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감독의 신작, 위기에 봉착하다

김상목 2024. 5. 2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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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찬란한 내일로>

[김상목 기자]

근래 '거장'들의 새로운 영화들에는 몇 가지 공통분모가 관측된다. 거칠게 뭉뚱그려보자면, 오랜 세월과 수고를 거쳐 확립한 근대 민주주의 시스템의 위기가 첫 번째다. 특히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의회에서 정책 논쟁을 통해 극단적 유혈대립 대신에 합리적 좌파 vs 우파 논쟁을 정착시켰던 유럽의 정치체제가 위험하다는 진단이 유독 두드러진다. 그와 동시에 극단주의자들이 세를 넓혀 가는 문제, 특히 극우파의 준동에 대한 깊은 우려가 드러난다.

그 과정에서 희생양 삼아 나날이 늘어가는 차별과 혐오 문제 역시 단골 소재다. '희생양 찾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이런 정략적 선동에 권력을 획득하려는 극단주의 정치인이 앞장서고, 복지국가와 경제사회 시스템 위기에 피해를 얻은 서민들이 억하심정으로 편승한다. 여기에서 과거 나치독일이 유대인을 먹잇감으로 삼은 것처럼 합리적 판단이 아니라 '만만한' 상대를 찾게 마련이다. 체제의 위기를 불러온 대자본의 이권 장악이나 정치인들의 무사안일 혹은 부패가 아니라 '외부의 침입자'를 악마화한다. 난민이나 이주노동자의 저임금 노동력은 쓰고 싶지만, 시민권 부여는 내키지 않는다. 반유대주의와 이슬람 혐오증이 동시에 일어난다. 하나하나 짚어보면 이율배반인데도 즉자적 감성에 호소하는 이런 선동은 레퍼토리 바꿔 가며 끝없이 이어진다. 이런 선동에 눈길을 빼앗기다 보면 정작 시급한 문제들, 건설적인 사회연대나 대안적 시스템 개편에 대한 논의는 뒷전이기 일쑤다.

그런 민주주의의 위기와 사회적 관용의 저하를 각국의 거장 감독들은 깊은 통찰과 오랜 경험으로 꿰뚫어 보면서 자신들의 작업에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 각자의 근심과 고민을 녹여낸 결과물을 연거푸 선보이는 중이다. 이탈리아의 50년 구력 거장 난니 모레티 역시 그 일원일 테다. 그의 신작 <찬란한 내일로>는 켄 로치나 다르덴 형제 같은 영화 친구들에게 응답하는 이탈리아 영화계의 대답이라 할 만하다. 한국에선 늘 과소평가되어온 이탈리아 영화의 저력과 함께 거대한 역사적 실험의 유산이 농도 짙게 녹아있는 거장의 신작은 늘 보는 이를 흥분하게 만든다.

남편 신작 대신 신예 감독 차기작 제작 맡은 아내

관록의 고참 감독 '조반니'는 오랫동안 준비해온 신작 촬영을 시작한 상태다. 어느 감독이 안 그렇겠냐마는, 조반니 역시 자신의 작품 제작에 말 그대로 모든 심신을 쏟아붓는 유형이라 바짝 긴장되고 예민해진 상태다. 40년 동안 그런 조반니와 공사를 막론하고 함께 해 왔던 아내이자 제작자인 '파올라' 역시 부담이 가득한 상황이다. 조반니는 촬영 현장에서 완벽주의 감독답게 이것저것 빈틈을 찾아내며 역정도 내고 흥분도 하면서 분위기를 긴장시킨다. 적지 않은 영화를 연출해 왔지만 시대극인 이번 신작에는 특히 공을 많이 들인 모양새다.

