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당원이 주인 되는 두 세상
한동안 유행했던 국민 주권론과 시민 직접행동론이 당원 주권론과 당원 직접결정론으로 진화 중이다. 이재명 대표는 5월 19일 민주당의 당원 참여 행사에서 “당원을 두 배로 늘리고 당원의 권한을 두 배로 늘려 당원 중심의 정당을 통해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자”고 말했다. 지금의 500만 당원이 두 배가 되면 인구 대비 20%인 1000만 민주당원 시대가 열린다. 권한이 두 배면 정당은 물론 국회나 행정부, 사법부가 할 일을 당원의 이름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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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원 중심 정당 만들자” 요구 커져
당내 다원주의 존중돼야 민주주의
참여 넘어 지배 요구하면 전체주의
당원 권력화는 사당화로 귀결 위험
」
당원이 주인 역할을 하는 정당에는 두 유형이 있다. 하나는 민주주의의 유형이고, 다른 하나는 전체주의 유형이다. 민주주의 유형의 당원 중심 정당에서는 당원들이 당직 선거와 공직 후보 선출 시 평등한 권리를 행사하고, 당 재정을 책임지며, 풀뿌리 지역당 조직에 참여한다. 그래야 당 지도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가능함은 물론이고, 국가나 돈의 힘으로부터 자율적인 결사체로서 정당이 시민의 생활 세계 속에서 튼튼한 기반을 가질 수 있다. 더 중요한 기준이 있다. 그것은 당내에서 다양한 의견 형성의 기회가 풍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장이냐 분배냐, 동맹이냐 평화냐 같은 전통적 의제만이 아니라 기후와 인구, 여성주의와 소수자 인권 등 새로운 의제를 두고도 나날이 진전된 논의가 있어야 당원들이 공유하는 이해의 범위를 넓힐 수 있다. 정치학자들이 ‘당내 다원주의’라고 부르는 이 기준은, 얼마나 다양한 정견 집단과 계파들이 당원들의 지지를 두고 자유롭게 경합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당원들은 정당 운영에 참여할 ‘권리’는 갖지만, 결정하고 집행할 ‘권력’은 없다. 그 일은 적법하게 선출된 당원의 대표와 그들이 주도하는 제도화된 절차와 기구를 통해 이루어지는바, 그 주도권을 두고 경쟁하는 정파나 계파가 자유로워야 당원들의 다양한 의사가 억압되지 않고 평등하게 표출될 수 있다.
전체주의 유형의 당원 중심 정당에서 당원들은 ‘참여할 권리’만이 아니라 ‘지배할 권력’까지 요구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체주의 정당에서 당원은 ‘권리 당원’이 아니라 ‘권력 당원’에 가깝다. 물론 당원은 통치기관도 회의체도 위원회도 아니다. 의견의 흐름을 형성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 결정하고 집행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의견의 다양함’보다는 ‘의견의 강렬함’을 키워서 영향력을 추구하려는 당원 집단이 등장하고, 이들은 특정 지도자를 옹립하고 그 지도자를 통해서 효능감을 극대화하려 한다. 자연스럽게 지도자 현상과 당원 권력화 현상은 서로를 강화하게 되는데, 이때가 되면 정당은 한 명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일체화된 방향을 추구하게 된다. 그로 인해 당 지도자와 강성 당원의 의사에 반하는 당내 이견은 이적시되고, 당내 다양성의 위축은 곧 내부의 적을 색출하려는 열정을 키운다. 심하면 과거 중국의 문화대혁명이나 독일 나치당의 사례에서 보듯, 가족과 학교에서조차 당의 뜻을 강요하는 강성 당원들의 폭력이 허용될 수 있다.
전체주의 유형의 당원 중심 정당은 일당제 당-국가체제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때 당원은 정당만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 전반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행정 관료제를 장악하고 군대와 경찰을 통제하는 것은 물론, 입법부와 사법부 또한 당의 영향력 아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나라에서 당원 가입은 곧 특권의 성취로 여겨지고, 그 결과 당원 규모는 최대화된다. 오늘날에는 인구 대비 7.1%가 공산당 당원인 중국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역사적으로 최고의 기록은 과거 독일의 나치당이 갖고 있다. 당시 나치당 당원은 인구 대비 13% 안팎인 850만에서 900만 명 사이였다. 지금 독일의 당원이 모든 당을 합쳐 인구 대표 2% 정도인 것에 비하면 놀라운 수치다.
민주주의 유형의 당원 중심 정당은 다당제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선택 가능한 정치적 대안이 하나나 둘로 제한되면, 그만큼 시민이나 당원이 누릴 의견의 자유는 제약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장 행복한 나라를 만들었다고 평가되는 핀란드나 덴마크가 대표적인 사례다. 두 나라의 국회의원 의석수를 우리와 같은 300석으로 환원해 계산하면, 10석 이상을 가진 정당 수는 핀란드가 7개(국민연합당, 핀란드인민당, 사회민주당, 중앙당, 녹색동맹, 좌파동맹, 스웨덴인민당), 덴마크가 11개(사회민주당, 좌파당, 온건당, 사회주의인민당, 덴마크민주당, 자유동맹, 보수인민당, 적록동맹, 급진좌파당, 신우파당, 대안당)다.
우리는 어떨까. 두 당이 의석의 94%를 차지하는 양당 독과점 구조다. 누가 방송과 검찰을 장악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여당일 때는 여당스럽기만 하고 야당일 때는 야당스럽기만 할 뿐, 사실상 차이가 없는 ‘데칼코마니 양당제’다. 당 내부는 상대 당이 없어지길 바라는 ‘일당제주의 심리’와 ‘이적 행위자 색출 열정’이 지배한다. 이런 상황에서 1000만 당원을 가진 정당의 세상이 온들 무엇이 좋아질까. 민주주의는 다원주의에 반하는 정당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정치체제다.
박상훈 정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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