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로 모은 12억, 다 주고 떠났다
노점상과 지하철 청소 등으로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해 ‘행복한 유산 기부 성남시 1호’로 이름을 올린 홍계향 할머니가 지난 19일 세상을 떠났다. 90세.
1934년 부산에서 태어난 홍 할머니는 21살(1954년) 되던 해 결혼하면서 서울로 상경했다. 이후 김·미역 노점상과 폐지 줍기 등으로 생계를 이어오다 49살 때인 83년 성남시에 정착했다. 성남시는 홍 할머니의 제2의 고향이었다. 그는 지하철 청소와 공장 근로자 등으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2002년엔 성남시 중원구에 4층짜리 주택을 신축했다. 하지만 인생은 녹록하지 않았다. 2010년 질병으로 하나뿐인 딸을 잃었다. 치매를 앓던 남편도 2013년 12월 별세했다.
홍 할머니가 기부를 결정한 건 2014년 6월이다. 당시 일을 쉬면서 인근에 있던 성남동복지회관에서 급식 봉사 등을 도왔다고 한다. 홀로 성남시장실을 찾아 “전 재산을 사후에 성남시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기금에 사용하도록 경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성남시는 홍 할머니를 ‘행복한 유산 기부자 성남시 1호’로 등록했다.
기부 당시 시가 5억5000만원 상당이던 홍 할머니의 주택은 현재 12억원 상당이다. 홍 할머니는 기부 당시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성남에 살면서 이웃들의 도움을 받은 덕에 큰 걱정 없이 살게 됐다”며 “먼 친척이 있긴 하지만 나와 함께 살아온 주민들,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부 후에도 홍 할머니는 노인 일자리 사업과 자원봉사 활동 등을 이어갔다. 그러나 지난해 9월 낙상사고로 왼쪽 다리가 골절돼 수술 후 재활치료를 받아왔다. 올해 2월엔 오른쪽 다리뼈도 골절되면서 숨을 거두기 전까지 병원에서 생활했다.
홍 할머니는 2006년엔 서울대병원에 ‘사후 장기 기증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상태가 악화하면서 뜻을 이루진 못했다고 한다. 홍 할머니가 봉사활동을 했던 성남동복지회관 정안진 관장은 “홍 할머니는 의식이 많이 깨어있고, 바르게 세상을 살아오신 분”이라며 “설날이면 지역아동센터에 온 아이들에게 3000원씩 봉투에 담아 ‘세뱃돈’이라며 나눠주셨다”고 말했다.
홍 할머니가 투병하는 동안 성남시와 경기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성남동복지회관은 치료와 안부 확인 등 신상 관리에 나섰다. 장례식장에선 상주가 돼 조문객을 맞고, 입관과 운구, 화장, 안치까지 할머니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할머니가 남긴 12억원 상당의 유산은 지역 내 저소득층을 위해 쓰일 예정이다.
최모란 기자 choi.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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