그런데 이 바쁜 와중에도 아내이자 제작자 파올라는 남편의 신작 대신에 다른 주목받는 신예 감독의 차기작 제작을 맡았다. 게다가 파올라는 남편 모르게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공적으로 이 부부는 둘도 없는 영화 동료이지만 그들 사이에서 사적인 고민을 공유하지 않은 지 오래라는 것이다.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게 행동하지만, 균열은 봉합되어왔을 뿐, 언제고 위기가 닥쳐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조반니의 신작은 1956년 소련의 내정간섭에 저항한 헝가리 노동자와 청년들의 봉기를 배경으로 다룬다. 역사의 잊힌 장이지만 조반니에겐 중요한 의의가 되는 사건인 듯하다. 시대극인 만큼 신경을 써야 할 게 하나둘이 아니다. 조반니는 당시 신문기사 제목 작명이나 의상 고증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게 챙겨가며 스태프들을 들볶아댄다. 파올라 대신 영입한 새 제작자 '피에르'는 의욕이 넘쳐서 조반니를 들뜨게 하지만 뭔가 허술해 보이는 구석이 계속 드러나기 시작한다. 주연 배우들과 연기론에 대해 갑론을박하고, 파올라의 제작현장에 들렀다가 자신이 동의하지도, 이해할 수도 없는 폭력 표현에 참지 못하고 무리한 간섭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 난동을 참지 못한 파올라는 조반니에게 이혼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사건은 하나가 터지면 곧 둘이 따라오는 법이다. 피에르는 알고 보니 제작비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해 제대로 사고를 쳐 퇴장하고 만다. 어떻게든 제작을 이어가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순간,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처럼 투자 미팅이 잡힌다. 하지만 조반니가 자존심을 구겨가며 제작비 마련을 위해 양보해 보지만, 손익 계산기와 데이터 통계로 영화 제작을 판단하는 투자자 후보들은 자신들의 원칙을 고수하며 조반니가 지난 세월 '작가'로서 고수해 온 것들을 포기하고 투항하길 종용한다. 점점 감독은 지쳐간다. 그는 그동안 숨겨왔던 자신의 연약한 약점들을 어렵게 입 밖으로 꺼내고, 별거 상태에 돌입했지만 오랜 세월 동반자로 함께 해 왔던 파올라는 조반니의 신작 시나리오 결말이 석연찮아 마음을 졸인다. 과연 그의 신작은 완성될 수 있을까?

세계영화사의 퍼즐을 맞추는 것 같은 영화적 체험
 
▲ "찬란한 내일로"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에무필름즈
 
조반니는 열정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여기며 지향하는 영화 방식을 옹호한다. 그는 신작의 본격적인 제작 돌입을 자축하는 가족 행사를 여는데 그 이벤트가 무엇인지 들여다보면 쓴웃음이 저절로 나올 법하다. 그는 아내와 딸과 함께 숭고한 의식을 치르듯 거실에 자리를 마련하기 시작한다. 간식을 챙기고 자세를 잡은 뒤 그가 벌이는 행사는 바로 고전 영화 (자끄 드미의 첫 장편 <롤라>(1961) 감상이다. 하지만 각자의 사생활이 있는 아내와 딸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해버린다. 결국엔 김이 새어버린 조반니 역시 재생되던 영화를 중단하고 잠이나 자야지 하며 침대로 향하고 만다. 모든 불길한 징조의 출발인 셈이다.

치열한 촬영현장에서 조반니는 시나리오대로 하지 않고 즉흥연기를 펼치는 연기자들 때문에 성이 날 대로 나버린다. 배우들은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거장 존 카사베츠와 페르소나 지나 롤린스의 연기 변주를 언급하지만, 조반니는 자기 시나리오에만 충실하면 된다며, 카사베츠와 자신은 대척점에 있다고 단언한다. 한번 미운털이 박히니 이제는 여배우가 신은 신발도 마음에 들지 않아 불평을 이어간다. 파올라에게 일러바치듯 흉을 보는데 영화에 미친 사람들이라 인용하는 예시도 <블루스 브라더스>와 <더 파더> 비교다. 쪼잔하기 짝이 없는 풍경인데 못내 킥킥 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다.

주인공 조반니는 영화에 대한 열정이 넘치지만 오직 그것밖에 보이지 않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권위적인 폭군 가부장과는 한참 거리가 멀지만, 자신의 영화 열정을 다른 가족이나 스태프들도 전부 공유해주길 기대하는 타입의 전형이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영화에 모든 걸 바치는데 주변에서도 당연히 동의하고 동참해줄 거라는 순전한 믿음이 조반니는 물론, 파올라와 주변 사람들을 모두 힘들게 한다. 파올라가 조반니의 작품 외에 처음으로 제작자로 나선 후배 감독의 촬영 현장에서 벌이는 '기행'은 그 상징일 테다.

요즘 경향대로 현란한 폭력 묘사로 승부수를 던지는 마지막 장면 촬영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조반니는 남의 촬영 마무리를 가로막고 '폭력'은 결코 미화되어선 안 된다는 신념으로 장광설을 펼치기 시작한다. 쓴웃음 저절로 나오는 이 장면에서 필사적으로 타인을 설득하려는 조반니의 집착은 궁극에 이른다. 그는 자신의 소신이 옳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꼰대 짓'을 불사한다. 자신의 인맥을 과시하듯 그는 분야별 전문가들을 동원해 왜 후배 감독의 폭력 묘사가 문제인지 논파하려 애쓴다. 수학자가 등장하고,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유명 건축가와의 통화를 스피커로 들려준다. 결정타는 폭력 묘사라면 끝판왕 격인 마틴 스콜세지를 소환하려는 시도다. (다행히 불발되지만) 하지만 전문가 동원으로 희화화되던 해당 장면은 곧 조반니의 진심 가득한 설득으로 연결된다. 그는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십계' 시리즈 중 대표작인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에서 주인공 청년이 택시기사를 살해하는 장면 분석을 통해 자기 입장을 스스로 변호한다. 그래도 유행은 거스를 수 없지만 말이다.

