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39)
렘브란트(Rambrandt van Rijn, 1606~1669)가 암스테르담 외과 의사들로부터 초상화를 그려 달라는 주문을 받았을 때 겨우 25살이었다. 이듬해 그는 이 초상화를 완성하였다. 렘브란트는 1631년 1월 니콜라스 튈프(Nicolaes Tulp) 박사의 해부학 수업을 참관한 외과 의사들을 묘사했다. 그들은 모두 다른 것을 보고 있다.
이 해부학 강의 장면은 빛과 어둠의 뚜렷한 대조로 인해 역동성이 더해진다. 이 단체 초상화에서 젊은 화가는 천재적인 창의성을 펼쳤다.
렘브란트는 1631년부터는 화상 헨드리크 오일렌부르크에게 그림을 넘기기 시작했고, 그의 스승 라스트만(Pieter Lastman)이 사는 암스테르담 지역에 그의 그림을 파는 화랑도 생겼다.
그로부터 그는 명문가를 드나들며 귀족과 유력 시민의 초상화를 그려 상당한 수입을 올렸다. '튈프 박사의 해부학 수업'도 그때 그린 그림이다.
렘브란트의 집단초상화는 이전 그림과 전혀 달랐다.
‘집단초상화’란 17세기 네덜란드의 프란스 할스나 렘브란트에 의해 확립된 초상화의 형태이다. 집단의 인물을 각각의 특성을 살려 창의적으로 그렸으며, 가족 초상화도 이 부류에 속한다.
렘브란트는 집단초상화에서 단순히 사람들의 얼굴만 보이는 게 아니고, 함께 어울려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그림 속의 인물들이 진짜 같다’는 입소문은 퍼져 나갔고, 렘브란트의 인기는 급상승했다.
외과의사 길드의 주요 인물이었던 튈프는 1631년부터 1650년까지 9번의 공개 해부를 했다. 암스테르담의 계량소인 드 바흐(De Waag)에 있는 해부학 극장에서 겨울에 열렸다. 당시에는 사형수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런 공개 강좌는 매우 드물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내고 해부하는 장면을 구경하였다.
17세기 영국에서는 이른바 해부전문가들이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로부터 돈을 받고, 사형수의 시신을 해부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쇼가 있었다. 이는 매우 인기 있어 중부 유럽까지 유행이었다. 범죄자의 장기는 일반인보다 크다고 생각하였기에 도덕적인 교화를 목적으로 이런 행사가 열렸다.
해부를 보면서 식사를 제공하기도 하였다니 현실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20세기 들어 음악가 데이빗 랭(David Lang: 1957~)은 '해부극장(Anatomy Theater)'이라는 오페레타를 만들었다.
17세기 과학의 발달에 따라 인체에 대한 호기심이 매우 왕성해졌다. 이런 공개 강의를 기념하는 집단초상화를 제작하여 길드 회의실에 걸어 놓으려 했다. 이전의 그림은 과학실에 하나씩 있던 해골로 된 인체를 가운데 두고 대칭 구도로 사람들의 얼굴을 나열한 것이었다.
렘브란트는 엇비슷한 관례를 무시하고 튈프와 다른 참가자들을 뚜렷이 분리시켰다. 맨 뒤에 자리한 두 의사는 우리를 ‘해부학 강의에 초대하려는 듯 정면으로 바라본다.’ 다른 의사들도 해부학 강의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마침 여기까지 쓰고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인터뷰를 보았다. ‘2023년 가장 아름다운 영화’라 극찬을 받은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 전생)'의 셀린 송 감독과의 대담이었다. 셀린 송 감독은 한국에서 태어나 12살에 캐나다로 떠난 이민 1.5세대였다.
그 영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미국 뉴욕의 한 바에서 24년 만에 한국에서 찾아온 어릴 적 남자 친구와 자신의 미국인 남편과 셋이 만나고 있었다. 영어를 모르는 남자 친구와 한국어를 못하는 남편 사이에서 주인공 나영(셀린 송 역)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순간 “12살의 나를 기억하는 남자와 36살의 나를 아는 남편 사이에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만나고 있었다”
과연 바에 있는 이들은 ‘우리 관계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궁금증에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두 사람 사이에 앉은 나영이 관객과 시선을 마주치도록 클로즈업한다.
이 장면은 관객이 ‘탐정이 되어 영화 속으로 들어오도록 초대’ 하기 위해 그렇게 디렉팅을 한 것이다. 특히 나영 역의 그레타 리를 캐스팅하는데 이 장면에서 보여줄 ‘강렬한 눈빛’이 결정적 이유였다.
의사들의 생생한 표정에서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다. 의사들의 발그스레한 혈색은 사형수의 푸르스름한 잿빛 시신과 뚜렷이 대비된다. 사형수 아리스 킨트(Aris Kindt)로 알려진 아드리아엔 아드리아엔스(Adriaen Adriarnsz)는 겨울 코트를 훔쳐 1632년 1월 31일 교수형을 받았다.
