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바둑리그, ‘구단제’ 도입하고 ‘직관’ 허용해야 살아남는다

이영재 2024. 5. 27.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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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제 도입에도 시청률 2.7배 급감한 바둑리그, ‘위기설’ 솔솔
여러 차례 논의된 구단제 도입하고 팬들 직관 허용해야 생존
2023-2024 KB국민은행 바둑리그 오프닝 미디어데이 전경. 쿠키뉴스 자료사진

2003년 ‘드림리그’를 모태로 2004년 정식 출범한 바둑리그는 올해 스무 살이 됐다. 2006년부터 국민은행이 18년 동안 타이틀 후원을 맡아 힘을 보탰다. 2023-2024 KB국민은행 바둑리그는 지난해 12월28일 개막전을 시작으로 지난 17일 챔피언결정전까지 약 5개월 동안 숨 가쁘게 달려왔다. 이번 시즌 바둑리그에선 총 63경기, 272국의 각기 다른 바둑이 펼쳐졌다.

지난 시즌 12개 팀이 ‘양대 리그’로 경합했던 바둑리그는 올해 4개 팀이 줄어들어 8개 팀 단일 리그로 진행했다. 한국기원은 사상 최초로 ‘용병제’를 도입하는 승부수를 띄웠지만 결과는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2017년 0.274%를 기록했던 바둑리그 생방송 시청률은 이번 시즌엔 0.102%로 약 2.7배 급감했다. 바둑 팬들에게 ‘직관’을 허용하지 않는 문화도 바뀌지 않았다. 바둑리그 주최사인 한국기원이 운영하는 ‘바둑리그 서포터즈’가 딱 4회 응원차 방문했을 뿐, 일반 팬들을 위한 현장 행사는 없었다.

바둑리그가 외면 받은 몇 가지 이유가 있고 그에 따른 해결책이 존재한다. 먼저 바둑리그 총규모는 약 34억원이다. 타이틀 스폰서인 KB국민은행이 10억원을 후원하고, 구단 형태로 참가하는 8개 팀에서 각각 3억원씩 ‘참가비’를 한국기원에 낸다. 정규시즌은 상금 없이 승리 팀에 1400만원, 패한 팀에 700만원을 지급했고, 포스트시즌 결과를 통해 우승팀에 2억원, 준우승팀엔 1억원의 상금을 줬다. 3위는 6000만원, 4위는 3000만원을 받았다. 상금은 1~5지명 선수 5명이 나눈다.

일단, 총규모에 비해 상금이 천편일률적으로 너무 적게 책정됐다. 총상금 규모 8억원인 메이저 세계대회 삼성화재배 우승상금은 3억원이다. 세계 바둑 랭킹 1위 신진서 9단은 2년 전 바둑리그에서 ‘27승 무패’라는 단일 시즌 최다 연승 신기록을 세우고도 1억원의 수입도 올리지 못했다. 삼성화재배와 같이 본선 32강부터 시작하는 메이저 세계대회의 경우, 우승까지 6~7승이면 충분하다.

과거 이세돌 9단이 ‘바둑리그 보이콧’ 선언을 했던 것도 같은 이유다. 당시 이 9단은 “중국 갑조리그는 구단제 방식이 잘 돼 있어 성적이 좋으면 몸값이 계속 상승한다”면서 “반면 한국 바둑리그는 성적이나 랭킹과 전혀 관계없이 같은 금액을 나눠 받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상위 랭커 희생으로 바둑리그가 운영되는 것”이라고 직격하며 바둑리그에 불참한 이세돌 9단과 이에 대한 징계를 시도하려는 한국기원은 서로 마찰을 빚다 사상 초유의 ‘휴직’ 파동까지 겪었다. 

KB국민은행 바둑리그 2023-2024 시즌 정상에 오른 울산 고려아연. 쿠키뉴스 자료사진

‘구단제’ 도입은 다음 시즌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선결 과제다. 한국기원은 바둑리그 참가 팀에 선수를 지명할 권리만 허용하고 있을 뿐, 사실상 구단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요소가 거의 없다. 모두 동일하게 3억씩 내고 참가한 입장이기 때문에 신진서 9단을 원하는 팀이 있어도 ‘공평하게’ 추첨을 통해 드래프트 순번을 기다려야 한다.

3년에 한 번씩 보유 연한이 만료된 선수를 강제로 방출하고 다시 뽑아야 하는 규정 탓에 운 좋게 최정상급 기사를 뽑았다 하더라도 결국 다시 ‘추첨 드래프트’ 시장으로 내몰린다. 실제로 신진서 9단을 뽑고 우승까지 차지했던 팀이 3년 후 드래프트에서 신 9단을 다시 뽑지 못하자 이듬해 후원을 중단하고 리그에서 빠진 사례도 있다.

바둑 팬들이 경기장을 찾아 ‘직관’ 할 수 있는 문화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문을 열어주면 찾아오겠다는 바둑 팬들이 꽤 있다. 여타 스포츠 종목처럼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과 만나 사인도 받고 응원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다. 신진서 9단의 농심배 ‘상하이 대첩’ 당시, 우승을 확정한 신 9단의 사인을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중국 바둑 팬들의 모습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아무 맥락 없는 오더제 또한 대대적으로 손을 봐야 한다. 제한시간이 다른 1국을 제외하면, 2~4국은 모두 같은 조건으로 진행돼 어떤 선수가 왜 그 순번으로 출전했는지 알기가 어렵다. 팬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빅 매치’를 만들기 위해 중국 갑조리그와 같이 ‘주장전’을 도입하자는 얘기가 오래전부터 나오고 있음에도 변화하려는 노력이 없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스무 살, 성년이 된 바둑리그는 이제 환골탈태할 때가 됐다. 구단제를 도입해 팀과 선수들에게 효용감을 주고, 직관을 허용해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야 한다. 바둑리그 주최사인 한국기원이 쇄신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아야 바둑 팬과 후원사들이 등을 돌리지 않을 것이다.

이영재 기자 youngja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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