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변신' 이동국, 두 번째 에세이 출간 "어떻게 생각하냐에 따라 결과는 바뀐다"
[풋볼리스트] 윤효용 기자= 대한민국 축구 레전드 이동국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은 자서전을 발간했다.
27일 오후 3시 서울시 정동에 위치한 카페 산다미아노에서 이동국 신간 '결과를 아는 선택은 없다' 출간 기념 행사가 열렸다.
역대 한국 선수 최연소 월드컵 출전, 통산 845경기 344골이라는 기록을 보유한 이동국은 명실상부한 한국 축구의 레전드다. 앞서 2013년 자서전 '세상 그 어떤 것도 나를 흔들 수 없다'를 발간한 이동국은 11년 만에 선수 생활 황혼기와 은퇴 후 삶을 담은 에세이를 세상에 내놨다.
이동국은 "2013년도에 처음 책을 냈는데 은퇴를 준비할 때였다. 당시 선수 생활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그 이후로 7년을 더 뛰었다. 그 7년에 대한 정리를 하고 싶고, 은퇴 이후의 삶도 담고 싶어서 책을 쓰기로 생각했다"라며 자서전을 쓴 이유를 밝혔다.
이번 자서전에 대해서는 "에세이지만 부담없이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준비했다"라며 "생각을 한 번도 해볼 수 있는 책이 됐으면 했다. '책이 이뻐서 샀는데, 알고보니 이동국이 쓴 책이네' 했으면 해서 얼굴을 뺐다"라고 설명했다. 이하 이동국 기자간담회 전문.
-막내 시안이도 축구를 하는데, 어떤 마음으로 보고 있나.
시안이는 저와 같은 4학년인데, 저보다 훨씬 잘하는 거 같다. 저는 4학년 2학기에 축구를 했는데, 리프팅을 잘못했다. 저는 100개를 못했는데 시안이는 이미 하고 있다. 어릴 때 공을 접한 게 도움이 되는 거 같다.
저는 솔직히 시안이가 축구를 안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그 어려운 길을 선택해서 본인이 성공하더라도 항상 뒤에는 아빠가 유전자가 좋아서라는 말이 붙기 마련이다. 본인의 노력은 묻힌 채 아빠가 이동국이라서라는 이야기를 들을까봐 걱정이 된다. 차두리도 차범근의 아들로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었다라고 이야기했는 걸 봤을 때도 더 그렇다. 그러나 시안이가 꿈을 향해 달려나간다면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 응원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월드컵 최연소 소집에 대해
지금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프로로 가는 게 당연하다. 제가 프로를 선택하던 시점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를 올라가지 않고 바로 사회생활을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흔한 길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대학교 연고전을 뛰고 싶었다고 해서 감독님께 혼났다. 축구선수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프로로 가서 먼저 사회를 경험해보라는 이야기를 하셔서 선택을 하게 됐다. 대학교 1학년 때 10년, 15년 위의 선수들과 부딪히면서 나도 모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느꼈다. 대표팀은 운도 따랐다. 황선홍 선배가 빠지면서 기회가 왔다. 그때 당시 최종 엔트리에 저를 발탁해주셨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볼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신문으로만 볼 수 있었다. 신문을 사서 봤는데 제 이름이 최종 엔트리 명단에 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프랑스 월드컵을 가면서 축구 선수로서 많은 걸 얻게 된 시기였다.
-네덜란드전 출전을 예상했나.
캐스터도 '김동국'이라고 할 정도로 정말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선수였다. 공항 나갈 때 배웅하러 팬들이 많이 오는데, 저한테 오신 분이 딱 세 분이었다. 모두 포항 골수팬들 딱 세 분이었고 홍명보, 황선홍 선배 배웅하러 오셨다가 '너도 잘 다녀와라'하면서 배웅해주셨다. 프랑스 갔다 오고는 인생이 바뀌어 버렸다. 180도로 달라졌다. 당시 차범근 감독님이 경질되셨는데 한국 분위기를 잘 몰랐고 분노가 가득 차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형들이 나를 기수로 세웠다. 기를 들고 나갔는데, 팬들이 팻말을 들고 환호를 해주셔서 깜짝 놀랐다. 김포공항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제 축구인생도 문이 열리면서 첫 발을 딛였다.
-98년 이후 연령별, A대표팀 일정으로 바빴는데 은퇴를 하고 나서 이시기를 돌아보면 어떤가.
그 이후로 청소년 팀, 올림픽 팀, 국가대표팀 등 4군데를 돌아다니면 경기를 뛰었다. 무릎 상태가 안 좋았지만 선수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경기였다. 만약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다. 선수라면 끝까지 참고 뛰어야 한다. 소속팀에는 미안했다. 현재는 대표팀 일정이 있으면 소속팀 일정 조율을 해줬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2002년 월드컵을 보며 달려나갔던 시기였다. 조언해줄 수 있는 분이 계셨다면 더 절제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은 있다.
