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200만원이면 한국인이 낫지" 필리핀 가사도우미에 '갑론을박'
영어 시험 통과자만 선발…내국인 시터보다 저렴
정부가 오는 9월부터 본격적으로 배치하겠다고 밝힌 필리핀 가사관리사(가사도우미)와 관련해 의견이 나뉘고 있다. 당초 이용료 월 100만원 수준의 저렴한 비용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최저임금 적용으로 월 206만원까지 오르며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다만 필리핀 가사도우미는 상당한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갖추고 있어, '영어유치원'(유아 영어학원)보다 저렴한 가격에 돌봄 서비스까지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6일 고용노동부와 서울시에 따르면 필리핀 정부는 최근 한국에서 일할 가사도우미 선발 절차를 시작했다. 만24~38세 이하 지원자 중 경력·어학 능력·범죄 이력 등을 검증해 선발한다.
시범사업으로 선발된 100명은 7월 말부터 고용허가제(E-9) 비자를 통해 입국한 뒤 4주간의 문화교육을 거쳐 9월부터 내년 2월까지 6개월간 실전 배치된다. 정부 인증기관이 고용한 뒤 가정에 출퇴근하는 방식으로 근무한다. 20∼40대 맞벌이 부부와 한부모·다자녀 가정 등에 우선 배치되며 내년에는 500명으로, 2026년에는 1000명으로 확대 도입될 예정이다.
외국인 가사·육아도우미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할 수 있는 외국인은 영주권자나 결혼이민자가 아니라면 재외동포(F-4) 비자를 받을 수 있는 중국 교포(조선족)뿐이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며 정부가 제공하는 아이돌봄 서비스는 경쟁률이 치열해 평균 1주에서 3개월에 달하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이용료도 상승했다. 현재 기준 돌봄 서비스 비용은 통근형은 시간당 1만5000원 이상, 입주형은 월 350만~450만원(조선족 월 250~350만원) 선이다.
지난달 아이를 낳고 아이돌보미를 고용하고 있는 윤모(29)씨는 "오전 9시~저녁 6시까지 15일간 이용하는 비용이 206만4000원이다. 정부 지원으로 실제로 내는 건 57만원인데 만약 돈을 우리가 다 내야 했다면 엄두를 못 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7월 열린 토론회에서 "중산층 가정 30대 여성의 중위소득이 320만원인 점을 고려할 때 이용료가 월 100만원 수준이 돼야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홍콩·싱가포르와 달리 한국이 국제노동기구(ILO)의 '차별금지 조약'에 비준한 국가라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ILO 협약 111호에 따르면 인종이나 피부색, 출신국에 따라 고용제도를 구분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필리핀 가사도우미는 내국인과 동일한 최저임금을 적용받는다. 주 40시간 일한다면 월 206만원보다 많은 임금을 줘야 한다. 다만 선발 공고에 따르면 한국과 필리핀 정부는 필리핀 가사도우미가 일주일에 최소 30시간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올해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가사도우미 임금은 최소 월 154만원이 된다.
당초 약속된 임금의 두배 가까이 오르며 일각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4살과 2살 아이를 키우는 권모씨(32)는 "그나마 저렴한 이용료가 메리트라고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5살 딸아이를 키우는 조모씨(35)는 "저 정도 가격이면 근로 시간을 조금 줄여 한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에 합법적으로 국내에 취업하는 필리핀 가사도우미는 영어 실력을 공인받아야 한다. 필리핀 정부가 낸 한국 근무 가사관리사 선발 공고를 보면 지원자들은 두 번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첫 번째 시험은 고용허가제 한국어 능력시험(EPS-TOPIK)이고, 두 번째 시험은 체력 테스트와 한국어·영어 면접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영어 면접은 점수를 매기지 않고 합격 또는 불합격(PASS/FAIL) 방식으로 진행된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유아 영어학원 월평균 교습비는 지난해 기준 124만원이다. 세종은 170만3000원으로 가장 높고, 서울은 144만1000원이었다.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면 부모는 유아 영어학원과 비슷한 비용으로 자녀가 일상생활에서 영어 사용에 노출되도록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돌봄과 관련된 청소, 빨래, 음식 조리 등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필리핀 가사도우미가 자녀의 영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홍콩에서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에서 온 가사도우미가 각 가정에 입주해 일하고 있다.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교수는 지난해 7월 서울시가 개최한 토론회에서 현지 연구 결과를 인용해 "영어를 쓰는 나라(필리핀) 출신 가사 도우미와 함께 살 경우 아이들의 영어 점수가 다른 아이보다 높다"고 밝혔다.
오는 12월 아이를 출산할 예정인 김모씨(33)는 "지금도 내국인 시터와 비교하면 100만~150만원 정도 저렴한 것 같다"며 "아이에게 영어도 가르칠 수 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신청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소진 기자 adsurdis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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