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영업을 하는 게이 노동자입니다
일터에서 성소수자 노동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많은 성소수자 노동자가 차별과 혐오를 피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노동권팀은 드러나지 않는 성소수자 노동자의 삶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 성소수자 노동자'를 통해 다양한 지역과 현장에서 노동하는 여러 정체성의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삶을 다섯 차례에 걸쳐 전합니다. <기자말>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 [나, 성소수자 노동자 ⑤]자영업을 하는 성소수자 이야기 |
ⓒ Khachik Simonian |
돈카츠 외길 인생
꿈이 많았던 푸디 님은 고등학교 졸업 후에 취업한 곳에서 '조직 사회가 나랑 안 맞는' 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살까, 고민하던 시기에 호주에 있는 친구를 보러 무작정 해외여행을 떠났고 거기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전반적인 분위기 속에서 식당을 하급 직업으로 대우했던 당시 한국사회와는 달리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손님들도 서로 존중하고 있었다. 이전부터 요리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남자가 요리를 한다는 것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참아왔던 마음이 호주에 다녀온 후 "내가 할 일은 요리다" 나아갈 미래가 됐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31살이었다.
어떤 일도 준비없이 되는 일은 없는 법. 31살에 자영업을 결심하고 돌아와 요리를 배우고 일식 돈카츠 가게에 취업해 일을 배웠다. 6년의 시간이 지난 후, 37살에야 자신의 가게를 차릴 수 있었다. 첫 가게를 연 곳은 중림동이었다. 5년 정도 영업하면서 종잣돈을 모을 수 있었다. 매너리즘을 느낄 때쯤 과감하게 가게를 접고 2년을 쉬면서 다시 돈카츠 공부를 했다. 고기를 즐겨 먹지 않는 편임에도 "일본에 가서 며칠씩 돈카츠만 먹고 오기"를 반복했다. 다시 가게 자리를 알아볼 때도 조심스러움이 더해졌다. 상권이 어떤지 계속 재어봤다. 이미 한 번 해봤기 때문에 여러 조건들을 고려하게 됐고 나이를 먹으니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졌다. 한 가지의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는 100가지의 다른 일들을 감당해야 한다는 말이 있듯 장사를 위한 준비는 철저해야만 했다. 그렇게 지금 자리를 잡은 곳에서 7년째 영업 중이다.
"가게에서 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아요. 재료가 동시다발적으로 없는 게 아니라 오늘 하다 보면 다음 날 먹을 게 없는, 그러면 그거를 항상 체크를 해요. 고기를 만들면 저는 한 3일 안에는 소진을 하거든요. 사실은 매일 만드는 거예요. 오늘은 등심, 내일은 안심, 또 드레싱도 만들고, 오늘은 시장에 갔다 와야 되고 뭘 해야 되고 이게 머릿속에는 24시간 내내죠. 집에서 자려고 해도 아침에 뭘 할지 생각해두고. 가게 생각밖에 없어요."
▲ 푸디 님의 머릿속은 24시간 내내 가게 일로 차있다. 5시 30분, 저녁 장사를 막 시작한 시간이다. |
ⓒ 인터뷰이 제공 |
"저는 손님이 있든 없든 간에 내 휴식시간에는 쉬어야 한다는 게 있어요. 돈 만 원 더 벌려다 제 몸이 상하니까. 장사를 하려면 내 위주여야 돼. 뭐 예전 같았으면 하루 한 개라도 더 팔려고 했을 텐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요."
손님을 대할 때도 자신의 원칙을 고수하려고 한다. "만약에 (손님이) 정말 나를 화나게 한다면 참지 않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요."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는 한 명 한 명이 소중하기 때문에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하루이틀 하고 말 것이 아니라면 몸도, 마음도 다치지 않게 스스로를 보호할 최소한의 장치로써 원칙과 이를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성소수자로 자영업자로
"예전에 방송을 하자고 사람들이 왔었는데 제가 거절했어요. 그 이유가 게이여서 였는데, 방송에 나오면 관심도 많아지고 아웃팅에 대한 걱정도 있었던거죠. 방송이 나오고 댓글에 '사장이 게이라더라'(라는 말이 달릴 수도 있다) 이런 생각까지도 하는 거예요."
