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주택' 짓는 美대학…"학교는 돈 벌고, 입주자는 평생교육"[시니어하우스]

박유진 2024. 5. 28.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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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학이 노인주택 짓는 미국
美 '대학기반 은퇴자 마을', 2032년까지 400개 이상
중산층 노인들 주로 이용
건강할 때 들어와 아프면 요양원으로, 연속보호체계
"대학에는 수입, 입주 노인들에게는 평생교육 제공"
"한국 지방 대학들에게 좋은 사업 모델"
김정근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 인터뷰
"미국에는 '대학기반 은퇴자 마을'이라는 게 있어요. 대학 캠퍼스가 워낙 크니까 그 안에 실버타운을 만들어요. 입주한 노인들이 학생들과 섞여 대학 수업을 들을 수 있고, 체육관과 도서관 같은 시설도 이용할 수 있죠. 우리나라에도 적자로 고심하는 대학이 많은데, 정말 한국에 딱 맞은 사업모델입니다."
지난해 11월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 소속 미식축구팀이 자대 대학기반 은퇴자 마을인 '더 빌리지 앳 펜스테이트' 입주 노인들과 만나 교류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더 빌리지 앳 펜스테이트(The Village at Penn State) 페이스북 페이지

지난달 25일 만난 김정근 강남대학교 실버산업학과 교수는 미국 위스컨신주립대 유학 시절, 근처에 있던 '대학기반 은퇴자 마을'에 갔던 경험을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노인만 모여 산다고 다 좋은 노인주택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노인만 모은 전용 단지를 만들면 폐쇄적이고 고립될 위험도 있어서 다른 연령층과 어울릴 기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베이비부머의 활동적인 노후생활과 평생교육이 강조되면서, 대학이 '은퇴촌'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형태를 미국에서는 '대학기반 은퇴자 마을'(UBRC, University Based Retirement Community)’라고 부른다. 김 교수는 "대학은 수입을 얻을 수 있고, 노인들은 평생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구조"라고 설명했다.


김정근 강남대학교 실버산업학과 교수가 연구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 미국에서는 '대학기반 은퇴자 마을'이 어느정도 활성화돼 있나.

▲미국 은퇴자 협회는 2032년이 되면 '대학기반 은퇴자 마을'이 400여 단지 이상으로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거다. 비용은 우리나라 고급 노인복지주택 수준이다. 미국이 한국보다 물가가 훨씬 높은 것을 고려하면 미국 중산층 노인들이 입주한다고 볼 수 있다. 플로리다대학의 '오크해먹'이라는 단지의 월 임대료는 주택 크기와 방 개수에 따라 3000달러(약 409만원)부터 4000달러(약 545만원)이상까지 다양하다. 초기 입주 비용은 평균 30만달러(약 4억1000만원) 정도다. 이곳 입주자들은 한국의 노인복지주택 격인 '자립주거세대'에서 살다가, 몸이 안 좋아지면 요양원인 '너싱홈'으로 옮기는 연속보호체계에서 살고 있다.


-'연속보호체계'라는 것이 눈에 띈다.

▲그게 우리나라와의 차이점이다. 우리나라는 노인요양시설과 노인주택시설을 법적으로 분리해놨다. 연계가 안 된다. 그러다보니 노인주택을 떠올리면 '요양병원'부터 생각나게 된 거다. '대학기반 은퇴자 마을'은 건강할 때 들어와서 살다가, 몸이 불편해지면 옮겨 사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노인주택이 '아프면 가는 곳'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시니어스타워 가양타워가 연속 보호 체계를 갖고 있다. '자립주거-생활보조주거-너싱홈' 이렇게 3가지 단계로 나뉘어 있다. 생활보조주거는 자립주거와 너싱홈의 중간단계 유형이다. 노인성 질환의 초기 증상을 보이는 노인들이 입주하는 곳이다.


-우리나라에도 '대학기반 은퇴자 마을'이 있나.

▲건국대 재단의 더클래식500과 명지대의 엘펜하임을 손에 꼽을 수 있다. 다만 최고급 노인복지주택이라는 게 미국의 '대학기반 은퇴자 마을'과 다른 점이다. 학교와의 교류도 미국에 비해 미약한 수준이다. 더클래식500의 경우, 건국대 병원 교수진과 영양관리사가 입주자들에게 건강·운동·영양관리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정도가 전부다. 반면 미국은 교류가 활발하다. 어르신들이 대학 교과 과정에 유료로 참가하거나, 체육 관련 전공 석사과정 학생이 노인들을 대상으로 피트니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입주자 중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어르신이 그 대학의 역사 수업에서 강연까지 했던 사례도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재향군인의 날을 맞이해 참전용사들이 근처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군인 시절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플로리다 대학 UBRC인 '오크해먹'에 거주 중인 18명의 참전용사들이다. 사진=오크해먹(Oak Hammock at the University of Florida) 홈페이지


-한국에도 노인들이 거주지역을 기반으로 사회와 교류하는 사례가 있나.

▲노인들이 변하고 있다.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 맞는 사람끼리 모여서 자원봉사나 취미 활동을 하려는 욕구가 있다. 비영리기구인 '굿네이버스'가 재단을 설립해 노인주택을 만들려고 준비 중이다. 그동안 굿네이버스에 기부했던 어르신들을 중심으로 노인주택 수요가 있었다고 한다. 잠재 대상자 인터뷰도 해봤는데 '뜻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살면서 아이들을 돕고,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고 하셨다. 지을 땅까지 다 사뒀는데, 건축비가 너무 많이 뛰어서 공사가 잠시 연기된 상황이다.


-한국 정부는 지난 3월에 인구소멸지역을 중심으로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정책을 내놨다.

▲우리나라는 노인들을 자꾸 한 곳으로 몰아넣으려고 고립시키려는 것 같다. 지금 세계적인 추세는 노인들이 지역사회에 참여하고 다양한 세대와 교류하는 거다. 노인 주거는 건물 외형인 '하드웨어'와 주택 내 프로그램인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그 속에 사는 분들과 지역사회의 연계를 의미하는 '휴먼웨어'까지 삼박자로 구성된다. 누구에게나 요양원에 가야 하는 시기가 온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내가 살던 터전에서, 계속 이웃들과 어울려 사회생활을 하며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해야한다. 우리나라도 '대학기반 은퇴자 마을'처럼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가 가능한 시니어 주거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김정근 강남대학교 실버산업학과 교수가 연구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김정근 교수는?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다. 학사와 석사를 경제학 전공으로 취득했지만, 관심은 고령화에 쏠렸다. 미국으로 건너가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연방고령화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전문성을 쌓고, 귀국 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을 지내다 강남대 교수로 부임했다. 노인주거와 노인경제 정책이 김 교수의 주요 연구 분야다.

18. 대학이 노인주택 짓는 미국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강진형 기자 aymsdre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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