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의 '감독 잔혹사 징크스'는 왜 반복되는가
[이준목 기자]
▲ 최원호 한화 전 감독 |
ⓒ 연합뉴스 |
독수리 군단의 '감독 잔혹사'에 또 하나의 리스트가 추가됐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최원호 감독이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27일 한화 구단은 "최원호 감독과 박찬혁 대표이사가 자진 사퇴했다"고 밝혔다.
구단에 따르면 최 감독은 지난 23일 경기 이후 구단에 사퇴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과 프런트 모두가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박찬혁 대표이사로 역시 동반 사퇴하기로 뜻을 모았고 지난 26일 최종적으로 구단의 결정이 내려졌다. 한화는 당분간 정경배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으로 팀을 지휘하며, 빠른 시일내에 차기 감독을 정식으로 선임하겠다는 입장이다.
한화는 현재 21승 1무 29패(승률 .420)로 리그 8위를 기록 중이다. 시즌 개막 초반 7연승을 달리며 한때 선두까지 치고 올라갔던 한화는 4월 이후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며 추락했다. 지난 23일에는 LG전 패배로 결국 올 시즌 처음으로 최하위까지 떨어지는 굴욕을 맛봤다. 류현진-안치홍-요나단 페라자 등 정상급 선수들을 영입하며 6년 만의 가을야구 진출을 노렸던 한화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성적이었다.
다만 감독교체 시점이 다소 공교롭다. 한화는 현재 2연승 포함, 최근 6경기에서 5승1패의 호성적을 기록하며 반등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지난주 5강 경쟁팀이라고 할 수 있는 LG 트윈스와 SSG 랜더스를 상대로 2연속 위닝시리즈를 따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한화는 끝내 최원호 감독과의 결별을 선택했다. 명목상 자진사퇴라고 하지만 사실상 경질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사퇴한 카를로스 수베로 전 감독과 타이밍이나 과정이 흡사하다. 한화는 1년 전인 2023년 5월 11일, 당시 팀 성적이 11승 1무 19패(승률 0.367)로 9위에 머물던 상황에서 계약 마지막 해였던 수베로 감독과의 동행을 일찍 포기했다. 당시 수베로 감독 역시 마지막 7경기에서 5승 2패로 반등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지만 거취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수베로 감독의 뒤를 이어 한화의 지휘봉을 잡은 것이 최원호 감독이었다. 그는 이미 지난 2020년에 한용덕 감독의 후임으로 감독대행을 맡아 114경기를 지휘하며 39승 3무 72패 승률 .351를 기록한바 있다. 당시는 한화가 극심한 부진으로 완전한 리빌딩을 막 선언한 시점이라 최원호 감독에게 성적에 대한 책임을 묻지는 않았다. 이후 최 감독은 수베로 감독이 부임하면서 다시 한화 퓨처스(2군) 감독으로 내려가 경험을 쌓았다.
2023년 한화는 수베로 감독을 경질하면서 이번에는 최원호 감독을 정식 1군 감독으로 승격시키고 3년 총액 14억 원(계약금 2억 원·연봉 3억 원·옵션 3억 원)의 계약을 맺었다. 수베로에서 최원호 체제로의 변화는, 한화가 더 이상 리빌딩이 아니라 '윈나우(이기는 야구)'를 하겠다는 노선 변화의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 박찬혁 한화 이글스 전 대표이사 |
ⓒ 한화이글스 제공 |
한화로서 더욱 부끄러운 기록은, 2017년 김성근 감독을 비롯하여 한용덕-수베로-최원호까지 무려 4명의 감독이 연속으로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중도 낙마하는 징크스를 이어갔다는 사실이다. 이는 곧 한화의 암흑기와도 일치한다.
범위를 더 넓히면 한화 지휘봉을 잡고 명예롭게 물러난 인물은 손에 꼽을 정도다. 1986년 전신인 빙그레 이글스로 창단한 한화는 초대 배성서 감독을 시작으로 최원호 감독까지 총 13명의 사령탑이 팀을 거쳐갔는데, 이 중 절반에 가까운 6명이 성적부진으로 계약기간을 마치지 못하고 경질 당했다. 더구나 6명중 강병철 감독(1998년 7월 경질)을 제외한 나머지 5명(한대화, 김성근, 한용덕, 수베로, 최원호)은, 모두 한화의 암흑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0년대 이후의 감독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한화는 2008년부터 최근 16시즌간 가을야구에 나갔던 것은 단 1번(2018년, 3위) 뿐이다. 이 기간동안 꼴찌만 무려 8번이나 기록했고, 3할대 팀 승률을 기록한 것이 7번이었다. 그동안 한화는 무려 7명의 감독이 팀을 거쳐가는 혼란기를 거쳐야했다.
이 기간 한화 감독으로 계약기간을 채운 것은 그나마 김인식(2005-2009)과 김응용(2013-2014), 두 명 뿐이다. 하지만 이 두 감독 모두 계약 마지막해 팀 성적이 꼴찌에 그치며 중도에 경질되는 것만 피했을 뿐 당연히 재계약에는 실패했기에, 사실상 명예롭게 물러났다고 하기는 어렵다.
2000년대 후반 이후 한화의 역대 감독 리스트를 보면, 그야말로 중구난방이라는 것이 두드러진다. 김인식-김응용-김성근 등 '이름값'에서 손꼽히는 노장에서부터, 한화 레전드(한용덕), 연고지 출신(한대화), 외국인 감독(수베로), 자체 육성을 통한 내부 승격(최원호)까지 그야말로 온갖 방식을 다 동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정작 구단이 추구하는 확고한 방향성이나 철학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리빌딩을 추구하기 위한 감독을 데려왔다가 2, 3년 내에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윈나우로 방향을 틀어버리고, 자율야구와 육성에 능한 감독을 모셔왔다가, 그 다음에는 갑자기 올드스쿨형 강성 감독을 데려오는 등, 구단 운영이 장기적인 비전 없이 한순간에 손바닥 뒤집듯 바뀌기 일쑤였다. 결국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그 비난과 책임은 모두 감독이 혼자 뒤집어써야만 했다.
다른 구단이나 보직에 있었을 때는 제법 유능하다고 평가받았던 인물들도, 왜 한화 1군 감독만 되면 왜 하나같이 좋지 못한 결과를 맞이하는 것일까. 이것이 감독 개인의 자질 문제인지에 대한 분명한 성찰이 필요하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면서 수많은 감독들을 데려오고도 뚜렷한 성과도, 팬들이 이 감독을 그리워하거나 재평가할만한 추억도 남기지 못했다는 것은, 한화 구단이 뼈아프게 새겨야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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