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회 '친팔' 시위대 강제 퇴장…네타냐후 'ICC 체포영장' 덕 보나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가 친(親)팔레스타인 시위대의 항의로 수차례 중단되는 일이 발생했다. 미국 정치권이 친이스라엘·친팔레스타인 유권자들의 눈치를 보는 사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청구한 체포영장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오히려 이번 일을 정치적 돌파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21일(현지시간)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참석한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장엔 시작 전부터 붉은색 페인트를 손에 묻힌 친팔레스타인 시위대들이 방청석에서 무언의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블링컨 장관의 모두 발언이 시작되자 순차적으로 “블링컨은 전범이다”, “창피한 줄 알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블링컨 장관의 발언은 최소 6차례 중단됐고, 그 때마다 경호원 3~4명이 시위대를 한명씩 퇴장시켰다.
불편한 표정을 짓던 블링컨 장관은 “라파에서의 대규모 군사 작전이 민간인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와 관련해선 이스라엘에 매우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피난민이 집결한 라파를 공격하는 데 대한 반대 의견을 냈다. 그러면서도 ICC가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한 데 대해선 “의회와 함께 적당한 행동을 취할 수 있다면 기쁘겠다”며 네타냐후를 옹호했다.
이런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이 약속했던 가자 지구에 대한 인도적 구호품 보급은 중단 상황을 맞았다.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미군이 건설한 임시 부두를 통한 구호품 반입은 약탈 사태 등으로 사흘째 중단됐다. 앞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도 ”이스라엘군의 군사작전으로 라파에서의 식량 구호 활동이 전면 중단됐다”고 밝혔다.
AP통신은 “구호품을 안전하게 운송하는 데 필요한 조건을 이스라엘이 제공하지 않는다면 운송은 계속 실패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는 자신에 대한 체포 영장을 청구한 ICC의 결정의 부당함을 강조하며 목소리를 더 높였다. ICC는 네타냐후에 대해 전쟁에 대한 책임과 함께 “굶주림을 전쟁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한 상태다.
이에 대해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CNN과의 인터뷰에서 “영양실조로 사망하는 사람은 미국이 더 많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구 200만명의 가자에서 영양실조로 사망한 사람은 23명 또는 30명 정도”라며 “(인구 2억명이 넘는)미국에선 2022년 영양실조로 인한 사망자가 2만명으로, 이는 가자지구의 3배에 해당한다”고 했다.
체포 영장을 청구한 ICC 카림 칸 검사장에 대해선 “위허하고 거짓된 혐의를 씌운 불한당 검사”라고 비난하며 “이스라엘과 하마스에 동시 체포영장을 청구한 것은 나치 독일의 히틀러와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루스벨트를 동일 선상에 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미국, 영국, 독일 등에서도 이스라엘과 하마스에 대한 동시 영장 청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기류다. 특히 이스라엘에선 네타냐후를 압박해왔던 정치적 라이벌들도 네타냐후를 지지하며 ICC발 위기가 오히려 네타냐후의 정치적 입지를 공고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는 미국의 대선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 실제 이날 블링컨 장관은 ICC에 대한 의회 차원의 제재 움직임에 협력할 뜻을 밝혔고, 이스라엘을 방문 중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외교 참모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역시 “네타냐후에 대한 체포영장을 추진한 ICC 관계자들을 제재해야 한다”며 ICC의 결정에 대해 민주·공화당 모두 네타냐후를 지원하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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