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트로트 아이돌'에 홀린 일본…"30대 꽃미남, 안 어려서 좋다"

이영희 2024. 5. 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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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나루(高鳴る) 아이노(愛の) 아라시오(嵐を) 주세요~(두근대는 사랑의 폭풍을 주세요)”

지난 2일 오후 일본 도쿄(東京) 타치가와(立川)역 인근 대형쇼핑몰, 중앙 광장을 메운 100여명의 관객들이 일본어와 한국어가 섞인 노래 ‘러브 스톰(Love Storm)’을 한 목소리로 따라 불렀다. 지난 3월 일본에서 데뷔한 한국 그룹 ‘K4’가 일본 최대 연휴인 골든위크를 맞아 연 라이브 이벤트 현장. 관객들의 손에는 멤버들의 사진을 넣어 직접 제작한 부채와 응원 도구가 들려있었다. 4월부터 각종 이벤트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는 50대 여성 팬은 “한국 아이돌 그룹은 다들 어려 좋아하기 꺼려지는데 이들은 나이가 어느 정도 있어서 인지 팬으로써 마음이 편하다. 일단 멤버 모두 가창력이 뛰어나 매일매일 노래를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게 매력”이라고 말했다.

3월 일본에서 데뷔앨범을 내고 활동 중인 '어덜트K팝' 그룹 K4. 왼쪽부터 김현민·오주주·류필립·조준. 사진 소니뮤직


K4는 일본에서 활동 중인 수많은 '케이팝'(K-pop) 그룹 가운데 독특한 위치에 있다. 멤버 모두 30대 이상, 최초로 ‘트롯트 한류’를 내걸고 일본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보컬 코치 출신의 김현민(44), 현역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오주주(36), 아이돌 그룹 활동 경력이 있는 류필립(34), 서울대 성악과 출신의 조준(31)은 글로벌 K트로트 오디션프로그램 ‘헬로트로트’를 통해 결성됐다. 리더 김현민은 “각자 다른 위치에서 활동하고 있었지만 트로트에 대한 애정에 있어 같은 마음이었다. 트로트의 매력을 세계에 알리겠단 결심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2022년 ‘러브 스톰’으로 한국에서 데뷔한 뒤 2023년 10월엔 한국 인기 드라마 OST를 담은 앨범 ‘K4YOU ~K for you~’를 일본에서 내놨다. 나카시마 미카(中島美嘉)의 원곡으로 일본에도 널리 알려진 ‘눈의 꽃’은 음악채널 유센(USEN) 신청곡 차트에서 1위에 오르며 일본인의 귀를 사로잡았다. 지난 3월에는 ‘러브 스톰’의 일본어 버전과 ‘Bye Bye Bye’라는 신곡으로 공식 데뷔했다. 앨범 발매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와 2개월 간 도쿄는 물론 오사카(大阪), 후쿠오카(福岡) 등 일본 각지를 돌며 45회가 넘는 라이브 이벤트를 열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어느새 모든 공연을 따라다니는 열성 팬들이 생겨났다.

지난 2일 도쿄 다치카와의 한 쇼핑몰에서 열린 K4 라이브이벤트. 이영희 특파원


빠른 시간 내 지명도를 높일 수 있었던 데는 한류 열풍의 영향이 컸다. 일본에서는 최근 한국어 대사를 자막 없이 방영하는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등, 한국 문화콘텐트는 물론 한국어 자체에 대한 관심까지 크게 높아진 상황이다. K4의 노래 가사에도 이런 팬들을 위해 한국어를 일부 그대로 담았다. 팬들이 한국어를 너무 잘해 깜짝 놀란다는 조준은 “20년 전 시작된 한류가 아직도 점점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덕분에 우리에게 주어진 이 기회를 어떻게든 잡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음악은 ‘어덜트 K-pop’으로 불린다. “젊은 층을 겨냥한 노래가 아닌, 나이 불문하고 들을 수 있는 편안하고 성숙한 음악을 선보이겠다”는 멤버들의 바람이 반영됐다. 데뷔 앨범은 트로트풍이 가미된 라틴 음악과 록발라드로 채워졌다. 다양한 장르를 자유롭게 소화하는 김현민과, 트로트 특유의 간드러지는 발성이 독보적인 오주주, 발라드에 특화된 애절한 목소리의 류필립, 성악 발성에 기반을 둔 힘 있는 보컬 조준 등 네 사람의 개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음악이다.

3월 일본에서 데뷔앨범을 내고 활동 중인 '어덜트K팝' 그룹 K4. 왼쪽부터 김현민·오주주·류필립·조준. 사진 소니뮤직


6월까지 데뷔 앨범 활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지만 다음 일본 활동부터는 ‘제대로 된 한국의 트로트’를 선보일 수 있길 꿈꾼다. 일본에도 트로트와 유사한 장르인 ‘엔카(演歌)’가 있지만, 흥겨운 리듬과 폭발적인 가창 등은 한국 트로트만의 매력이다. 오디션에서 우승을 한 오주주는 “트로트를 부르면 슬픈 마음, 답답한 마음이 확 뚫리는 해방감이 느껴진다”며 “언젠가 단독콘서트를 열어 그 느낌을 일본 팬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류필립도 “트로트의 재미라는 게 뭔지, 흥이라는 게 뭔지를 일본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멤버들이 마음 속으로 칼을 갈고 있는 상황”이라며 “‘최초’ 트로트 한류 그룹에 그치지 않고 ‘레전드’가 될 때까지 열심히 노래하겠다”고 말했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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