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 맛집도 생선가게도 있다…도쿄 흔든 '이색 수퍼마켓' [김현예의 톡톡일본]

김현예 2024. 5. 27. 00: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현예 도쿄 특파원

롯폰기힐스와 도라노몬 힐스, 아자부다이 힐스를 잇따라 세우며 일본 수도 도쿄(東京)의 마천루를 바꿔오던 부동산 개발회사 모리빌딩이 새 도전에 나섰다. ‘도쿄를 세계 제일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모리빌딩이 이번에 선택한 건 수퍼마켓. 35년간의 개발 끝에 지난해 11월 문을 연 아자부다이 힐스가 도전 무대다. 일본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포함해 연간 3000만명의 발길이 이어지는 이곳에서 모리빌딩은 왜 수퍼마켓을 직접 운영하고 나선 걸까. 지난 3월 문을 연 아자부다이 힐스 마켓을 지난 17일 찾았다.


미슐랭 가게 들어가던 재료를 슈퍼에


모리빌딩이 지난 3월 아자부다이힐스에서 선보인 아자부다이힐스 마켓. 직영으로 운영으로 미슐랭 별을 받은 고급 레스토랑에 납품되던 일본을 대표하는 고급 식재료를 '주문 조리'하는 형태로 판매해 손님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닭꼬치쿠이집 토리시키 앞에 손님들이 줄을 서있다. 김현예 특파원
닭고기를 숯불에 구워 파는 닭꼬치구이집인 ‘토리시키(鳥しき)’ 앞. 꼬치 하나에 약 390엔(약 3300원)으로 적지 않은 돈이지만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오후 4시인데도 긴 줄이 늘어서 있다. 매대 앞엔 하루에 단 5번, 닭꼬치구이(야키토리)가 나오는 시간표가 적혀있다. 백화점 지하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음식 판매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도쿄 메구로(目黑)에 본점이 있는 토리시키는 미슐랭(미셸린) 별을 받을 정도로 유명 맛집. 인기가 하도 많아 ‘일본에서 제일 먹어보기 힘든 닭꼬치구이’집으로도 불리는데, 이곳 마트에 입성했다.

백화점서 흔히 보는 맛집 분점인가 싶겠지만, 전혀 다르다. 1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일본 제일 닭고기’ 노포 토리토(鳥藤·1907년 창업)에서 엄선한 닭고기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토리시키 옆엔 완전 예약제로 즐길 수 있는 작은 닭꼬치구이 음식점 토리오카(鳥おか)도 있다. 말하자면 식재료부터 조리, 음식점까지 모두 붙어있는 ‘이색 마트’인 셈이다.

토리시키 옆에 마련된 자그마한 규모의 닭꼬치 레스토랑 토리오카. 장인이 비장탄에 닭꼬치를 구워주는데 완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김현예 특파원

닭고기뿐만 아니다. 야마유키(やま幸)처럼 일본 최고 생선가게도 있다. 중간 도매상으로 통상 미슐랭 별을 받은 스시집과 거래를 해오던 야마유키는 이곳에선 일반 소비자들에게 참치 꼬릿살과 같은 특수부위까지 판매한다. 주문하면 명장이 선홍빛 참치를 날렵한 손놀림으로 잘라주는데, 가게에 나란히 붙어있는 레스토랑에서 초밥이나 요리로 바로 즐길 수도 있다.

딸기잼이나 과자, 장류 같은 공산품을 판매하는 코너가 있는 건 여느 마켓과 비슷하지만, 채소와 과일, 치즈, 고기까지 일본에서 손꼽히는 가게 34곳이 음식점까지 갖춰 4000㎡ 공간에 한 데 모여있는 건 일본에서도 전례 없는 일이다. 쓰카모토 마사노리(塚本雅則) 모리빌딩 리싱오퍼레이션 담당은 “일본의 식문화를 널리 알리자는 뜻으로 일본 최고 식재료를 팔면서도 동시에 최고의 상태로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슐랭 별을 받은 초밥집에 납품되던 최상급 참치 등 생선을 일반 소비자들도 살 수 있게 한 야마유키. 좀처럼 사기 힘든 참치 꼬릿살 등도 이곳에선 살 수 있다. 김현예 특파원

'궁극의 식재료'를 찾아서


그에 따르면 모리빌딩이 처음부터 수퍼마켓을 직접 운영하려 했던 건 아니었다. 호텔과 사무실, 주거 등을 포함한 복합상업시설인 아자부다이힐스에서 마켓은 필수요소였다. ‘생활의 기본인 식(食)이란 행위를 어떻게 전할까’ 고민하던 쓰카모토 담당은 수퍼마켓 위탁이나 협업을 검토하다 이내 직접 운영으로 마음을 돌렸다고 밝혔다. 일본을 대표하는, 일본에서 가장 좋은 식재료를 팔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자부다이 힐스 마켓을 찾은 손님들이 치즈 등 유제품을 고르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준비를 위해 2020년 말, 수험공부하듯 동료들과 조사에 들어갔다. ‘좋은 음식점엔 반드시 좋은 식재료를 공수해오는 거래처가 있다’는 데 착안해, 음식점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초밥으론 업계 최고 중 하나로 꼽히는 스시사이토우(鮨さいとう)를 찾아간 그는 이곳에서 추천한 활어 거래선 야마유키를 소개받았다.

