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갈비뼈에서 태어난 남자... 삶이 더 괴로워졌다
[김성호 기자]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한 종교로 보아도 좋을 기독교 경전엔 유달리 독특한 설화가 여럿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여성의 탄생과 관련한 이야기다.
성경 창세기엔 첫 여자가 탄생하는 순간이 기록돼 있다. 신은 세상을 창조하기 시작해 여섯째 날이 되었을 때 비로소 인간을 만든다.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는 존재'로써,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남자와 여자를 창조한 것이다. 태생부터 모든 것을 지배하기로 예정된 존재, 인간에 대한 기독교의 이 같은 서술은 인간이 지난 수 세기 동안 온 우주를 개발하고 지배하는 근거가 됐다.
이 중 여자의 창조는 각별히 흥미롭다. 신이 먼저 인간을 빚었는데 그는 남자였다. 신은 다시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다며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짓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재료가 없으므로 아담이 잠든 동안 그의 갈빗대 하나를 분질러 그 자리를 살로 채우고 그것으로 여자를 만들었다. 남자의 갈빗대에서 태어난 여자가 신의 경고를 어기고 탐욕을 채웠다가 마침내 천국에서 함께 내쫓김을 당한 일화는 이보다도 유명한 이야기다.
▲ 갈비뼈 스틸컷 |
ⓒ JIFF |
말하자면 기독교 경전 속 여자는 남자와 동등하지 않다. 남자의 부속으로 태어났고, 남자를 돕기로 빚어졌으며,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남자까지 타락시켰던 것이다. 기독교가 영향력을 발하는 세계에서 오랜 시간동안 여자가 불완전한 존재, 비합리적인 존재, 탐욕 앞에 약한 존재, 그리하여 남성에게 종속돼야 하는 존재로 여겨져 온 데는 이 서술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으리라.
기독교보다 역사적 기원이 앞서는 수메르며 바빌로니아 일대 종교에서 모셔지는 여신 가운데 닌티(Ninti)가 있다. 어원은 여성을 높여 칭하는 Nin과 갈비뼈를 뜻하는 ti를 합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중 ti는 갈비뼈 말고도 생명이며 살리다라는 뜻을 갖는다. 물을 관장하는 신 엔키(Enki)가 다쳤을 때 이를 치유하려는 목적으로 낳아진 여신이니 이름을 '살리는 여자'라는 뜻으로 풀이하는 게 타당하다.
기독교의 경전과 어느 다신교 종교의 신성 사이에 불유쾌한 관련성이 있다는 사실을 주장할 생각은 물론 없다. 그저 어느 종교가 하나의 성이 다른 성의 종속물로부터 비롯됐다고 이해했던 배경에 특정 성별을 모욕하려는 의도가 아닌 오해가 자리할 수 있음을 보이려 했을 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갈빗대인가. 왜 남자는 갈빗대 하나를 떼어주고도 여자와 같은 수의 갈빗대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 갈비뼈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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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수많은 여성들이 스스로가 갈빗대로부터 비롯됐다는 신화에 불쾌한 감정을 가져온 듯하다. 여성이 쓴 적잖은 이야기가 창조, 또 갈빗대 설화를 직간접적으로 겨냥해온 것을 보면 말이다.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단편2' 섹션에 묶여 상영된 <갈비뼈> 또한 그로부터 착상을 얻은 듯 보인다.
주인공은 특별한 거처 없이 여러 명의 집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십대 소녀 이봄(권잎새 분)이다. 어느 날 그녀의 갈비뼈로부터 한 인간이 나온다. 남자의 형상을 한 그는 이봄의 세계와 곳곳에서 충돌한다. 공중화장실, 코인세탁방, 유흥가, 모텔 등을 오가며 그는 이봄의 세계를 더 고단하게 만든다. 이봄은 마침내 제가 속할 수 있었을 모든 곳에서 차츰 밀려난다. 그럴수록 그녀의 욕구는 강해져만 간다.
갈비뼈에서 태어난 사내가 온전히 이봄의 편에 서 있는 것일까. 거듭 일탈을 저지르는 사내의 행위는 이봄을 더 나아지게 하고 있을까. 철저히 고립되고 착취되는 듯 보이는 이봄은 사내의 탄생으로부터 심적 안정을 취할 수 있을까. 사내의 행위와 이봄의 의식 또는 무의식 간에는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영화는 이 중 어떤 질문에 대해서도 명확한 답을, 심지어 모호한 답도 충실히 내어놓지 않는다.
▲ 갈비뼈 스틸컷 |
ⓒ JIFF |
대신 영화는 기독교 경전인 <성경>을 현대적 배경 아래 투박하게 변주한 작품으로 읽을 수가 있겠다. 여자의 갈비뼈에서 남자가 태어나고, 그가 그녀의 세계를 더 괴롭게 만들며, 그의 등장 이후 욕구가 선명해진다는 것이 그렇다. 위태로웠던 인간의 지난 수십 세기 못잖게 이봄과 갈비뼈 남자의 세상도 갈수록 폭력적이 되어간다. 주변의 모든 것을 해치며 겨우 스스로의 생존만 도모할 뿐이다. 인류가 지구를 상대로 그러했듯이.
남성과 여성의 성별을 뒤집어 신화를 다시 쓰는 과정은 기대만큼 새롭지도 대단치도 않다. 여자의 갈비뼈가 남자보다 하나 많다고 믿던 시대에나 이와 같은 설정의 단순한 변주가 효용을 발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여자의 갈비뼈에서 남자가 낳아지고, 그 남자의 존재로부터 달라지는 여자의 모습을 거침없이 그려낸다. 그 과정으로부터 마주하게 되는 답답하고 불편한 감상을 우리 가운데 어느 성별을 갖고 태어난 이들은 지난 수천 년 동안 묵묵히 감내해야 했던 일이다.
인티머시 코디 참여 연출도 눈길
연출을 맡은 임하연은 지난해 한국영화아카데미 연출 전공으로 입학한 기대주다. <갈비뼈>는 그녀의 졸업작품으로, 지난해 9월 중 촬영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철학을 전공한 이답게 종교와 관련한 상징을 적절히 배합한 구성이 이에 관심이 있는 이의 구미를 당긴다. 아직 투박하고 모호한 구석이 눈에 띄지만 향후 이어갈 작품세계가 기대되는 신진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한편 영화는 촬영 중 성행위 묘사 등에 있어 선진적인 촬영절차를 도입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지원과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의 협조를 거쳐 니시야마 모모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참여한 것이다.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란 작품 내 성묘사 연출을 돕는 전문인으로, 촬영에 필요한 세부사항을 조율하고 배우의 심리며 동작까지를 다루어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돕는다.
▲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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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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