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 박사 "암 수술 후 180도 달라진 인생…기적 같은 일" [만보정담]

이이슬 2024. 5. 2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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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의사 인터뷰
2008년 암 수술 후 180도 달라진 삶
나와 타인 이해하는 ‘마음공부’
“개인이 행복해야 사회도 건강,
내 마음과 나를 이해해야 단단해져”

오은영 박사(58) 명함에는 ‘오은영’ 이름 석 자가 궁서체로 새겨져 있다. 유명인들도 이 명함을 받지 못해 안달이다. 이름만으로 든든해 명함이 부적처럼 여겨지는 까닭이다. 33년 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그는 2005년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시작으로 ‘금쪽상담소’ ‘금쪽같은 내 새끼’,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 등 여러 방송에 출연하며 ‘국민 주치의’로 활약 중이다. 다음 달 1일부터는 토크콘서트 2024 오은영의 더할나위없이 ‘날마다 당당당’ 공연을 열고 관객과 만난다.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겸 육아멘토 오은영 박사가 서울 강남구의 한 건물 옥상 정원을 거닐며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서울 강남구 소재 유튜브 스튜디오에서 아시아경제와 만난 오 박사는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쓰는 숨 돌릴 틈 없는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옥상 잔디 위에서 좀 걷자고 했다. 오 박사는 아무리 바빠도 틈틈이 걷는다. 밝고 쾌활한 에너지를 내뿜으며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원동력은 ‘자연’에서 얻는다. 오 박사는 햇볕 받으며 걸을 때 행복하다고 했다.

-평소에도 많이 걷나.

▲자연을 느끼며 걷는 걸 좋아한다. 때론 재래시장을 찾아 사람들을 본다. 계절 변화에 따라 사람들의 옷차림과 표정이 달라진다.

-걷기가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나.

▲굉장히 좋다. 인간은 지구에서 중력을 딛고 살아간다. 신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느끼며 모든 부위를 적절하게 움직이는 건 삶의 기본이다. 몸을 움직일 때 뇌에서 신경 전달 물질 ‘세로토닌’이 나와 행복을 느낀다. 대표적인 활동으로 ‘걷기’와 ‘햇볕보기’가 있다. 햇빛을 보며 걸으면 ‘일석이조’다.

-건강을 위해 지키는 루틴이 있나.

▲걷기 외 건강을 위해 매일 지키는 루틴은 숙면과 스트레칭이다. 또 책보기, 글쓰기, 영화감상도 즐겨 한다. 자연과 교감하면서 내가 우주의 일부라는 걸 느낀다. 평정심이 필요할 때는 잠깐 숨을 멈춰본다. 다시 숨을 쉴 때 ‘살아있다’고 느낀다. 산소가 고맙다. ‘더 잘 살아야겠다’ ‘힘들어도 견디면서 살자’고 마음먹는다. 내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가치 있는지 느낀다.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겸 육아멘토 오은영 박사가 서울 강남구의 한 건물 옥상 정원을 거닐며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대장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으셨던데.

▲2008년에 생애 첫 건강검진을 받았다. 후배 의사가 복부 초음파 도중 “담낭에 말리그넌트(악성종양)가 의심된다”고 했다. 확인해보니 악성 종양 같았다. 초음파는 확진율이 높아 걱정됐다. 기다리던 남편은 결과를 듣고 벌벌 떨며 울었다. 그 모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두렵지는 않으셨나. 어떻게 극복했나.

▲신기하게 차분해졌다. 수술 전까지 중요한 서류를 확인하고, 남편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선배님이자 스승님인 윤동섭 현(現) 연세대학교 총장님이 주치의 선생님이셨는데, 입원하니 대장 진료를 보는 세브란스 이강영 교수랑 같이 오셨더라. ‘대장에서도 악성 종양이 발견됐다’고 했다. 얼마나 살 수 있는지 물으니 ‘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이라고 했다.

당시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수술방에 들어가는데 눈물이 났다. 부모가 자녀에게 사랑을 주고 어려울 때 의논해주며 옆에 있어 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 어쩌나. 아이 이름을 목놓아 부르며 ‘엄마가 사랑한다’고 외쳤다. ‘한 번 더 쓰다듬어줄걸’ ‘사랑한다고 더 말할걸’ 싶어 한없이 미안했다. 회복실에서 눈을 뜨니 윤 총장님이 계셨다. 담낭 종양은 악성이 아닌 폴립(용종)이라서 절제했고, 대장에서는 악성 종양이 확인됐다고. 수술이 잘 됐다고 했다.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더 잘해야겠다,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자고 마음먹었다. 윤 총장님께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연세대 홍보대사이자 발전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삶에 변화가 있었나.

