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소통카페] 뒤통수 대신 얼굴을 마주하는 강의실
‘대학 강의실을 영국 의회의 회의실 공간 구조처럼 바꾸어 수업을 진행한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공간, 거리, 동작, 촉각, 후각, 음성, 외모, 시간을 포함하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요소를 공부하고 난 뒤에 학부 학생들에게 한 질문이다. 오래전부터 묻고 또 토론도 해보고 싶은 문제였다.
영국 의회의 회의장은 참 좁다. 옆에 앉는 의원의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운 의석 간 거리, 좁고 딱딱한 좌석, 뷔페 음식을 놓는 식탁 같은 테이블을 가운데에 두고 의원들이 붙다시피 가까이서 마주 보는 구조다. 발언권을 얻은 발표자의 육성을 듣기 위해 저절로 집중하게 되는 공간이다. 의원의 발언에 대한 야유와 동조, 찬성 혹은 반대의 적극적 언어와 비언어 의사 표현이 잘 드러난다. 또한 토론이 과열되어 말다툼과 고성이 오가는 혼란도 의장이 의사봉을 치면 바로 진정된다. 물론 오늘날과 같은 진중한 의회다운 토론 문화의 예의와 전통은 의원들 간의 결투를 포함하는 비의회적 행위의 오랜 진통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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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좁은 공간서 마주보는 영국 의회
발표자에 집중, 열띤 토론 가능
대량 정보전달 교육은 수명 다해
‘관계의 힘’기르는 소통공간 돼야
」
응답의 결과는 필자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일방적인 것이었다. 85명 학생 중에서 2명을 제외하고는 강의실 공간의 변화가 수업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것이라 지적했다. 일부만 소개하면 ‘교수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 거리의 감소로 인해 말과 의견 나누기가 용이하고 소통 활동도 증가’ ‘수업 구성원 간의 상호작용 촉진’ ‘대화의 일상화로 발표에 대한 불안감 극복에 도움’ ‘눈 맞추는 행위의 증가로 동료와 친밀감과 유대감이 생기고, 전체적인 수업 분위기가 좋아질 것’ ‘교수는 말하고 학생은 듣는 일방적 전달 형태의 수업 방식 탈피’ ‘개방적 환경으로 교수와 학생, 학생들 사이의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사라지고 평등한 구조로 바뀔 것’ ‘뒷자리에서 다른 짓을 하지 못하게 되어 좋은 학습 분위기 형성’ ‘태블릿이나 노트북 모니터 같은 전자기기 사용이 어렵게 되어 수업 방해 행위 감소’ ‘수업에 대한 참여와 집중도가 높아질 것’ 등 기대는 다양했다. 반대 의견은 ‘허용하고 싶지 않은 개인 공간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침범당하는 불편’ ‘좁은 간격의 수업으로 인한 필요 이상의 집중’ ‘교수로부터 받는 압박감과 위압감의 가중과 피로감 증대’였다.
공간의 구조적 특성이 커뮤니케이션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사람이 직접 공연하는 연극 공간은 무대와 객석이 직접 호흡하게 하는 구조다. 배우는 육성과 연기로, 관객은 배우의 대사와 움직임에 눈과 귀의 집중으로 서로 반응하며 커뮤니케이션한다. 대조적으로 영화관 공간은 대형 스크린에서 객석을 향해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관객은 특별한 노력 없이 고화질 영상 정보와 고성능 스테레오 음향을 받아들이면 된다. 쉽고 편하게 전달받지만 관객은 수동적인 위치에 놓이게 된다(『보이지 않는 도시』, 임우진). 우리나라 국회의 본 회의장도 소통에 비효율적인 공간이다. 지나치게 넓은 공간, 몸을 기울여야 대화가 가능한 의원들 사이의 간격, 꽤 멀리 걸어나가야 하는 발언석, 높은 곳에 자리한 단상과 의장석, 크고 폭신한 의자는 의원들이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발언하고 토론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구조다.
21세기의 대학 강의실과 수업 공간도 소통에 부정적인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경이롭게 발전하는 인공지능이나 첨단의 시청각 기자재 시설을 이용해 기계적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장소에 그쳐서는 안 된다. 디지털 기술의 생산·유통·이용 양식이 낳는 지나친 ‘나 홀로 개인주의’를 넘어 공동체 의식과 유대감을 높이는 체험학습 현장,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타인과 함께 사는 법’을 익히는 공간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일렬로 앉아 교수의 강의를 일방적으로 듣는 대량 정보 전달 교육은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 체제가 유용하던 산업혁명 기술 시대에 적합한 방식으로 그 임무를 다하였다. 디지털 기술 혁명 시대에는 동료의 뒤통수가 아니라 얼굴을 마주 보며 자유롭게 소통하며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능력을 기르는 교육이 필요하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카카오톡 등 수많은 SNS 수단이 쉽고 편하게 제공하는 ‘초연결 시대’에 역설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외로움, 소외감, 고립감(『고립의 시대』, 노리나 허츠)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들 간의 관계가 주는 힘’도 기르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김정기 한양대학교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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