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감독 '쪽대본' 버티고 소주 원샷…데뷔작이 칸 초청된 한국 피아니스트
본업은 클래식 피아니스트
우연히 오디션 본 첫 영화
이탈리아 거장 발탁, 칸 데뷔
이탈리아 거장 난니 모레티(71) 감독의 영화 ‘찬란한 내일로’로 배우 데뷔해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은 한국인 피아니스트가 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클래식 피아니스트로 활동해온 유선희(42) 씨다. 친구 권유로 처음 도전해본 이 영화 오디션에서 덜컥 발탁돼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부문 상영 당시 13분간 기립박수까지 받았다.
‘찬란한 내일로’는 ‘아들의 방’(2001)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모레티 감독의 9번째 칸 경쟁 진출작. 모레티 감독의 분신 격인 유명 영화감독 조반니(난니 모레티)가 5년 만에 연출하는 영화 제작에 난항을 겪는 정치 코미디다. 무산 위기의 영화를 구해주는 한국인 투자자들의 통역사를 유씨가 연기했다.
이탈리아에서 ‘찬란한 내일로’가 난니 모레티 전작 최고 기록인 330만 달러(약 45억원) 넘는 흥행을 기록하면서, 그도 배우로서 제2의 인생이 펼쳐졌다. 이탈리아 영화, 넷플릭스 드라마 출연 등 불과 1년만에 신데렐라로 급부상했다.
평생 피아노만 쳤는데…첫 오디션 영화로 칸 초청
유씨는 6살부터 각종 피아노 콩쿠르에 입상했다. 예원학교를 거쳐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발프리도 페라리 초대로 이탈리아에 건너갔다. 14살 때 로마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 수석 입학 및 수석 조기 졸업하는 등 피아노만 친 인생이다.
연기를 배운 적이 없는데도 안정된 연기를 선보인 비결은 뭘까. 유씨는 피아니스트로서 오랜 무대 경험과 함께 모레티 감독의 ‘쪽대본’에 공을 돌렸다. “감독님이 대본을 매번 촬영 전날 주셔서 전날 달달 외서 가는 게 단련됐죠. 완벽주의자로 유명하셔서 거의 모든 장면을 20번 테이크씩 하루 종일 반복 촬영했어요. 카메라가 돌기 1초 전 대사를 바꾸곤 한 감독님 요구가 점점 익숙해지더군요.”
이탈리아 영화에 소주 '원샷' 축하주 제안
영화엔 한국 영화 제작자에 대한 가벼운 풍자도 나온다. “한국 제작자들이 조반니의 영화를 자극적인 내용으로 오해해 투자를 결정한다”고 유씨는 설명한다. 극 중 통역사는 조반니에게 “대본이 훌륭하다”면서 “예술과 공산주의의 죽음에 관한 영화”라는 해석을 보탠다. 그런데 사실 조반니의 영화는 1956년 헝가리 서커스단이 방문한 한 이탈리아 마을을 무대로, 스탈린의 소련과 그에 맞서 독립을 꾀한 헝가리 사이에서 이탈리아 공산당의 고민과 나아갈 지점을 그린 작품이다.
극중 이미 넷플릭스(실명 그대로 나온다) 투자팀의 회의적 반응에 좌절한 조반니는 한국인들의 오해를 굳이 바로잡지 않고 그들의 자본으로 영화를 구해낸다.
유선희씨는 “이탈리아에서 한국 영화‧드라마가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요소로 알려지긴 했다. 예술적인 한국영화도 있지만, 대중이 알기 쉬운 요소가 반영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유씨가 곁에서 본 모레티 감독은 한 마디로 “괴짜”였다고. 그는 “감독님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세지만, 자신의 결점‧어려움을 감추지 않는다. 영화 속 조반니와 똑같다. 전 세계 관객이 보는 영화에 자신을 그렇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건 쉽지 않다”면서 자신도 “배우이자 음악가로서 나만의 색깔을 찾는 게 숙제”라고 밝혔다.
“어려서부터 ‘서태지와 아이들’ 등 가요도 좋아했다”는 유씨는 “지금도 싱어송라이터 막스 가제 투어에 참여하고, 재즈‧일렉트로닉‧팝 뮤지션과 협업한다. 뮤직비디오 연출을 직접 해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경험을 접해야 예술세계도 풍부해진다”는 그의 지론은 배우 활동을 겸하게 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한국·이탈리아 잇는 소통가…한국어 연기 꿈꾸죠
“한국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살면서 두 세계 안에서 저만의 정체성을 찾아왔어요. ‘찬란한 내일로’에선 두 언어 세계의 소통을 중계하는 역할이란 점이 의미가 컸죠. 언젠가 모국어로 연기하며 캐릭터에 100% 빠질 수 있는 한국 작품에도 출연하고 싶습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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