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이오 밍 페이의 일본판 무릉도원, 미호미술관
“무릉 고을의 어부가 복숭아 꽃에 취해 길을 잃었다. 산을 헤매다 작은 동굴을 빠져나오니 밝고 아름다운 마을이 나타났다. 속세와 절연한 마을 사람들은 스스로 즐겁게 살고 있었다.”
도연명의 ‘도화원기’ 이야기로 안견이 몽유도원도를 그려 더 유명한 내용이다. 일본 사가현의 미호미술관은 도연명의 환상을 건축으로 실현한 예술의 도원이다.
길게 휘어져 어슴푸레한 동굴을 지나면 계곡을 건너는 다리로 연결되고 미술관의 입구가 나타난다. 기하학적 철골 구조 틀에 유리 지붕을 씌운 건물의 형태는 일본 신사 건물의 외관을 연상케 한다. 밝고 넓은 로비에 들어가면 통창을 통해 건너편 산의 풍경이 그림같이 전개된다. 로비는 개방적이지만 전시실들은 모두 땅속에 묻어 지형을 최대한 보존했다. 건축면적의 4분의 3이 지하이고 몇 개의 유리 경사 지붕만이 울창한 숲속에 솟아있어 마치 깊은 산 속 사찰과 같은 전경이다.
1997년 개관한 이 미술관의 설립자는 신지슈메이회(神慈秀明會)를 창립한 코야마 미히코다. 미술관의 이름도 그녀의 이름을 따랐다. 슈메이는 “아름다움이 정신을 높이고 사회를 평화롭게 한다”는 독특한 이념을 가진 신도 계통의 종교집단이다. 일본의 중요 예술품, 간다라 불상과 이집트 신상 등 보유한 3000여 점의 세계적 컬렉션은 종교적 실천을 위한 공물이다.
건축가는 루브르 중정의 유리 피라미드 설계자로 유명한 중국계 미국인 이오 밍 페이(1917~2017)다. 건축은 땅에 고정된 붙박이 예술이다. 페이는 20세기 후반의 손꼽히는 현대 건축가이면서도 장소의 역사와 문화를 존중한다. 베이징에 설계한 샹산(香山)호텔은 가장 중국적인 현대건축으로, 카타르 도하의 이슬람미술관은 가장 이슬람적인 공간으로 평가된다. 미호미술관은 기하학적 모듈을 바탕으로 설계했고 현대적 재료와 첨단의 공법을 사용했다. 그럼에도 유리 지붕은 일본 건축의 전통을, 부드러운 빛으로 충만한 공간은 무릉도원을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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