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의 장막 걷고… 삶의 희망을 노래하는 ‘세 남자’

유경진 2024. 5. 28.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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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함께] 시각장애인 CCM 그룹 ‘더블라인드’
시각장애인 CCM 그룹 ‘더블라인드’의 멤버들. 이현학 김국환 정명수씨(왼쪽부터). 이들은 자신들처럼 어둠 속에 갇힌 이들이 용기를 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돕는 위로자가 되길 소망한다. 더블라인드 제공


희망을 노래하는 시각장애인 삼총사가 있다. 이들은 사랑을 노래하고 기쁨을 전하기도 하며 벼랑끝 인생의 위로자가 되기도 한다. CCM 그룹 ‘더블라인드’ 이야기다.

정명수(39) 김국환(40) 이현학(40)씨는 모두 시각장애인이다. 각자 장애의 정도는 다르지만 완전한 시력을 갖지는 못한 채 살아간다. 세 남성이 가수가 된 사연은 20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 사람은 서울맹학교와 한빛맹학교를 다니는 학생이었다. 시각장애인 사회는 좁기 때문에 지인 한 두 명만 거치면 거의 모두를 알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엔 친구로 만났던 이들은 좋은이웃시각장애인찬양단에서 함께 단원으로 활동했다. 이후에도 각자 음악활동에 전념했던 세 사람은 2013년 더블라인드를 결성했다. 시각장애인도 노래 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발발하기 전에는 한 해 100회에 달하는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주로 공기업과 단체의 초청을 받았는데, 팬데믹 이후 휴식기를 갖게 된다.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인명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만난 정명수(39)씨는 “팬데믹이 더블라인드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줬다”며 “활발한 활동은 옛말이 됐고 연간 공연 횟수도 한두 번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각자 가정을 꾸린 멤버들은 육아와 생업에 충실하고 있다. 이씨는 현재 미국에 머물며 가족을 돌보는 중이다. 정씨는 최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2024 세계부부의날 국회기념식에서 ‘올해의 신혼 부부상’을 수상했다. 정씨와 그의 아내는 장애의 벽을 뛰어 넘어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사는 노력을 인정받았다.

절망 속 희망을 노래하다

더블라인드가 서울 마포구 KT&G 상상마당에서 공연하는 모습. 더블라인드 제공

더블라인드는 지금까지 7장의 싱글·정규 앨범을 선보였다. 세 남성이 부르는 노래에는 희망과 사랑이 담겨있다. 이 두 단어가 가장 잘 드러나는 지점은 바로 하나님을 노래할 때다.

정씨는 “셋이서 한창 활동할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예배를 드렸다”며 “서로의 신앙고민을 나누고 교제하면서 믿음의 상태를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세 멤버는 공통적으로 찬양사역자 출신이기도 하다. 더블라인드의 대부분의 노래는 정씨가 작곡하고 작사한다. 그는 재즈피아니스트로도 활동한다.

멤버들이 가수로 활동하면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장애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전하는 전도사로 나서고 있다.

더블라인드는 두 장의 자살예방 캠페인 앨범을 발매해 자살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풀어내고 있다.

화려한 아이돌 가수는 아니지만 인생의 절망을 경험했던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묵직한 울림을 준다. ‘겨우 눈 뜨고/ 버둥거리던 작은 넌/ 넘어지고 일어나고/ 쓰러져도 걸었어.’ 더블라인드의 노래 ‘넌 할 수 있어’ 가사의 일부다. 이 노랫말은 묵묵히 걸어온 그들 자신에게 전하는 응원이기도 하다. 장애를 가진 이들이 부르는 노래가 더 진정성있게 다가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누구보다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인생의 끝자락에 있는 누군가의 가슴에 따듯한 온기가 돼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중도에 장애를 갖게 된 이도 있고, 마음의 상처로 삶을 끝내고자 하는 이도 있을 수 있잖아요. 저와 같은 장애인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데 더블라인드의 응원이 닿길 바랬어요.”

장애도 개성의 영역으로 봐주길

장애인식 개선과 관련해서는 김씨는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섣불리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는 점이 아쉽다고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장애 인식 개선이라는 말이 거창하다고 생각한다”며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 장애를 알려야 하는 소명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비장애인도 하루 아침에 불의의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를 갖게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따듯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씨는 선진국을 예로 들며 “미국과 영국처럼 한국도 장애인이 사회로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더 촘촘하게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정씨는 과거에 비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개선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장애를 가진게 특별한 건 아니라고 했다. 그는 “각자 생김새가 다르듯이 장애도 개인이 가진 개성의 영역으로 바라봐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더블라인드는 잠시 휴식기를 갖고 각자의 삶에 집중하고 있지만, 곧 다시 모여 노래부를 날을 기다리고 있다. 정씨는 “저희에게 노래는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였다”며 “저희가 그랬던 것처럼 어둠에 갇혀 있는 분도 용기 내 세상 밖으로 한 발자국 나오길 소망한다”고 당부했다.

유경진 기자 yk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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