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은 원래 안 되는 것"이라는 교수, 그의 해법은
[안지훈 기자]
우리 사회에는 실로 다양한 갈등들이 있다. 보편적인 갈등도 있지만, 한국만의 독특한 갈등도 있고, 보편적 갈등이 한국이 처한 상황과 결합해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갈등도 있다. 이념 갈등이나 지역 갈등처럼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갈등도 있는가 하면, 젠더 갈등이나 세대 갈등 같이 최근 들어 유독 심화되어 사회적 논쟁거리가 된 갈등도 있다.
경우에 따라 갈등이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갈등이 나쁜 건 아니다. 다양한 목소리가 억압되어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것보단 갈등이 곳곳에서 표출되는 게 더 낫다. 이런 측면에서, 갈등 표출은 오히려 선진화를 방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다. 웬만한 사람들은 답을 다 알고 있다. '토론'이다. 말은 쉽다. 답도 알고 있고, 토론도 꽤 하는 것 같은데, 해결이 잘 안 된다. 제대로 된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국립생태원장을 지낸 동물행동학자이자 활발한 저술과 방송으로 대중에게도 익히 알려져있는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의 문제 제기다.
▲ 최재천, <숙론>, 김영사, 2024. |
ⓒ 김영사 |
소통은 협력이 아니라 밀당의 과정이다
나의 교육자 인생은 거의 반세기에 이른다. 그 반세기 동안 나는 교단과 사회에서 줄기차게 숙론 모둠을 이끌었다. 웬 뜬금없는 건방인가 싶겠지만 나는 이런 책을 쓸 자격을 갖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자부한다. (22쪽)
필자는 최 교수의 단면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유학 시절부터 숙론을 바탕으로 한 수업 방식을 체득했고, 교단에 선 후부터 숙론을 수업 방식으로 고수했다. 시민사회단체와 정부 위원회에 줄곧 참여하며 숙론 문화를 정착시키고자 노력했고,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렇게 숙론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하던 중 그는 생물학자의 자아를 이용해 "소통은 원래 안 되는 게 정상"이라고 단언한다.
평생 동물들의 대화를 엿듣느라 귀 기울인 연구자로서 나는 우리 사회의 소통 부재에 관해서도 나름 깊이 숙고해왔다. 오랜 숙고 끝에 얻은 결론은 싱겁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소통은 원래 안 되는 게 정상'이라는 게 내가 얻은 결론이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소통이란 조금만 노력하면 잘되리라 착각하며 산다. (…) 소통은 협력이 아니라 밀당의 과정이다. 그렇다면 소통은 당연히 일방적 전달이나 지시가 아니라 지난한 숙론과 타협의 과정을 거쳐 얻어지는 결과물이다. (64~65쪽)
독자로 하여금 맥빠지라고 한 이야기가 아니다. 인식의 전환을 촉구함과 동시에 소통은 원래 어려우니 잘 안 되더라도 좌절하지 말라고 격려하는 말이다. 생물학자답게 소통이 어려운 이유를 설명한 그는, 그럼에도 소통을 해야하는 이유를 생물학자답게 설명한다, 곤충과 현화식물(꽃을 피우는 식물)의 사례를 들면서.
자연계에서 가장 무거운 생물 집단은 고래나 코끼리도 아닌 현화식물이고, 또 자연계에서 수적으로 가장 성공한 집단은 곤충이다. 이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움직을 수 없는 식물은 꿀을 제공하며 곤충을 '날아다니는 음경'으로 고용한 덕분, 즉 공생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최 교수는 "자연이란 손잡은 생물이 미처 손잡지 못한 것들을 물리치고 사는 곳"이라고 소통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어떻게 숙론할 것인가
저명한 사회심리학자인 고든 올포트(Gordon Willard Allport)는 평생에 걸쳐 '편견'을 연구해왔다. 올포트는 사람들 간 접촉의 부족이 편견과 혐오, 차별을 불러온다고 설명했다. 접촉은 서로를 알게 하고, 서로를 알아야만 사회적 움직임이 가능하다. 최 교수가 그토록 강조하는 '숙론'은 이 모든 과정의 한가운데 있을 것이다. 숙론의 회복이 곧 접촉의 회복이며, 사회적 움직임의 단초다.
그는 교육 현장에 주목한다. 교육 단계에서부터 숙론이 체화되지 않으니, 숙론이 익숙치 않은 사람들이 모인 사회 현장에서 숙론이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는 것.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봐도 맞는 말이다.
필자는 비교적 최근 대학 학부 과정을 수료했는데, 이때까지 교육을 받는 동안 숙론을 얼마나 경험했는지 생각해보면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도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전공하며 다른 학문에 비해 의제를 놓고 이야기하는 빈도가 많았을텐데 말이다. 그러니 웬만한 사람들은 훨씬 숙론 경험이 적지 않을까 싶다. 더군다나 숙론을 체계적으로 배워본 적도 없다. 생각해보시라, 학창 시절 토론의 형식이나 토론하는 방법 같은 걸 배운 적이 있는지.
교육 현장에서부터 숙론을 체화토록 하겠다는 저자의 해법은 꽤 진지하다. 해법은 크게 두 가지 트랙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숙론을 잘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 또 다른 하나는 숙론을 잘 이끄는 기술에 대한 교육이다.
말 잘 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은 아니다. 말 기술이 뛰어나 어떤 질문에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고, 화려한 표현으로 별 내용 없는 말을 포장하고, 공격적인 질문으로 상대를 당황하게 하는 건 누군가 보기엔 좋을 수 있지만, 숙론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런 식으로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고, 따라서 간극을 좁히며 합의에 도달할 수도 없다.
집단 창의성은 다양성에서 나온다. 하나의 잣대로 모든 걸 재는 상황에서는 다양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잣대가 다양해야 창의성이 돋아난다. 나는 교수로 살아온 대부분의 기간 동안 학생들이 시험을 보게 하지 않고 성적을 냈다. 한 학기에 그저 한두 차례의 시험으로 성적을 내는 것보다 학생들의 여러 다양한 활동을 다면평가 하는 일은 시간과 노력이 훨씬 많이 요구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 자연생태계의 생물다양성을 보존하고 증진해야 하듯이 어떻게 하면 우리 교육계의 학습 다양성을 높일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73~74쪽)
창의성과 다양성을 앞세운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을 촉구하고, 여기에 경험담을 더해 충분히 가능한 일임을 역설한다. 또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숙론을 잘 이끄는 방법도 설파한다. 이 역시 진행자의 말 기술보다는 태도의 문제다. 균형 감각을 유지하고, 목소리가 작은 이들의 발언권을 충분히 확보해주며, 자신을 낮춰 숙론 참여자의 적극적인 주장을 가능케 하는 태도.
나의 이런 근거 없는 예측은 지극히 단순한 관찰에 기인한다. 대한민국은 이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다다랐다. (…) 그 변화의 한복판에 우리 모두 새롭게 습득할 숙론의 힘이 있을 것이다. 조만간 대한민국은 어린이집에서 국회까지 언쟁이나 논쟁을 멈추고 기껏해야 상대를 제압하려는 토론 수준을 넘어 깊이 생각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대화하는 숙론의 꽃이 만개할 것이다. (209쪽)
그래,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그가 말한 이상을 비관했지만, 그래도 동의하긴 했으니까. 한국 사회에 숙론을 정착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그가 확신했으니까. 필자도 한번 낙관해보기로 했다. 여러분도 동참하시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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