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대 교수들 “이대로면 파국은 정해진 미래…협의체 논의해야”
일차의료 역할 강조…“의료전달체계 정비돼야”
“의대 정원 일시에 50% 늘리는 나라 한국이 유일”
“尹대통령, 의료계 붕괴시킨 책임자로 손가락질 받게 될 것”
“지난 몇 달간 정부는 불합리한 정책이 촉발한 현 의료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미명 하에 충분한 검토 없이 설익은 정책을 쏟아냈다. 이대로라면 의료 파국은 정해진 미래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석 달이 지났지만 복귀는 요원하다. 이들이 떠난 자리를 지키는 현장 의료진은 지쳐간다. 서울대 의대와 서울대병원 교수들은 교육할 학생과 전공의가 곁에 없다는 것이 절망스럽다고 말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결단해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를 중단하고, 현장 의료진과 국민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된 의료개혁을 시행하자는 요구가 높아진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2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의대 증원 확대 등 의료개혁 정책을 중단한 뒤 올바른 의료체계 개선방안을 상설 협의체에서 논의하자고 대통령실에 촉구했다.
강희경 비대위원장은 1·2차 의료기관에서 주치의가 만성질환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등 1차의료가 튼튼해지는 게 바람직한 의료체계라고 했다. 강 비대위원장은 “가까운 의원이 인근 주민의 건강을 책임지고 관리해주며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 상급종합병원에 신속히 연계해 진료받을 수 있는 체계가 자리 잡는다면, 이것이 가능하도록 의료수가체계와 의료전달체계가 정비된다면 떠났던 동네 의원은 다시 돌아올 것”이라며 “1·2차 의료기관과 경쟁하며 경증 환자를 보던 상급종합병원은 본래 역할인 중증 진료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효과를 볼 수 있는 이러한 의료개혁은 왜 뒷전으로 밀려나 있나”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정권과 공무원의 임기에 좌우되지 않고 튼튼한 재원과 법적 구속력을 갖는 협의체에서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 방안을 논의하자고 했다. 강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2028년까지 10조원 이상의 건강보험 재정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정부의 다양한 약속이 규정과 재정의 문제로 지켜지지 않아왔음을 기억하고 있다”면서 “정권의 실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 증진을 위한 정책을 만들 수 있는 상설 협의체를 만들어달라”고 강조했다.
의대 정원을 일시에 50% 늘리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고도 했다. 지난 24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제2차 대학입학전형위원회를 열고 내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 변경사항을 심의·의결했다. 이에 따라 올해 치러질 내년도 의대(의학전문대학원 포함) 모집 정원은 전년도보다 1509명 늘어난 4567명으로 결정됐다.
강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각 대학의 교육 여건을 사전에 충분히 조사했다고 하지만, 한국의학교육평가원에 의하면 의대 정원이 10% 이상 변경될 경우 의대 인증을 다시 받아야 한다. 증원이 필요하다 해도 한 번에 10% 미만의 증원이어야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하다”며 “필요한 의사 수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면, 이를 위한 시설과 교수진을 먼저 확보한 후 학생 수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의대 증원을 한다고 이른바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강 비대위원장은 “우리나라 아이들의 숫자는 지난 20년 동안 절반 가까이 줄었지만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수는 두 배 이상 늘었고,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훨씬 더 많이 늘었다”면서 “이들이 안심하고 소신껏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진료할 수 있는 법적 안전망과 함께 원칙에 따른 치료로 의료기관 운영이 가능한 수가체계를 만들면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정부가 전공의 수련교육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 비대위원장은 “전공의들이 열악한 근무 환경 때문에 병원을 떠났다고 호도하는 정부의 선전과는 달리, 이들은 수련 환경의 열악함을 알고도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는 의료 전문가가 되기 위해 수련을 선택했다”며 “정부는 전공의가 국가 자산이라 말하지만 국가가 이들의 수련에 지금까지 어떠한 투자를 해왔나”라고 짚었다.
그동안 의료계 내부에서 자정 능력이 부족했던 점을 인정하며 이를 강화하고 의료 공급자로서 국가적 책무를 되새기며 정책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단 뜻도 전했다. 대학 총장들을 향해선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 의사국가고시 응시 불가나 폐교 처분이 내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통령실을 향해선 “지금은 의대 정원 증원이 지지율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대로 강행된다면 대통령께선 우리나라 의료계를 붕괴시킨 책임자로 손가락질 받게 될 것”이라며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 용기도 지도자의 덕목이다. 의료개혁이 현장의 의료진과 국민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된 올바른 정책이 되도록 대통령께서 현명한 판단을 하실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아울러 국회를 향해 “국민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입법부, 국회가 유일하다”며 “2020년 의정 합의가 이제라도 지켜지도록 의료 전문가 집단이 포함된 국회 내 협의 기구를 설치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충분히 논의해달라”고 촉구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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