이 외에도 <찬란한 내일로> 속에는 여러 고전 영화들의 숨결이 가득하다. 특히 이탈리아 영화사의 여러 단락이 곳곳에 보물찾기처럼 숨겨져 있어 찾아내는 재미가 있다. 타비아니 형제의 1972년작 <성 미켈레의 수탉> 결말은 조반니의 신작 결말과 함께 감독이 처한 실존의 위기를 동시에 관통하고 있다. 여기에 영화를 보고 나면 누구나 떠올리며 언급할, 페데리코 펠리니의 < 8과 1/2 >은 필수적으로 언급될 테다.

20세기의 거대한 정치 실험에 '만약에?'를 가미한 영화
 
▲ "찬란한 내일로"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에무필름즈
 
하지만 국내에선 자주 간과되곤 하는, 난니 모레티의 적당한 유머 코드 때문에 오히려 덮어지곤 하는 감독의 일관된 스타일이 유독 <찬란한 내일로>에서는 티가 팍팍 날 정도로 두드러진다. 조반니의 신작이자 영화 내내 주인공이 골머리를 앓으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영화의 줄거리는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사회주의 실험의 한 분기점을 다루는 이야기다. 1956년 헝가리 봉기(헝가리 의거) 당시 마침 헝가리 서커스단을 데려온 이탈리아 공산당 지부의 곤란한 상황을 다루는 시나리오는 영화 속에서나, 실제 정치적 입장으로서나 좌파적 지향을 일평생 견지해 온 난니 모레티의 신념을 천명하는 장이기도 하다.

당시 이탈리아 공산당은 당원이 2백만 명이나 되는, 서유럽 최대의 사회주의 정당이었다.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반공 동맹은 필사적으로 유럽대륙의 중심부에 있던 이탈리아에서 공산당이 집권하는 것을 막으려 했고, 그 덕분에 늘 한 끝 차이로 집권에는 실패해 만년 제1야당이었긴 하지만 말이다. 이 강성하던 이탈리아 공산당이 동구권 국가들과 교류하고자 야심차게 기획한 헝가리 서커스 초청 와중에 하필 소련군의 유혈 진압이 벌어지자 공산당 지부의 황동가들은 고민에 빠진다. 서커스 단원들은 무력 탄압에 항의하며 공연을 중단하고 파업에 돌입한다. 이들은 귀국하지 않고 자신들을 지지해줄 것을 지부의 당원들에게 호소한다. 연인으로 발전해 가던 지부의 여성 활동가는 지부장이자 당 기관지 편집장인 상대에게 당 지도부에 헝가리 인민들을 지지하는 입장을 내자고 설득하고 편집장은 고뇌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조반니는 자신의 지나온 생을 관통해 온 정치적 신념과 사라지고 만 정치적 실험의 가능성을 열정적으로 재현하고자 하지만, 정작 현장의 스태프들은 '이탈리아에도 공산당원이 있었나요?'하며 몰이해를 드러낸다. 조반니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하지만 동구 사회주의권 붕괴와 함께 사회주의를 포기한 지 오래인 현대 이탈리아에선 당연히 젊은 세대들이 그런 패배의 역사를 기억할 리 없다. 투자도 안 되고, '동지' 관계라 믿었던 사랑하는 아내는 떠나버렸다. 마치 (영화 결말이자) 실제로 (이탈리아 공산당은 끝내 소련의 탄압을 지지한 것처럼) 역사의 실패가 고스란히 진행되는 셈이다. 조반니는 고독과 열패감에 사로잡힌다.

그는 절망한 나머지 선배 작가의 실패와 회한, 그리고 종지부를 언급하기에 이른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문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작가 체사레 파베세(1908-1950)가 자신이 썼던 소설의 주인공과 같은 숙명에 처해 자살로 남은 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했던 기억을 소환한 것이다. 그렇게 일생 노력하고 분투했으나 끝내 좌절하고만 수많은 선배들의 전철을 답습할 것인가? 그런 최후가 책임지는 태도인 것일까? 이야기는 다소 늘어지는 블랙코미디에서 갑자기 위기에 봉착하는 듯하다.

