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 승인 기류, 확산할까…“내년 7000명 수업, 정해진 미래”

이가람, 이후연 2024. 5. 23.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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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2000명 증원에 대한 대학별 배분 결과를 발표한 지난 3월 20일 오후 대구의 한 의과대학 강의실이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하는 의대생들의 동맹 휴학으로 텅 비어 있다. 뉴스1


의대 증원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이에 반대하며 휴학계를 낸 의대생들이 수업에 복귀하지 않으면서 집단 유급 처리를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 하고 있다. 지난 2월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계 제출에 교육부가 줄곧 ‘동맹휴학 불가’ 원칙을 고수하면서 의대생들은 석 달 째 무단 결석 상태에 놓여있다. 의대 학장들 사이에선 “유급을 시킬 바엔 휴학 승인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유급 시한 코앞…“유급보단 휴학”


19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강의실에 심장학 이론서가 쌓여 있다. 2025학년도 의과대학 정원 증원이 사실상 확정된 가운데 증원 정책에 반발해 수업을 거부중인 의대생들이 복귀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대학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일 차의과대학을 끝으로 전국 40개 의대가 2025학년도 모집정원을 확정하며 의대 증원을 위한 행정 절차는 9부 능선을 넘었다. 오는 30일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2025학년도 의과대학 모집 인원을 포함한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공식 발표하면 본격적인 입시 절차가 시작된다. 하지만 의대생들의 집단 유급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학교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대생도, 집단 휴학계는 받아줄 수 없다는 교육부도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어서다.

이미 유급 시한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교육부 등에 따르면 현재 40개 의대 중 37곳이 지난달 말, 이달 초에 개강했지만 학생들이 오지 않아 출석체크도 못한 채 온라인으로만 진행되고 있다. 학칙상 수업일수의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F학점을 줘야 하는데, 한 과목이라도 F학점을 받으면 유급 처리가 된다.

한 국립대 의과대학 학장은 “사태를 책임질 정부가 계속 벼랑 끝 전술을 쓰면서 대학들엔 ‘(의대생과) 1대 1 면담을 해라’ ‘적극적으로 설득해달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며 “학생 보호 의무가 있는 대학으로서는 무단 결석으로 인한 유급을 방치하기 보다 휴학계를 승인해주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7500명 수업 대비해야”…고개 드는 현실론

일부 의대 학장들은 휴학계를 승인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지난 20일 이은직 연세대 의과대학 학장은 “올바른 의학교육을 견지하기 위해 어느 시점에서는 휴학을 승인할 수밖에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입장을 밝혔다. 원광대, 고려대, 이화여대와 일부 국립대 의대 교수들도 “학생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휴학 승인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한 의대생들이 수업 거부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연세대 의대가 대학들 중 처음으로 학생들의 휴학 신청을 승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은직 의대 학장은 교수진에게 서신을 보내 이같은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연세대 측은 이것이 학교의 공식 결정은 아니라는 입장이라 학생들에 대한 휴학 승인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사진은 22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뉴스1


한 의대 관계자는 “애초에 휴학은 심의해서 승인해주는 개념이 아니다”라면서 “학생 본인이 가진 휴학 연한 내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는데 자꾸 교육부가 요건을 따지라니 답답할 노릇이다”고 말했다. 한 국립대 총장도 “유급을 당해 등록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퇴교 조치가 될 경우 의대생들의 소송이 줄이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내년의 ‘7500명 수업’을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학칙상 휴학이 불가능한 현재 예과 1학년 3000여명의 학생은 수업 거부를 이어갈 경우 진급을 못 한 채 증원에 따른 내년 신입생 4500여명과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한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관계자는 “공부를 제대로 못 한 학생들을 일단 진급부터 시킬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 사립대의 의과대학 교수는 “유급이냐 휴학이냐 어떤 결론이든 결국 학생들이 복귀하지 않는 이상 신입생과 기존 1학년 학생이 같이 수업을 들어야 하는 건 정해진 미래와 같다”면서 “현실적으로 내년에 벌어질 7500명 수업을 대비하고 2026학년도 증원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승인 가능성은 작아…“유급 데드라인 아무도 모른다”

다만 대학들이 당장 휴학 승인을 밀어붙일 가능성은 작다. 한 국립대의 의과대학 교수는 “가장 큰 문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데드라인이 언제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학사유연화까지 염두에 두면서 출석 일수 미달 등에 따른 ‘유급 한계선’이 여전히 미정이기 때문이다.

15일 개강한 대구의 한 의과대학 도서관이 텅 비어 있다. 중간고사가 한 주 앞으로 다가왔지만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의대생들의 휴학이 장기화하면서 학사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다. 2024.4.15/뉴스1


앞서 전국 40대 의과대학은 유급 방지책으로 ‘1학기 유급 미적용 특례’나 ‘학기제→학년제 전환’, ‘국시 연기’ 등의 대책을 요구했고,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최대한 제도를 유연하게 운용해서 모든 의대생이 수업에 돌아올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고 답했다. 일각에선 2학기가 시작되는 8~9월을 유급이나 휴학 승인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최종 시점으로 보기도 한다.

승인을 막으려는 교육부 압박도 거세다. 휴학 승인 입장을 밝힌 연세대에 대해서 교육부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연세대 관계자는 “보도가 나가자마자 교육부로부터 정당한 사유로 승인한 것인지 점검하겠다는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동맹휴학은 휴학 사유가 안 된다는 교육부의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다”면서 “근거 없는 휴학 승인에 대해선 대학에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이가람·이후연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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