다른 누구보다 가족이 알게 되는 것이 두렵다. 가게 인테리어를 세심하게 신경 썼으면서도 무지개 소품 하나가 없는 것은 가끔 가게에 들르는 누나가 알게 될까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또 퀴어 업소에 일반인들이 많이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 반가운 변화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내심 불편한 마음도 생긴다. "호기심으로 대하는 건 불편한 거죠. 그 사람들이 친화적이라고 하지만 절대 친화적인 게 아닌거 같고".
▲ 항상 물을 만져야 하는 요식업의 특성 상 핸드크림 같은 건 발라 본 적 없는 투박한 손이지만, 이 손으로 10년 넘게 돈카츠를 만들어 왔다. |
ⓒ 인터뷰이 제공 |
자영업 노동자를 노동자로 바라보기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때문에 임금 노동자들은 작업환경이나 직업병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는 데 반해 자영업 노동자들이 처한 노동환경이 어떤지에 대한 연구나 통계는 전무하다. 자영업 노동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데 이성애 가족 중심의 제도는 자영업 노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영업자들은 1년에 4번 부가세를 내고 5월 달에 종합소득세를 내는데 다자녀거나 65세 이상 부양하거나 하면 혜택이 많아요. 근데 싱글들은 종합소득세 세제혜택이 전혀 없어요."
"가족구성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일하는 사람이 없을 때 대체인력이 많지만 게이인 저는 그렇지가 않잖아요. 다행히 주변에 누님들이 살아서 도와주시지만 매번 미안함이 크죠. 파트너도 자기 일이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가장 힘든 순간은 가게를 비워야 할 때이다.
"몇 년 전에 제가 탈장이 와서 수술하고 3일을 입원했는데 당장 병원을 가야 된다고 했지만 3일 동안 가게 문을 닫아야 하고 식재료도 정리해두어야 하고... 바로 못가는 거예요. 그리고 가면서도 마음이 편치가 않은 거죠."
반나절 가게를 비우는 게 부담스러워 건강검진 받기도 어렵다는 푸디 님은 아파도 병원에 가기 힘들 때 가장 서럽다고 말한다.
푸디 님은 게이이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싱글일 수밖에 없고, 싱글이기 때문에 자영업자로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토로했다. 이는 성소수자들의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요구함과 동시에 1인 자영업자를 위한 지원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한다.
"대체 인력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거 같고 하루 임대료가 150만 원 정도면 일 5만 원이니까 그거라도 보존이 되면 저는 좋을 거 같아요."
마음 놓고 장사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함께 꿈꾸면서 그럼에도 자영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할 수 있는 조언과 푸디 님의 꿈을 물었다.
"포기해야 해요. 내 생활을 좀 포기하고... 도와줄 수 있는 가족이 없다는 거, 싱글인 게이로 자영업을 한다는 건 몇 배로 더 힘들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책임의 무게를 생각하라는 충고다. 거듭 이 부분을 강조한 것은 이성애 가족 중심의 사회에서 홀로 버텨내어야 했던 시간이 그만큼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리라. 더불어 자영업으로 돈 버는 일을 쉽게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생활에 많은 부분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반짝할 아이템에 솔깃해 장사를 시작하지 말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원칙을 가지고 진득하게 밀어붙일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만한 각오로 시작했다면 자영업은 소박한 만족감을 주는 일이기도 하다. "'먹어본 음식 중에 제일 맛있다'고 평가해줄 때나 가끔 테이블을 치울 때 남긴 거 없이 다 먹고 가시는 거 볼때는 정말 기분 좋죠". 그래서일까. 힘들다면서도 푸디 님의 꿈은 여전히 소박하게 자영업 노동자로 살아가는 일이다.
덧붙이는 글 |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노동권팀 홈페이지 http://rainbowatwork.org 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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