▲인생이 달라졌다. 퇴원 후 일주일 만에 진료를 시작했는데, 당시 복잡한 심경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세상은 여전했다. ‘잘 살았는데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나’ 싶어 속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수술받았는지 모르는 환자분들이 농사지은 꿀을 주시고, 복분자, 배즙, 미역을 갖고 오셨다. 직접 만든 깻잎, 장조림을 싸 오시기도 했다. 자폐증으로 치료하던 민재의 보호자는 저를 안아주시며 ‘원장님께서 건강하셔야 한다’고 위로해주셨다. 마음이 뭉클했다. 인간은 서로 돕고 위로하고 어깨를 내어주며 사는 존재라는 걸 다시 느꼈다. 힘들 때 손잡아주고 옆에 있는 것만으로 도움이 된다. 삶이 찢어진 헝겊처럼 너덜너덜할지라도 소중한 사람들과 서로 보듬으며 가보자.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겸 육아멘토 오은영 박사를 서울 강남구에 있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20년 가까이 미디어를 통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진단해오셨다.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잊지 말아야 한다. 행복을 위해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을 편안하게 넘게 하는 게 중요하다. 의사는 생계유지 수단으로 생각하면 할 수 없다. 일이 귀찮거나 하기 싫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환자가 호전될 때 뿌듯하다. 혹자들은 ‘솔루션’이라고 하지만, 정확히는 ‘인간에 대한 이해’다. 부부, 부모 자식 등 가까운 사이 소통 문제도 ‘문화’에 포함된다. 문화를 바꾸는 일에는 저항이 따른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당시 훈육 선생님이었다. 오래된 우리 문화 중 ‘사랑의 매’가 있었다. 아이를 때릴 때 부모는 분노하고, 아이는 맞을 때 두렵다. 때리는 게 교육이라고 자신하지 말라고 말씀드렸고, 그 인식을 바꾸는 데 11년 넘게 걸렸다. 부모는 아이 인생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사람이다.

-‘번아웃’ 등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다.

▲인간은 평생 발달하는 존재다. 완성된 상태로 태어나지 않는다. 기능을 갖춰가는 과정이 ‘발달’이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많은 영역이 발달한다. 신체가 커지면서 근육이 발달하고, 판단하고 이해하고 상식을 쌓는 인지 영역도 발달한다. 정서적 발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음은 저절로 드러나지 않으며, 상황에 마음이 따라온다. 행동은 눈에 보이지만 감정은 드러나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은 생각을 잘 표현한다지만, 그 이면에 ‘감정’이 중요하다. 내 마음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 마음을 공부해야 행동이 이해된다. 가령 ‘내가 난폭한 사람이 아니라 무서워서 그런 거구나’ 느끼는 거다.

-마음공부란 무엇인가.

▲나와 인간을 아는 것이다. 마음은 언어로 표현하는 게 좋다. 나와 타인의 마음을 알게 되면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너그러워지고, 이를 통해 사회적 관계도 잘 맺게 된다. 가령 내 마음은 섭섭한데, 이를 모르고 괜히 화를 버럭 낸다던가 폭식을 한다던가 술을 마시거나 필요 없는 물건을 산다던가 짜증이 나는 거다. 인간을 이해해야 갈등이 줄어들고 상처도 잘 극복할 수 있다.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겸 육아멘토 오은영 박사가 서울 강남구의 한 건물 옥상 정원을 거닐며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세대 갈등이 사회 문제로 지적되는데.

▲노년층 부모세대가 태어났을 때 우리는 후진국이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열심히 사셨고, GDP(국내총생산) 14위에 오를 만큼 잘 사는 나라가 됐다. 좁은 땅에 인구가 부족하고, 자원도 많지 않은 나라에서 안 먹고 열심히 공부시켜 이만큼 살게 됐다. 2040세대는 출발이 다르다.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세대 간 간극이 벌어진다. 젊은세대는 내가 소중하다. 그래서 열심히 잘 살려고 노력한다. 나밖에 모르는 게 아니다. 윗세대는 대학만 나와도 취업이 됐지만, 젊은 세대는 다르다. 실패하면 기회가 두 번 주어지지 않아 완벽주의를 추구하고 포부 수준이 높다. 놀 때도 잘 놀았다는 소릴 들어야 한다. 패배하면 안 된다는 압박감을 안고 사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 하루하루 ‘행복한 순간도 있다’고 느껴야 삶의 만족감이 올라간다. 개인이 행복해야 사회도 행복하다.

-젊은세대는 여러 이유로 연애, 결혼을 기피하기도 한다.

▲여유가 없고, 좋은 부모가 될 자신이 없다고 한다. ‘아이가 나처럼 행복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한다. 어릴 때 좋은 학교에 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 한다고 배웠다. 부모와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성적 때문에 혼나며 자랐다. 직장에 입사하면 ‘이제부터 놀아야 한다’고들 한다. 여유를 갖고 나를 돌보겠다는 뜻인데, 어른들은 세상 물정 모른다고 치부한다. 우리나라는 인구 절벽 상태다. 혼인 외 출산율이 우리나라는 2%밖에 안 된다. 결혼해야 아이를 낳는다는 뜻이다. 유럽은 30%가 넘고 영국, 미국은 20% 후반에서 30% 사이다. 이러한 요인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걸 사회가 이해하는 게 먼저다.

-자존감이 낮아 고민인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하며 상대적으로 자신감과 자존감이 떨어지고 위축되기도 한다. 역설적이지만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면서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끊임없이 나를 비교하면서 나를 잃어간다. 내 마음과 나를 아는 게 중요하다. 나무는 뿌리가 단단하면 돌이 날아오고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나를 가치 있게 생각하면 어떤 상처나 스트레스를 받아도 단단하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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