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은 격노 "안 했다"고 한 적이 없다

안홍기 2024. 5. 23.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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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 격노설 전면 부인 못하는 대통령실, 의혹은 자란다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안홍기 기자]

▲ 취임 2주년 기자회견, 질문받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채 상병이) 순직한 사고 소식을 듣고 저도 국방 장관에게 이렇게 좀 질책을 했습니다. 저도 그 현장에 며칠 전에 다녀왔지만, 어떤 생존자를 구조하는 상황이 아니라 돌아가신 분의 그 시신을 수습하는 그런 일인데, 왜 이렇게 무리하게 진행을 해서 이런 인명사고가 나게 하느냐… (중략)… 좀 질책성 당부를 한 바 있습니다."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님께서 국방부 수사 결과에 대해서 질책을 했다는 의혹도 있다'는 질문이 나오자 윤석열 대통령은 위와 같이 답했다. 소위 '대통령 격노설'이 사실이냐고 묻자 '왜 무리하게 작전을 진행해 인명사고가 나게 하느냐고 국방부 장관을 질책했다'고 답한 것이다. 정확한 답변이 아니다.

'대통령 격노설'은 해병대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대령으로부터 나왔다. 사단장의 책임까지 포함한 순직 사건 조사 내용을 언론에 발표하고 경찰로 이첩하려고 국방부 장관의 결재까지 받았는데, 갑자기 브리핑이 취소됐다.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혐의 사실을 빼라고 하는 등 외압도 있었는데 이 배경에 바로 '대통령의 격노'가 있었다는 것이다.
  
▲ 공수처 출석하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과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 관련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21일 오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 출석하고 있다.(왼쪽) 같은 날 오후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이정민
박 대령은 이를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으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김 사령관은 그런 말을 안 했다고 했다. 하지만 외압 사건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해병대 간부로부터 김 사령관이 '대통령 격노설'을 말하는 걸 들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걸로 알려졌다. 이 해병대 간부는 지난해 8월 1일 회의를 전후해 이같은 말을 들었다고 한다.

하루 전인 7월 31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이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했고, 같은 날 박 대령은 김 사령관으로부터 '대통령 격노설'을 들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2023년 7월 30일과 31일 실장, 수석비서관들과 회의를 했으므로 대통령의 격노가 나왔다면 이 회의 중 하나일 거라는 추측이 나왔다.

안 했으면 안 했다 하면 되는데 동문서답만

'대통령 격노설'의 사실 여부는 아홉 달 전에 이미 물어본 적이 있다(관련기사: 'VIP 수사외압 의혹' 전면 부인 못한 대통령실 https://omn.kr/25epf). 지난해 8월 29일 대통령실 관계자를 만난 기자는 '채 상병 순직 사건에 대한 해병대 수사단의 언론 브리핑이 갑자기 취소된 배경에 7월 31일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대통령이 어떤 입장을 밝혔기 때문 아니냐는 주장과 보도가 있는데 이에 대한 사실 확인을 부탁드린다'고 물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난주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답변드렸고, 그 답변에서 달라진 입장이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 '지난주'에 답한 것도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지난주의 문답'이 이뤄진 2023년 8월 24일에는 국가안보실이 수사 외압 주체로 거론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이 관계자는 "해병대 사건 관련해서 안타까운 것이, 어떻게든 이 사건에 안보실을 끌어들이려는 의도가 보인다"라면서 안보실 개입설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이 문제는 국방부에서 이미 잘 설명하고 있고 충분히 해명이 됐다고 생각한다"며 "어떤 질문에는 팩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공격이 더 중요하다는 의도가 보이는데 그래서야 되겠느냐"고 야당을 겨냥했다.

'런 종섭'에 '헌법 수호 거부권'으로 커지기만 한 의혹

하지만 이후 대통령실의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도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전화 통화를 한 것으로 밝혀져 해명해야 할 의혹은 더 커지기만 했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대통령 격노설'을 명백하게 '안 했다'고 부인한 일이 없다. 질문이 나올 때마다 은근슬쩍 다른 이야기로 돌려버렸다.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에 결재까지 하고서는 갑자기 이첩 보류를 지시한 국방부 장관을 주 호주대사로 보냈다가 국민의 의혹을 더 키워버렸다.

윤 대통령은 지난 21일 채 상병 특검법안을 공포하지 않고 국회로 돌려보내 재의결을 요구했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법안에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대통령이 헌법을 수호해야 하기 때문에 재의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관련기사: '헌법 지키려고 거부권 행사한다'는 대통령실 https://omn.kr/28r6l). 이 역시 변죽만 울려댈 뿐 '대통령은 격노하지 않았다'는 말은 없다.
  
 2023년 7월 19일 오전 경북 예천군 호명면서 수색하던 해병장병 1명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가운데 해병대 전우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구조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해병대 채 상병이 순직한 지 열 달이 넘었는데, 관련해서 정부가 한 일은 경찰로 넘어갔던 사건 조사 내용을 회수하고, 수사단장을 항명으로 재판받게 하고, 국방부 장관을 해외로 보냈다가 불러들이고, 특검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뿐이다. 이런 일들이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라"는 윤 대통령의 지시(2023년 7월 20일)와는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

대통령이 격노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안 했다"라고 떳떳하게 밝혀야 한다. 그렇게 못하고 계속 말 돌리기로 대처한다면 의혹은 더 커질 뿐이다. 임기 마지막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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