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명 무더기 기권…‘해저드’ 빠진 골프예절
지난 25일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E1 채리티 오픈 2라운드.
대회 둘째 날이었는데 지한솔·박보겸·박혜준·윤이나·전예성·김가영·손주희·임지유 등 8명의 선수가 무더기로 기권했다. 한 조로 묶인 세 명의 선수 가운데 두 명이 기권하는 바람에 뒷 조에서 다른 선수를 데려와 플레이한 경우도 있었다.
기권한 선수들은 이런저런 부상을 이유로 댔다. 프로 골퍼들은 대부분 고질적인 부상을 안고 경기에 출전하는 게 사실이다. 그들에게 부상 투혼을 보여달라는 건 아니다. 몸이 아프면 미리 출전하지 않겠다고 하면 되고, 출전했다가도 경기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면 그만두는 게 맞다.
그런데 E1 채리티 오픈에서 많은 선수가 중도에 경기를 포기한 건 아무래도 석연찮다. 이 대회는 총상금(9억원)이 적은 편인 데다 상금의 일부를 자선기금으로 내기 때문에 선수들이 손에 쥐는 상금은 더 적다. 더구나 대회장인 페럼 골프장의 그린은 딱딱하고 빨라 선수들이 힘겨워한다. 이래저래 선수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대회다.
이 때문에 선수들이 좀 해보다가 성적이 나쁘면 평균 타수 관리 등을 위해 그만둔다는 비판도 나온다. “패가 좋으면 치고, 안 좋으면 안 치는 포커판처럼 그만둔다”고 얘기하는 이도 있다.
물론 갑자기 많이 아파 그만두는 선수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KLPGA는 다른 투어에 비해 전반적으로 기권 선수가 많다. 성적 좋은 선수 중에서는 기권자가 거의 없는 걸 보면 패를 보고 공을 친다는 비판이 꼭 틀린 말만은 아니다.
잘 안 될 것 같으면 중도에 그만두는 건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한다는 스포츠맨십에 어긋난다. 게다가 선수들은 여러 면에서 결례를 했다. 일단 관중이나 시청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둘째는 동료 선수에게 무례했다. 19세 신인 임채리는 1라운드가 열린 24일 새벽 2시에 집에서 나와 4시에 경기장에 도착했다. 대기 1순위라 혹시 기권하는 선수가 있으면 대신 출전하기 위해서였다.
차에서 한 시간여 눈을 붙이고 5시 30분부터 퍼트 연습 등을 하면서 기다렸다. 아침 조에서 기권자가 나올 수 있어 새벽부터 준비했고 마지막 조가 나간 오후 1시 45분까지 몸을 풀었지만 아무도 기권하지 않아 골프장을 떠났다. 기권할 거면 애타게 기다린 임채리 같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줬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하는 골프라는 스포츠에 대한 예의다. 2021년 마스터스에서 마쓰야마 히데키가 우승한 후 그의 캐디는 18번 홀에서 깃대를 보고 모자를 벗은 채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골프에 감사하고 전통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 인사에 녹아 있었다.
◆배소현, 154번째 대회에서 첫 우승=26일 끝난 E1 채리티 오픈에선 배소현(31)이 생애 처음으로 우승했다. 최종 3라운드에서 버디 4개와 보기 4개로 이븐파를 기록해 합계 9언더파 207타로 정상에 올랐다. 우승 상금은 1억6200만원. 1993년생인 배소현은 지난 2011년 프로에 데뷔했지만, 2017년에야 1부 투어에 합류했다. 배소현은 154번째 대회 만에 첫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합계 5언더파 공동 3위에 오른 박민지는 상금 4612만5000원을 받아 장하나(57억7049만원)를 제치고 개인 통산 상금 1위(57억9778만원)로 올라섰다.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KB금융 리브 챔피언십에서는 한승수가 합계 11언더파 277타로 우승을 차지했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고봉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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