코트를 훔친 정도로 사형이라니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전에도 도둑질로 오른손이 잘린 전과가 있어 엄중한 처벌을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렘브란트는 현장에서 잘린 손목을 통나무처럼 그렸다.
그러나 정면에서 관람자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릴까 다시 손을 그려 넣었다. 그래서 손목부터 색이 약간 다르다.
시신 앞으로 고개를 쭉 뺀 의사 둘은 책에서 배운 내용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려는 듯 매우 진지하다. 이렇게 적극적인 태도로 인해, 렘브란트는 스냅사진을 찍은 듯한 생동감 넘치는 그림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장에서 그려진 것은 아니었다.
의사 때문에 해부용 시신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 표현이 절묘하다. 그리고 의사와 시신 사이의 공간 처리는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방식을 따랐다. '모나리자'에서 가슴 부분의 손만 자세히 묘사하고 나머지 부분은 관람자가 옷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게 만들었다.
튈프 박사의 오른쪽에 서 있는 의사 하트먼스(Hartman Hartmans) 가 들고 있는 책에는 본래 팔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렘브란트 사후, 1700년경 모델들의 이름으로 바뀌었으나 복원을 하였다. ‘튈프 박사는 엄지를 움직이는 근육이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특권’이라 강의했다.
렘브란트가 고심 끝에 몇 번이나 구도를 바꿨다는 것을 X선 촬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상단에 서 있는 외과의사는 프란스 반 로에낭(Frans van Loenen)으로 튈프 박사처럼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튈프 박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모자를 지우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모자를 칠했던 흔적이 그림자처럼 남아 있다.
렘브란트는 색조의 변화, 명암효과 그리고 붓질 방향의 교묘한 변화로 ‘공간의 깊이’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하여 해부라는 행위에 집중하여 관람자가 눈앞에서 해부를 참관하는 듯하다.
로마 유학까지 다녀온 라스트만(Pieter Lastman, 1583~1633)은 연극처럼 거창하고 수사적으로 표현하는 화가들의 멘토였다. 렘브란트는 6개월간 라스트만의 도제였다.라스트만은 핵심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인물들을 배치하는 역사화를 그렸다. 그리고 주인공 튈프 박사는 뚜렷하게 묘사하고, 다른 의사들은 간략하게 처리하는 전통적인 기법을 배웠다.
독일 해부학자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1514~1564)가 쓴 책 앞부분에는 해부된 팔을 들고 있는 초상화가 들어있다.
튈프 박사는 팔을 절개하고 집게 가위를 사용해 엄지와 검지를 연결하는 힘줄을 들어 올린다. 그리곤 자신의 왼손으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르네상스 시대 의사인 베살리우스를 그린 목판화와 비슷하다.
관례에 어긋나게 팔을 먼저 해부하는 장면은 베살리우스를 존경한 튈프 박사가 그렇게 요청한 것으로 짐작된다. 튈프의 머리 뒤로 마치 왕관이나 후광처럼 그를 도드라지게 하는 배경을 그려놓았다.
렘브란트는 닥치는 대로 책을 구입하고 벼룩시장에서 진기한 의상과 소품도 사들였다. 얼마나 수집광이었는지 렘브란트의 집 앞에는 로마 병사부터 사무라이의 투구까지, 순진한 렘브란트를 속이기 위해 벼룩시장이 열렸다.
자신과 첫 부인 사스키아를 등장시켜 거지와 탕자부터 꽃의 여신 플로라까지 분장하여 그림을 그렸다.
이러한 노력으로 렘브란트는 모델들과 비숫하지만, 얼굴 자체를 강조하고 과장된 감정표현은 절제하여 진중한 인물들을 창조해 냈다. 렘브란트는 자신의 붓에 영혼을 갈아 넣어 화면 속의 등장인물들에게 색채와 성격 그리고 생명을 부여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서 아담의 몸에 영혼을 불어넣는 하느님처럼 화가는 그림 속의 인물을 창조한다.
◇최금희 작가
최금희는 미술에 대한 열정과 지적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수차례 박물관대학을 수료하고, 서울대 고전인문학부 김현 교수에게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예술의 전당 미술 아카데미에서는 이현 선생에게서 르네상스 미술에 대하여, 대안연구공동체에서 노성두 미술사학자로부터 서양미술사를, 그리고 미셀 푸코를 전공한 철학박사 허경 선생에게서 1900년대 이후의 미술사를 사사했다. 그동안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통해 작가별로 그의 이력과 미술 사조, 동료 화가들, 그들의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관련된 소설과 영화, 역사 건축을 바탕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현재 서울시 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쿠키뉴스=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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