궁금증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최고의 생선이 어떻게 잡히고 거래되는지, 또 어떻게 가공되는지 과정을 알고 싶어졌다. 새벽 경매시장을 쫓아가고, 참치 해체 과정까지 공부하고 나섰다. 쓰카모토 담당은 “그러고 나서야 왜 야마유키에 좋은 활어들이 모여있는지를 알게 됐고, 이것이 마켓 내 판매점 오픈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후에도 소고기, 닭고기, 채소까지 최고의 점포를 찾아다니면서 출점 설득을 했다.


“경험을 팝니다”


돈가스나 함박스테이크를 그 자리에서 바로 조리해 판매하는 파라야자와. 김현예 특파원
좋은 식재료를 확보했지만 여기서 그칠 수 없었다. 모리빌딩은 지금껏 존재하지 않던 ‘주문 조리(by order)’ 형식으로 손님을 맞이하기로 했다. 예컨대 닭꼬치구이는 시간을 정해 조리해 갓 만들어진 것을 판매하고, 반찬 등을 파는 ‘파라야자와’에선 손님이 주문하면 갓 튀긴 돈가스나 갓 만든 함박스테이크를 팔도록 한 것이었다. 쓰카모토 담당은 “주문을 하고 조리를 하는 데엔 10분 정도 시간이 소요되지만, 물건을 늘어놓은 채로 판매만 하는 마켓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개업한 지 두 달 남짓한 시간. 최고급 식재료를 표방한 마켓은 성과를 거두고 있을까. 쓰카모토 담당은 “일본의 식문화를 알리는 데엔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으로 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리빌딩의 홍보 담당 와타나베 모이치(渡邉茂一)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경험, 체험을 팔고 있다”고 설명했다. 밑국물을 내는 데 필요한 해산물을 직접 골라 밑국물 봉지를 만들 수 있도록 한 전문점을 비롯해 마켓 안에 포함되어 있진 않지만 전 세계 각지의 희귀 꿀을 모아놓은 꿀 가게와 디저트 전문점, 미술관과 디지털 아트 뮤지엄 ‘팀랩 보더리스’가 들어서 방문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었다.

새우, 가쓰오부시, 표고버섯과 같은 다양한 건어물을 선택해 자신만의 밑국물 조합을 할 수 있다. . 김현예 특파원

모리빌딩은 최근 아자부다이 힐스를 뛰어넘는 시설을 만들겠다는 새 계획을 구상 중이다. 롯폰기 일대(5초메 서쪽 지구·총 연면적 108만6000㎡)를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아자부다이 힐스(86만1700㎡)를 넘어서는 것으로 8000억엔(약 7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완성된다면 기존 롯폰기 힐스-아자부다이 힐스와 연결되는 형태로 초거대 마천루가 다시 한번 생겨난다. 와타나베는 “세계적으로 도시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모리빌딩은 앞으로 도쿄의 강점을 키우고 약점을 보완해나가기 위해 어떤 도시를 만들고, 키워나갈지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모리빌딩은 어떤 회사

「 종합 부동산 개발 업무를 하는 비상장 회사로 1959년대 모리 타이키치로(森泰吉郎)가 설립했다. 모리 창업주는 1950년대 후반 토라노몬 주변 토지를 사들였는데 당시 신분은 경제를 가르치는 교수였다. 요코하마시립대 학장 선거에 출마했지만, 학장과 민간 기업 회사 경영을 겸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학교를 떠나 부동산 사업에 전념한다. 일본이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경험하던 90년대 ‘버블경제’ 시기엔 세계의 부자 순위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세를 불렸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아자부다이 힐스. 김현예 특파원

1993년 모리 창업주가 사망하면서 둘째 아들인 모리 미노루(森稔)가 사장에 취임했다. 본사가 있는 미나토(港)를 중심으로 의식주와 문화를 결합한 ‘도시 만들기’에 나서면서 현재 모리빌딩의 사업구조를 갖췄다. 1986년 아크 힐스를 시작으로 대규모 재개발 사업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후 모리빌딩이 17년에 걸쳐 직원들이 직접 주민들을 한명 한명 설득해 롯폰기 힐스(2003년)를 완공한 이야기는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유명하다. 모리빌딩은 이후에도 토라노몬 힐스(2014년)에 이어 아자부다이 힐스(2023년) 등 도쿄를 상징하는 건물들을 선보이며 주목받고 있다. 현재 사장은 쓰지 신고(辻󠄀慎吾), 직원 수는 1639명. 2024년 3월 기준 총자산 2조8048억엔(약 24조4000억원).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