자매는 그들이 처한 역경에서도 소설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집념은 여운으로 살아 공연 뒤안길에서도 일렁인다.

글쓰기의 고역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멜로디, 시 한 편을 써보겠다며 밤잠을 뒤척여본 경험이 있다면 충분히 동감하리라. <찢겨진 페이지처럼>도 서로의 갈등에 불을 지피며, 딛고 나아가도록 독려하지 않던가.

여성의 글쓰기가 제약되던 빅토리아 시대를 살았던, 짧은 생애와 창작의 과정을 오롯이 담아낸 각색이 일품이었다. 노래는 친근하고 환상적이었고 이를 잘 소화한 배우들의 열연도 빛났다.

자매의 각기 다른 성격과 지향점이 색다른 소설로 탄생하게 되었는데, 그런 관계와 과정을 제대로 보여 준 뮤지컬이었다.

해당 공연의 시츠프로브(배우와 오케스트라의 리허설) 영상도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본 공연 관람 전과 후에 확인한다면 감동은 배가 된다.

공연은 오는 6월 2일까지이다. 마감이 촉박하다. 이제라도 관람해보기를 추천한다. 그리하여 브론테 자매가 시대를 관통하며 선사했던 소설과 집필 과정에서 보인 감동을 마주하게 된다. 여전히 머무르고 있을, 현재의 차별과 제약이 어느 영역에서 자행되는지를 탐색하는 일은 관람자의 몫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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