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징용 피해 3자 변제에 120억 더 필요, 한∙일 기업 나서야"
"지난해 말부터 강제징용 피해에 대한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추가 승소자들을 접촉해보니 90% 이상이 제3자 변제에 대한 수용 의사를 밝혔습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려면 약 120억원이 더 필요한데, 재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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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억 남았는데…"120억은 더 필요"
재단은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3월 결단한 강제징용 제3자 변제 해법을 실제 이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재단이 판결을 통해 확정된 배상금과 지연이자를 피해자에게 대신 지급하는 방식이다. 2018년 10~11월 판결이 확정된 피해자 15명 가운데 제3자 변제안을 수용한 11명이 재단으로부터 판결금을 받았다.
지난해 12월과 올 1월 같은 취지의 소송(9건)에서 피해자 52명이 추가로 승소 판결을 확정 받았다. 정부는 제3자 변제 해법을 발표하며 "현재 계류 중인 강제징용 관련 다른 소송에서도 원고가 승소하면 같은 방식으로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심 이사장은 "정부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며 "재원을 확충해서 판결금 수령을 원하는 원고분들에게 하루빨리 판결금을 지급하는 게 최대 현안"이라고 말했다. 또 "확보한 연락처를 통해서 대부분의 승소자 측을 접촉해본 결과 90% 이상이 제3자 변제를 수용했다"며 "이들을 위해 최소 120억원 안팎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재단을 통한 판결금 수령을 수락한 피해자들은 대부분 "오랜 투쟁을 이제는 마무리 짓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일부 승소자의 경우 판결금과 지연이자의 조속한 수령을 위해 행정안전부와 외교부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가족 모두가 수령을 희망한다'며 재단에 방법과 절차를 구체적으로 문의한 경우도 여럿 있었다.
그런데 정작 재원이 부족해 제3자 변제를 통해 이들을 위한 사법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 지연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연이자가 가산되는 것은 물론이다. 앞서 포스코 등이 재단에 기부한 약 41억 1400만원 중 약 38억원을 피해자(11명)에게 지급하거나 수령을 거부한 피해자(4명)를 위한 공탁금으로 지출했다. 현재 남은 돈은 약 3억원에 불과한 셈이다.
재원은 모두 기부금으로 마련한다는 원칙이다. 한국과 일본 기업의 자발적 참여 외에는 마땅한 다른 방안이 없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의 혜택을 받은 한국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한·일을 오가며 활발히 경제 활동을 하는 양국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 필요성도 제기한다.
또 애초에 제3자 변제라는 우회적 해법이 나온 배경이 재판에서 패소한 피고 전범 기업들이 판결에 따른 배상을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걸 고려하면 일본 측의 참여가 없는 데 대해 한국 측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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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기업 참여해야 국민 지지받아"
심 이사장도 "일본은 일본대로 사정이 있다고는 하지만, 일본 기업이 참여해야 비로소 제3자 변제가 한국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판결의 취지는 결국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 국민으로서 일본 기업의 참여를 요구하는 건 마땅한 일"이라면서다. 그는 "재단에 직접 기여하기 부담스럽다면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와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가 만든 미래 파트너십 기금에 좀 더 적극적으로 기여했으면 좋겠다"라고도 말했다.
두 단체는 한국 정부의 제3자 변제 해법 발표 직후 양국 관계의 미래 지향적 발전을 위해 해당 기금을 창설하고 각기 10억원과 1억엔을 냈다. 용처는 미래 인재 교류 등으로 한정돼 있고, 직접 피해자에게 지급되지는 않는다.
이와 관련, 25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게이단렌은 회원사들이 목표액의 2배인 2억엔 이상의 기부금을 냈다고 전날 발표했다. 게이단렌은 기부금을 낸 기업의 정보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요미우리는 "배상 의무가 확정된 일본 피고 기업은 현시점에서는 (기부에) 참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심 이사장은 "이번 게이단렌의 추가 기여로 우리 돈으로는 이제 40억원 정도가 미래 파트너십 기금에 모이게 된 셈으로 이 또한 의미가 있다"면서도 "앞으로 양국에서 더 많은 기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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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자 변제는 양국 화해 1등 공신"
심 이사장은 제3자 변제에 대해 "'불가능한 최선'보다 '가능한 차선'을 선택한 한국의 결단"이라며 "양국이 오랜 불화와 반목을 딛고 화해를 하도록 한 1등 공신"이라고 평가했다.
일부 피해자의 수령 거부, 법원의 공탁 기각, 재원 부족 등으로 제3자 변제안 이행이 어려워졌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심 이사장은 "제3자 변제를 수용한 피해자가 거부한 피해자보다 훨씬 많고, 일본 피고 기업이 판결을 이행하지 않는 한 제3자 변제는 피해자의 권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법의 문제라면 몰라도 재원 문제로 이 해법을 멈출 수는 없기에 양국 기업의 자발적인 기여를 간곡히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의 공탁 기각에 대해서는 "공탁은 새로운 선택이 아니라 제3자 변제의 과정이었다"며 "변제의 완결을 위해선 공탁을 할 수밖에 없으며, 결과를 겸허히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법원의 공탁 불수리에 불복해 이의신청을 제기했지만, 기각되자 현재 항고를 진행 중이다.
특히 미·중 간 전략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불안정한 국제 정세로 양국 협력의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제3자 변제 해법의 이행을 통한 징용 문제 해결의 중요성은 더 부각된다.
심 이사장은 "북핵 미사일 고도화, 미·중 패권 경쟁, 공급망 관련 국가 이기주의 등 글로벌 문제가 빈발하는 가운데 한·일이 협력하면 대외 발언력과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액션플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1945년 광복 직후 부산항으로 귀향하다 일본 앞바다에서 침몰한 우키시마호의 승선자 명부를 일본 정부가 보관하고 있었던 사실이 최근 드러난 것과 관련해 심 이사장은 "관련 진상 규명에 한·일이 힘을 합쳐 노력한다면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한 한국인의 반일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데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재단 내에도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 관련 별도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강제징용 피해와 관련한 학술 연구 등도 재단의 주요 사업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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