-상무 입대는 인생의 전환점
당연히 명단에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준비했는데 2002 월드컵을 못보게 됐다. 아시안컵 당시 이영표 선배가 군대를 가라고 해서 군대를 갔다. 2002년을 기점으로 제 경기력은 바닥이었다.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프랑스 때부터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보다 과한 관심을 받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생각이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다시 한 번 선수로서 뛰기 위한 선택이었다. 타 스포츠 선수들이 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픽을 앞두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축구은 인기 스포츠이고 조금만 해도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는데라며 반성했다. 2006 월드컵을 목표로 내 자신을 혹사를 시키면서 계속 매진했다. 군대를 패잔병처럼 들어갔지만 2005년 제대할 때는 1옵션 스트라이커로 제대했다. 그때는 90분 동안 뛰는 데도 힘들지 않았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다보니까 체력이 완벽하게 준비가 돼있었다. 2006 월드컵이라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90분이 다 됐는데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2006 월드컵을 앞두고 나온 부상에 대해
월드컵 두 달을 앞두고 1-0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볼이 길게 왔다. 보통 선수는 가다가 포기한다. 그런데 85분인데도 힘이 들지 않아서 전력질주로 가서 방향을 틀었다. 그 순간 십자인대 부상이 왔다. 결혼 후 신혼여행 가서도 매일 일어나서 운동했는데, 그렇게 날카로운 칼을 갈고 있다가 부러지는 느낌이었다.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병원을 갔지만 의사 세 분도 월드컵을 갈 수 있는지 수술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첫 번째 스트라이커여서 신중한 선택을 해야 했다. 그래서 독일로 진단을 받으러 갔다. 의사분이 30분 동안 말을 돌리다가 '2006년 월드컵에서 너의 자리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2002년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2006년에는 열심히 준비한 만큼 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2개월 안에 재활을 하면 월드컵을 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수술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됐다. 2002년에는 한 경기도 응원을 못했지만 2006년에는 경기장에서 응원을 할 수 있었다.
-프리미어리그 진출
한국에서 영국으로 진출하는 첫 번째 케이스였다. 국내에서 2경기를 뛰고 영국으로 갔다. 2경기도 교체로 뛰고 갔기에 경기 감각이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아무나에게나 올 수 없는 기회였다. 프리미어리그는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들이 오는 리그였고, 내가 선택을 안하면 다시는 선택을 못받을 거 같다는 생각으로 이적을 결정했다. 1년 반을 있으면서 느낀 건 축구선수 삶으로는 성공하지 못한 케이스지만 많은 걸 얻었다고 생각했다. 가족이 생겼고, 내 직업이 축구선수이지 내 전부는 아니다라는 걸 느꼈다. 마트에서 아이들과 장보고, 맛있는 거 해먹고, 산책 가는 등 사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꼈다. 축구선수이기는 하지만 인생에서는 직업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프리미어리그라는 경험을 했지만 생활에서는 더 많은 걸 얻어왔다.
-성남 방출 통보
성남에서 6개월을 뛰었는데, 김학범 감독님이 경질된 뒤 신태용 감독이 오셨다. 베테랑 선수들을 정리를 해야할 거 같다고 하와이 여행 중에 연락이 오셨다. 그때 한없이 초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계약이 남았는데, 나이 때문에 나가라고 하니 다시 한 번 축구선수로서 당당하게 보여주자라고 생각하고 이적을 결심했다.
-전북 이적
전북 말고 다른 곳도 제의가 왔는데, 조건이 더 좋았다. 연봉도 2배 더 높았다. 고민했었다. 마음은 전북 외 타구단으로 향했지만 최강희 감독님께서 한 호텔에서 만나자고 이야기했다. 너는 꼭 필요한 선수이고, 네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끄집어낼 수 있는 감독이 될 수 있다고 하셨다. 손을 들고 빼달라고 할 때까지 기용을 하겠다고 해주셨다. 그 정도로 믿음을 주시는 사람 밑에 있으면 예전 기량이 나올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전지훈련 가서 무득점을 하고 돌아왔는데도 '아직 널 믿고 있다. 충분히 기량이 나올 거다'라고 말해주셨다. 이 사람을 위해서 경기를 뛸 수 있게 만드는 게 진정한 리더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감독님의 믿음이 실패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고, 그 해 20골 이상을 넣으면서 전북이 첫 우승컵을 들어올리게 됐다. 그래서 전북에서 12년 동안 10개의 트로피를 들 수 있었던 거 같다.
-전북이 오랫동안 성적을 낼 수 있었던 이유
선수들끼리 잘 어울렸던 거 같다. 전북은 지방에 있는 팀이고, 잘 어울릴 수 있는 여건이었다. 새로 온 선수들을 빨리 적응하게 도와주는 제 역할이었다. 경기를 뛰는 선수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경기를 못 뛰는 선수들은 불만이 나오게 된다. 그 선수들을 데리고 와서 밥 사주면서 이야기를 했다. 언제든지 쓸 수 있는 카드가 되도록 준비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이후 그 선수들이 필요한 선수들이 됐다. 불만이 없는 팀이 되면서 한 팀이 된 거 같다.
