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 '2500→4500원' 그때부터 10년 싸웠다, 필립모리스 왜
10년 전 국내 애연가들을 술렁이게 한 사건이 있었다. 2015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당시 한 갑에 2500원이던 담배(연초) 가격을 4500원으로 단박에 올린 일이다. 이 가격 인상의 여파로 10년째 법정다툼을 하고 있는 회사가 있다. 지난 23일 대법원에서 파기환송한 사건의 당사자인 필립모리스다.
필립모리스는 스위스에 본부를 둔 담배회사로, 말보로·팔리아멘트 등 담배를 제조판매한 곳이다. 현재는 전자담배 기계인 아이코스와 전용 제품인 히츠를 제조‧판매하는 회사이기도 하다.
나라가 규제하는 담배… 2014년 가격 올리며 세금도↑
담배는 기호식품이기도 하지만 국민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점을 감안해 국가에서 법으로 정해 여러 측면을 규제한다. 성분표시, 공익사업 참여 등 의무도 있고, 담배 판매가격도 정부에 신고해야한다. 여러 가지 법으로 정해둔 세금도 많이 붙는다. 2024년 현재 담배 한 갑 가격 4500원에는 담배소비세 1007원, 지방교육세 443원, 개별소비세 594원 및 부가가치세 450원이 포함돼있다. 국민건강증진부담금 841원, 폐기물부담금 24.4원, 연초안정화기금 5원도 있다.
10년 전 담배 가격을 올릴 때, 인상분 2000원 중 약 1500원이 세금 인상분이었다. 담배소비세는 1갑 당 641원에서 1007원으로, 지방교육세는 320.5원에서 442.97원으로, 원래 없던 개별소비세는 1갑당 594원이 새로 생겼다. 똑같이 담배 한 갑을 팔 경우 2014년에는 961.5원의 세금을 냈다면 2015년에는 약 2044원을 내야 하는 셈이었다. 자원재활용법에 따라 한국환경공단이 부과하는 폐기물 부담금은1갑당 7원→24.4원,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보건복지부가 부과하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도 1갑당 354원→841원으로 올랐다. 담배사업법 시행규칙 17조를 신설해 ‘연초생산안정화재단에 1갑당 5원의 출연금을 납부할 의무’도 이 때 새로 생겼다.
급격한 가격인상에 정부는 매점매석을 우려한 대책도 세웠다. 담뱃값 2500원 기준 세율로 세금을 낸 재고를 미리 쌓아뒀다가, 담배 가격이 4500원으로 오른 뒤 재고를 판매해 폭리를 얻으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담배 매점매석행위에 관한 고시'를 2014년 9월 12일 만들어 시행했고, 담배 반출량을 기존 반출량의 104%로 제한해 재고가 쌓이는 걸 막으려고 했다.
담배 세금 언제 매기나… 공장 나갈 때 vs 도매상에 팔았을 때
필립모리스는 1989년 국내 설립 초기엔 담배를 수입해 판매해오다가, 2002년 담배제조업 허가를 받은 뒤 경남 양산에 제조공장을 세우고 국내에서 담배를 제조‧판매해왔다. 예전에 담배를 수입해서 판매할 땐, ‘담배 수입→창고·물류센터→주문 접수시 재포장→도매상으로 출고’의 순서로 담배가 시장에 유통됐고, 국내에서 제조하게 된 이후에는 ‘담배 공장→창고·물류센터→주문 접수시 재포장→도매상으로 출고’ 순으로 담배가 이동했다.
이 과정 중 담배 판매에 따른 세금 부과는, 대부분 ‘도매상으로 출고’ 시점을 기준으로 해왔다. 행정안전부도 2015년 ‘담배 공급 편의를 위해 지속해온 일반적 관행' 이라며 인정한 통상적인 과정이었다. 공장에서 창고로 담배를 옮겨둔 뒤엔 ‘미납세 재고’로 내부 전산에 입력하고, 도매상에 판매될 때 ‘납세재고’로 변경한 뒤 출고 후 담배소비세를 신고‧납부하는 식이었다.
1억 620만갑 세금 줄이려 시도… 감사원 조사로 적발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필립모리스는 매점매석 금지 고시가 시행되기 전부터 재고를 급격히 늘리고, 세금 신고를 빠르게 처리하는 방식으로 1억 620만 4574갑에 대한 세금을 줄이려고 했다.
필립모리스는 담배 가격 인상이 예고된 뒤 제조공장과 불과 15㎞ 떨어진 곳에 임시 창고를 추가로 확보해 양산공장에서 생산한 담배 총 1억 463갑을 옮겨놓고, 창고로 옮긴 시점에 세금 신고 및 납부도 마쳤다. 기존 물류센터에서 보관하고 있던 담배 1억 9113만 3000갑도 2014년에 세금 납부를 마쳤다. 결과적으로 필립모리스가 2014년 양산제조공장에서 반출한 담배는 총 9억 7089만 9593갑이었는데, 이 중 2014년에 신고하고 세금만 미리 낸 뒤 사실은 2015년에 판매한 담배가 1억 620만 4574갑이었다.
9억갑 이상을 2014년에 판매한 줄 알고 세금을 부과했던 관계기관들은, 2016년 감사원 통보로 이 사실을 알고 “1억 620만 4574갑 만큼의 부담금을 더 내라”고 통지했다. 한국환경공단은 약 17억원, 복지부는 약 517억원, 연초생산안정화재단은 약 5억원을 납부하라고 했지만 필립모리스는 2017년 이를 취소해달라며 행정심판을 청구했고, 모두 기각되자 2018년 법원에 취소소송을 냈다.
1,2심에선 ‘공장에서 출고한 시점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것이 맞다’고 법 해석을 주장한 필립모리스 측이 이겼지만, 대법원은 “통상 하던 거래 형태에서 벗어나, 차액을 얻기 위해 담뱃세 인상 전 임시의 장소로 담배를 옮긴 것에 불과하다”며 실제 도매상 판매를 위해 재포장을 할 수 있는 물류센터로 옮긴 시점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겨야 한다고 원심의 판단을 뒤집었다. 다만 필립모리스에 유리한 판단도 담았다. 폐기물부담금을 부과하는 근거규정인 자원재활용법 시행령 2015년 2월에서야 개정됐는데, 법 개정도 전인 1월 1일 판매분까지 소급해서 적용한 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으로 돌아가 다시 판단을 받게 될 예정이지만, 필립모리스는 “지금은 이미 부담금을 모두 납부했다”고 밝혔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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