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교육, 대학의 껍데기만 남길 것 [‘할말 안할말’…장지호의 ‘도발’]
등록금이 동결된 해가 2009년이다. 2009년 대비 2022년 소비자물가지수는 128.2% 증가했으니, 동결로 인한 실질 등록금은 30% 가까이 감소한 셈이다. 2024학년도 학생 한 명의 평균 등록금은 연간 682만원이다. 월 단위로 환산하면 57만원으로, 2023년 서울 학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62만8000원보다 낮다. 같은 해 전국 유아 영어 학원의 월평균 교습비는 110만원으로 대학 등록금의 2배다.
영어유치원비, 대학 등록금 2배
반면 정부 재정 지원은 대학의 필요에 턱없이 못 미친다. 전체 교육 예산 대비 실질 고등교육 예산(국가장학금 제외) 비율은 2011년 10.8%에서 오히려 2020년 9.6%로 감소했다.
해외와 비교해도 학생 1인당 국내 고등교육비 지출액은 1만2000달러로, OECD 평균 1만8000달러보다 낮다(OECD 교육지표 2023). 일본은 정부자금 4조5000억엔에, 민간자금 5조5000억엔의 대학펀드(100조원)를 조성해 신진 연구 인력을 양성하고 시설을 확충하고 있다.
우리 대학의 연구·교육 기능은 ‘싼 게 비지떡’인 수준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특히 사립대의 경우 지난 10년간 연구비는 18% 줄고(2011년 5401억원 → 2022년 4429억원), 실험 실습비는 26% 감소했다(2011년 2163억원 → 2022년 1598억원, 국회 입법조사처). 대기업 사원보다 못한 연봉을 받는 교수가 적잖은 가운데, 고정비 비중은 급증했다. 첨단 학과를 신설해도 교수 지원자가 없어 매 학기 공고를 반복한다. 도서관의 전자저널은 구독 중지되고, 철 지난 컴퓨터는 제대로 구동되지 않는다. 시대를 앞서가는 커리큘럼은 낙후된 강의실 환경으로 목차만 그럴듯하고, 토론 중심의 소규모 강의는 날로 줄어든다.
대학의 국제 경쟁력 약화는 당연한 결과다. 매년 발표되는 QS, THE, 라이덴과 같은 세계대학평가에서 우리 대학 순위는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사활을 걸고 있는 AI, 반도체, 이차전지 관련 학문 분야에서 국내 최상위 대학들 순위가 중국뿐 아니라 인도나 말레이시아 대학보다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QS 2024 세계대학평가 전공별 순위).
대학의 교육과 연구는 별개라고 흔히들 오해되는데, 결코 이 두 기능은 분리될 수 없다. 치열한 연구를 거친 정제된 지식에서 나오는 교육만이 고등교육의 정수다.
교육혁명으로 불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낡은 기자재로는 지속 가능한 연구와 살아 있는 교육을 기대할 수 없다. 분필 하나로 3시간 강의를 때우는 시대는 586세대의 대학 풍경이다.
일괄적인 대학 무상교육은 전 국민 1회성 지원금 살포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부작용을 남긴다. 우수한 인력은 더 좋은 연구가 가능한 해외로 빠져나가고, 싸구려 교육과 하등 연구에 매몰된 껍데기 대학은 국가 경쟁력 추락의 선봉장이 될 것이다.
오늘의 대한민국 대학은 말라가는 재정으로 최소한의 생존에만 머물러 있는 절박한 현실이다. 허울 좋은 무상교육이 아니라 현실적인 등록금과 국가 위상에 맞는 GDP 1% 이상의 고등교육 재정이 필요할 때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0호 (2024.05.22~2024.05.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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