-38세에 다시 국가대표로 부름을 받았다
2018 월드컵 때 신태용 감독님이 오셔서 '최종예선이 2경기 남았는데 베테랑 선수가 필요하다. 그러나 월드컵 진출하더라도 너를 데려간다는 보장이 없다'고 하셨다. 30세에 베테랑 선수라고 내치더니 38세의 이동국을 다시 불렀다. 나는 월드컵 진출이 내 의무라고 하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건 내 노력으로 일궈낸 거구나 생각해서 들어갔다. 이란과 홈 경기 후 우즈벡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몸을 풀라고 해서 워밍업을 했는데, 종료 2분을 남겨놓고 저를 불렀다. 그런 상황에 보통은 화내거나 안 뛰려고 하는 선수들도 있다. 제가 몸을 풀고 섰을 때 나를 기다린 사람이 많다고 느껴졌다. 너무 많은 관중들이 박수를 쳐주고 이름을 불러줬다.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 순간을 위해 내가 지금까지 달려왔구나라고 느꼈다. 다시 뛸 순 없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많은 팬들이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다.
-만 41세 은퇴, 845경기 344골이라는 기록
은퇴식 때 많이 이야기를 했다. 김상식 감독이 내정이 되면서 1년 더 하라고 했는데 내려놨다. 김상식 감독과 어릴 때부터 같이 했는데, 선수와 감독으로 만나면 껄끄러울 거 같았다. 정신적으로도 내려놔야 겠다고 생각했다. 2020년에 20번을 단 이동국이 은퇴하는 그림도 괜찮았다. 41세면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은 시기였다. 지금 내가 내려오는 게 좋은 시기라고 생각했다.
-은퇴 후에 방송, 유튜브 등. 앞으로의 계획은
은퇴를 하게 되면 경쟁을 하지 않고, 은퇴 시점이 없는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처음 제안온 게 월드컵 해설이었다. 그것 또한 경쟁이었다. 뭘 잘하는 지 찾아보기 위해 해설도 했었고 쉬는 동안 안 해본 걸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다른 스포츠를 경험했다. 현재 유튜브도 하고 있다. 축구만 하다보니 사회 생활은 신생아 수준이었다. 사실 사기도 두 번 당했다. 축구선수와 군인이 사기 치기 좋다고들 한다. 인생의 쓴 맛을 몇 번 보고 나니 사람이 동료로 안보이고 사기꾼처럼 보이더라. 그렇게 되면서 하나하나 배워가는 시기였다.
-추천사를 차범근 감독님이 써주셨다
많은 분들은 최강희 감독님을 생각하실 거다. 축구에서 가장 생각나는 사람은 월드컵 대표를 처음으로 뽑아주신 차범근 감독이었다. 당시 많은 반대에도 본인이 책임지겠다고 하셨다. 내 축구 경력을 만들어주신 분이다. 어렸을 때 차범근 상을 받기도 했다. 추천사를 너무 잘 써주셔서 감사하다.
-은퇴 후 3년 동안 다른 인생에 대해 찾았나, 인생 2막의 목표는
3년은 정말 잘 쉬었고 재미있었던 삶이었다. 축구에 너무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내가 있어야 할 건 축구라고 생각했다. 여러가지 교육도 받고 있다. 준비가 되고 난 다음에 결정을 하는 것과 준비가 안된 상황에 결정을 하는 건 다르다고 생각한다. 테크니컬 디렉터, P급 교육을 받고 있다. 축구로서 많은 걸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끈을 놓지 않고 많은 걸 하고 있다.
-위기의 전북, 한국축구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나.
옆에서 보면 안타까울 정도로 성적이 안나오고 있다. 김두현 감독이 잘해낼 거라고 생각한다. 전 감독 역량이 아쉬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 좋은 이야기를 선수들에게 많이 들었다. 추락하는 전북을 막아줄 사람은 많이 있어본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두현 감독이 선임됐다고 해서 예전의 전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팬들이 기다려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근에 염기훈 감독이 사퇴를 했는데, 팬들의 영향력이 너무 커버려진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못기다렸기에 그렇게 했겠지만 어떤 지도자가 와도 팬들이 경질하라고 하면 경질해야 하는 세상인 거 같다. 축구를 잘 아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감독을 믿고 기다려주면 어떨까 한다.
대표팀도 임시 감독님이 오셨고, 새로운 선수들도 많이 발탁됐다고 들었다. 새로운 선수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항상 응원하면서 지켜볼 생각이다.
-독자들을 향한 메시지
다 읽어봤는데 책이 재미있더라. 축구를 하면서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제가 했던 선택이 다 맞진 않았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하냐에 따라서 결과가 바뀐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 대해 생각을 해보고 내가 선택의 길에 섰을 때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결과에 대해 받아들이면 좋을 거 같다.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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