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 살리는 '작은' 스티커... 주민들도 놀랐다

이재환 2024. 5. 28.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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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방음벽에 '5*10cm 규칙' 스티커 붙인 후 새 사체 사라져... "충돌방지 효과 만점"

[이재환 기자]

 
 지난 4월 충남 예산홍성 환경운동연합 활동가와 회원들이 예산의 한 도로변 방음벽에 '5?10cm 규칙'이 적용된 조류충돌 방지 스티커를 붙인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이재환
 
씨앗을 퍼뜨리고 해충을 잡아 먹는 새는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 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건물 벽면의 유리창과 도로변 투명 방음벽과 같은 인간이 만든 인공구조물은 새들에게는 치명적이다. 충돌사고로 새들이 생명을 잃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2월 충남 예산군의 한 도로변에서는 붉은부리찌르레기 12마리가 투명 방음벽에 부딪쳐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소식이 알려지자, 지난 4월 지역 환경단체에서는 해당 방음벽에 이른바 '5˟10cm 규칙'이 적용된 조류 충돌 방지 스티커를 붙이는 작업을 벌였다. 5˟10cm 간격으로 붙인 스티커는 새들에게 그물 혹은 장애물로 인식된다. 새들이 장애물을 피하는 특성을 이용해 충돌사고를 방지하는 원리이다. 

지난 24일 기자는 충돌방지 스티커를 붙인 방음벽을 다시 찾았다. 조류 충돌 방지 스티커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5˟10cm 규칙'의 조류충돌 방지 스티커가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취재운'이 따른 것인지 조류 충돌 사고를 목격하고 이를 시민사회에 알린 주민 A씨를 만날 수 있었다. 사전 약속 없이 주민들을 무작정 찾아가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A씨를 만난 것.
  
 지난 4월 충남 예산군의 한 도로변 방음벽 앞. 투명방음벽에 부딪혀 숨진 알락할미새가 발견됐다. 현지 주민들에 따르면 '5?10cm 규칙'이 적용된 조류충돌방지 스티커를 붙인 이후, 새들의 사체가 보이지 않고 있다. 충돌 사고가 현저하게 줄어든 것이다.
ⓒ 이재환
   
A씨는 "지난해 초 (투명) 방음벽을 설치한 뒤로 이상하게 새가 많이 죽었다. 새들이 무더기로 죽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유심히 살펴보니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죽은 새가 발견됐다. 처음에는 독극물에 의한 사고가 아닌가 의심했는데, 자세히 보니 방음벽에 부딪쳐 발생한 사고라는 것을 알게 됐다. 지인에게 말했더니 환경단체에서 나와 스티커를 붙였다"라고 전했다. A씨의 지인이 환경단체에 제보를 한 것이다. 

조류충돌 방지 스티커의 효과에 대해 A씨는 "지난해 가을과 겨울 사이에 새들이 유난히 많이 죽었다. 그러나 스티커를 붙인 뒤로는 새의 사체를 발견하지 못했다"라며 "처음에는 무슨 효과가 있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컸다"라고 말했다.

자리를 옮겨 홍성군 장곡면 29번 국도 일대도 확인해 봤다. 이 일대는 지난 2021년부터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과 지역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5˟10cm 규칙'의 조류충돌방지 스티커를 꾸준히 붙여온 곳이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 B씨는 "가끔 고양이가 죽은 새를 물고 가는 일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본 적이 없다. 전에는 자주 보였는데, 요즘에는 방음벽에 부딪혀 바닥에 떨어져 죽은 새도 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조류충돌방지 스티커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4일 '5?10cm 규칙'이 적용된 조류충돌 방지 스티커가 붙여진 충남 예산군의 한 도로 방음벽을 찾았다. 새들의 사체는 보이지 않았다.
ⓒ 이재환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관리연구실장은 27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투명 방음벽에 조류충돌방지 스티커를 붙일 경우, 충돌사고가 92~96% 정도 방지 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대부분 플라스틱 재질이다 보니 자외선을 만나면 노후화되는 단점이 있다. (그 때문에) 요즘 새로 만든 방음벽의 경우 방음벽에 아예 충돌 방지 시스템을 넣고 있는 경우도 있다"라며 "최근에는 많이 사용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물론 조류충돌 방지 관련 규정과 법도 마련된 상태이다. 김 실장에 따르면 지난 2021년 행정규칙으로 '방음시설 성능 및 설치 기준'을 마련했다. 해당 행정규칙에는 투병 방음벽을 사용할 경우 조류충돌 방지를 위한 문양을 넣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2021년 개정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도 공적 영역(개인주택이 아닌)에 있어서 인공구조물이 반사를 일으켜 조류 충돌이 예상될 경우 이를 방지하는 기법을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벌칙 조항(과태료)이 없어서 조류충돌 방지 시스템을 강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김영준 실장은 "지금은 법령이 마련되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라며 "다행히 건설사들도 방음벽으로인한 조류 충돌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플라스틱 방음벽의 경우 최근 화재 사고 발생이 많아 유리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때 조류충돌방지 시스템이 들어간 유리 방음벽을 사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새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 해충 방제, 종자 분산 역할 커"
 
 충남 홍성군을 지나는 29번 국도변, 이곳에도 지역 환경단체들이 '5?10cm 규칙'이 적용된 조류충돌 방지스티커를 붙였다.
ⓒ 이재환
 
조류 보호 조치를 빠르게 실행에 옮길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실제로 조류 전문가들은 생태계를 위해서라도 새를 적극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새 박사'로 이름이 알려진 조삼래 공주대학교 명예교수는 "새는 산림에 있는 벌레와 각종 해충을 잡아 먹는다. 물론 해충도 나름 생태적인 기능이 있다. 그러나 새가 해충을 잡아 먹음으로써 해충이 대량으로 발생하는 것을 막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새는 종자를 분산하는 역할도 한다. (딱따구리처럼) 도토리를 물어다가 저장하는 새가 있다"라며 "저장한 자리에서 싹이 나고 나무가 자라기도 한다. 새는 찔래, 은행 등의 열매를 먹고 씨앗을 배설하기도 한다. 산에 나무를 퍼뜨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조 명예교수도 새들을 보호하기 위해 조류충돌 방지 시스템 도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단순하게 새그림이 그려진 스티커는 효과가 없다. '5˟10cm 규칙'이 들어간 그물 패턴의 스티커가 효과가 있다.  

조 명예교수는 "(5˟10cm 규칙이 아닌) 독수리 사진 형태의 조류 충돌 방지 스티커는 효과가 없다"라며 "독수리는 작은 새를 사냥하지 않는다. 참새와 같은 작은 새들은 독수리가 자신들의 천적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다. 스티커를 붙여도 굳이 피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 모양이 아닌 패턴이 있는 점 형태의 충돌 방지 스티커는 새들이 장애물로 인식해 충돌을 방지하는 효과가 클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새는 나무의 멸종을 막기도 한다. 인도양의 모리셔스 섬에는 날지 못하는 도도새가 있었다. 이 새가 멸종한 뒤 섬에 있던 칼리바리아 나무도 번식을 멈추고 멸종위기를 겪었다. 이 나무는 도도새의 소화기관을 통해 씨앗을 발아하는 특징이 있다. 그나마 다행히도 칠면조가 도도새의 역할을 대신하는 바람에 칼리바리아 나무는 가까스로 멸종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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