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다양성 속 일치’를 향한 연합 시도 필요하다

박용미 2024. 5. 2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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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현 교수(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칼 야스퍼스는 그의 책 ‘역사의 기원과 목표(Vom Ursprung und Ziel der Geschichte)’에서 고대 종교가 뿌리내린 기원전 8세기에서 2세기를 이후 인류 문명의 토대를 놓은 차축 시대라고 불렀다. 불교 유교 도교와 같은 아시아의 주요 종교가 이미 그 시대에 자리매김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같은 이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는 그리스의 철학도 이 시기에 태동했다. 이처럼 야스퍼스가 설명하는 바와 같이 아시아의 주요 고대 종교와 사상은 예수 그리스도 탄생 이전 자생적으로 태동하고 발전됐다.

이러한 종교 사상적 문화적 토대 위에 아시아에서는 4세기 이후 기독교가 점차 유입되고 확산했다. 313년 콘스탄틴 대제의 기독교 공인과 325년 니케아 공의회의 결의에 의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예수의 신성 측면을 강조한 니케아 신조가 마련됐다. 379년 테오도시우스 황제 1세의 기독교 국교화 이후 기독교에 대한 긴 박해의 시대가 끝나고 기독교는 제국의 종교로 자리매김했다. 이 과정에서 정통과 이단의 이분법적 구도가 기독교의 담론에서 정착됐다.

아시아의 고등종교들은 기독교의 주류 담론을 이끌었던 니케아 신조와 같은 요약된 신앙고백 신조의 내용을 갖고 있지 않았고 경전이 활발히 대중에게 전해지지 않았던 반면에 기독교의 발전 과정과 양상은 완전히 달랐다. 기독교의 주류와 비주류 논쟁에서 중심부에 있지 못했던 기독교의 비주류는 이단으로 정죄됐는데 이들이 주로 아시아로 이동했다. 이후 기독교 1700년의 역사는 기독교가 국교의 자리에서 군림한 제국 종교의 역사이고 주로 여성적 아시아적인 경향은 이단으로 치부됐다. 나와 생각을 달리하는 이들을 정죄하는 역사는 끊임없이 기독교의 역사 안에서 되풀이되고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025년은 기독교 전통에서 기념비적인 행사들이 연이어 있다. 그 하나는 325년 5월 20일 니케아 공의회의 신조가 공표된 지 1700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스위스 종교개혁에서 파생된 스위스 재세례파가 1525년 1월 그들의 신앙고백에 따라 첫 세례를 시작한 지 500주년을 기리는 것이다.

스위스의 재세례파는 네덜란드의 메노 시몬스에 의하여 메노나이트로 발전됐다. 물론 스위스 츠빙글리의 종교개혁 당시에 이들에 대한 처형과 박해는 종교적인 이유였기보다는 당시 스위스 취리히주 정부 법에 대한 위반과 관련돼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위스 개혁교회 연맹은 1980년대 이후 참회의 시도를 이어가며 재세례파 지도자들이 수장된 취리히 리맛 강가에 기념비를 세워 이를 가시화한 바 있다. 그리고 세계 개혁교회 성례 공동체 연맹과 세계 메노파 연맹은 참회와 화해의 시도를 이어가면서 내년 5월에 있을 공동의 선언문과 예배를 함께 준비하고 있다.

한국 개신교의 역사에서도 신조는 정통과 이단을 구분하는 척도로 사용됐고 조금이라도 생각의 다름을 표현하는 사람들에 대한 정죄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어느덧 신앙의 고백 문서는 화석화되어 가면서 생생한 신앙의 증언이라기보다 상대방을 정죄하는 기제로 작동하며 종이 교황으로 군림하게 됐다. 4세기 니케아의 신앙고백이 오늘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진정성 있게 되살아나려면 그 당시 신학적 맥락과 내용뿐 아니라 사회 정치 경제사적 고찰과 내용에 대한 이해를 정확히 시도하고 오늘 우리의 고백으로 되살려 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교리를 문자 그대로 중시하는 그룹에서는 사회 공공의 문제에는 관심 없고 진보적으로 사회참여 경향이 짙은 그룹에서는 니케아 신조를 비롯해 이후 생겨난 교리와 전통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것이 오늘날 우리 교계와 신학계의 현실이다. 신조는 무의식적으로 암기나 반복을 하는 것 정도로 쓰여서는 안 되며 마른 뼈와 같이 생기 없는 문자로 남아 있어서도 안 될 것이다.

니케아 신조를 초기 기독교의 연합 시도이며 공동의 유산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다양성을 억압했던 제국 종교의 시작이며 제국주의의 단일화를 강화하는 통치수단으로 볼 것인가. 니케아 신조가 여전히 오늘날 교단과 교파를 넘어서 교회 연합의 뿌리로 작용할 수 있을까가 관건이다.

성서 해석에 있어서 근본주의적 경향 속에서 문자의 자구에만 매달리거나 그와 반대로 과학적 역사적 시각으로만 특정 구절을 해석하려고 한다면 문제의 본질을 빗겨나가는 것이 되는 것처럼 신조의 해석도 유사할 것이다. 문자는 죽이고 영은 살린다. “이 새 언약은 문자로 된 것이 아니라, 영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지만,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고후 3:6) 죽은 문자가 아니라 영이 살리듯이 초대 기독인들의 신앙고백이 오늘 우리의 상황에서도 온전히 고백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제국의 종교로 자리매김한 기독교가 힘의 논리로 비주류 사람들의 소리를 정죄했던 것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알기 위한 믿음’을 향한 설렘과도 같은 신앙적 학문적 파토스와 사회적 공공의 책임 앞에서 에토스를 함께 회복해야 할 것이다.

니케아 신조로부터 비롯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은 로마제국 시대의 통치 수단의 작동방식과 같은 획일적인 신조의 강요와 반복이 아니라 역동적 생활신앙의 길잡이가 돼야 할 것이며 교회를 위한 학문으로써의 신학의 가치와 목소리도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목소리는 교단 내에서의 주류나 소수 권력자의 소리만이 모든 것을 가늠하는 잣대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터와 일터에서 회복하기 위한 ‘진리를 향한 열정과 관용’의 태도 위에서 다양하게 울려 퍼져야 할 것이다.

전 지구적 위기 속에서 기독교가 공공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 사역에 동참하기 위해 함께 힘을 모아야 할 것이며 본질에는 일치, 의견에는 자유, 매사에는 사랑의 힘이 작동하길 소망한다. 힘의 논리로 상대방을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 속의 일치를 향한 연합의 시도가 니케아 신조 1700년을 기념하고 재세례파가 세워진 지 500주년을 준비하는 이 시기에 새삼 그립다.

박용미 기자 m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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