국제연대와 인터내셔널 가의 정신을 소환하는 영화
 
▲ "찬란한 내일로"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에무필름즈
 
조반니는 위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중이다(그는 정확히 난니 모레티가 봉착한 고뇌를 반영하는 캐릭터다). '세계 190개국에서 공개될' 기회를 포기하고 만 그에게 영화 촬영을 재개할 여지는 통 없어 보인다. 적어도 그의 경험치와 고정관념 아래에선 조반니의 회심의 도전은 패배 외에는 선택지가 없는 낭떠러지에 몰린 참이다.

하지만 기회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깃든다. 자신만이 옳고 내 편은 없이 누구도 자신의 비전을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회의감에 침잠했던 조반니에게 지구 반대편에서 자신의 영화가 목표한 주제의식을 공감하는 친구들을 만난 것이다. 그들은 조반니의 신작이 의도한 목적, 즉 "예술과 공산주의의 죽음, 사랑과 윤리의 죽음, 모든 것의 끝을 다룬 영화"라는 것을 단번에 간파해낸다. 이는 모든 게 노쇠한 유럽대륙을 넘어 영화가 여전히 다양한 가능성과 공감대를 획득할 수 있다는 희망을 통해서이다.

이는 조반니가 원래 자신의 비전대로 영화를 완성할 수 있게 돕는 힘이지만, 그와 동시에 주인공은 원래의 다소 보수화된 태도를 극복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게 해주는 변화를 추동하게 만든다. 그 변화는 비록 자신의 대에선 환멸에 가까운 실패일지언정 미래는 열려 있으며, 과오는 교훈으로 전이되어 만회할 수도 있겠다는 모색으로 귀결된다. 판타지 뮤지컬 같은 결말은 무수한 역사적 'if?'를 제기하며 더 잘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낙관의 부흥회를 소망한다. 마치 켄 로치가 <랜드 앤 프리덤>에서 선보인 마지막 장면처럼, 할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동료 노병들과 함께 고인의 삶을 기억하고 이어가려는 손녀의 예식을 보는 기분이다.

소환되는 건 그뿐이 아니다. 비참한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역사를 환상적으로 전복하려던 에밀 쿠스타리차의 <언더그라운드>가 선보인 결말의 잊을 수 없는 그 섬, <굿바이 레닌>에서 주인공이 체험하게 된 대안적 유토피아의 몽환이 연속해서 머릿속을 아른거린다. 20세기 역사에 대한 대안적 고찰로 이어질 수 있다면, <찬란한 내일로>는 그저 노장 감독의 적당히 쉬어가는 것 같은 안일한 근작에서 그가 한평생 작품 속에서 일관되게 견지해온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성찰과 의지의 종착역으로 변환될 테다.

그렇게 이 우울한 시대에 연속해서 거장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마치 영화적 유언처럼 근심과 희망을 혼합해 영상편지를 전하는 중이다. 켄 로치가 <마이 올드 오크>를 통해 다소 설교적일지언정 은퇴작을 통해 전하려 한 메시지를 난니 모레티는 좀 더 나아가려 한다. 역사에 대한 지적 에세이와 마술적 리얼리즘을 혼합해 그저 머릿속에 상상하던 '유토피아 실험'을 잠시나마 구현해버리는 것이다. 누군가는 당혹스럽기 짝이 없겠지만, 어떤 이는 눈 앞에 펼쳐진 황홀경 속에서 우리가 포기하거나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고 단정해버린 것들을 발견하고 환호할 것이다.

조반니의 영화 속 헝가리 서커스단의 현란한 축제는 곧 영화라는 매체 자체를 은유하지만, 그 서커스단의 사연을 이해하고 공감할 때에만 관객은 소비자가 아니라 수용자로 전진할 수 있을 테다. 정치적 태도와 영화 매체에 대한 태도를 동시에 요구하는 승부수 격이다. 특히 이제 누구도 찾지 않을 것 같지만, 세계 역사에서 가장 흥미롭고 낯설었던 20세기의 어떤 실험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찬란한 내일로>는 그야말로 노다지같은 보물창고로 받아들여질 만하다. 레닌과 톨리아티, 스탈린과 트로츠키가 각자의 역할을 소화하는 영화다. 마지막 장면에선 저절로 '인터내셔널 가'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영화를 보면 이해될 테다. 거장에게 이 정도의 객기 혹은 여흥은 허락될 수 있지 않을까?

〈작품정보>

찬란한 내일로 Il sol dell'avvenire
2024│이탈리아│드라마
2024.05.29. 개봉│95분│12세 관람가
감독 난니 모레티
출연 난니 모레티(조반니 역), 마거리타 부이(파올라 역), 실비오 올랜도(엔니오 역),
바르보라 보불로바(베라 역), 마티유 아말릭(피에르 역), 예르지 스투(예르지 역),
유선희(한국인 통역사 역)
수입/배급 에무필름즈

2023 76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공식 초청
2023 28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이콘 섹션 공식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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