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판 N번방 사건? 언론이 이렇게 부르면 안된다"
[유지영 기자]
▲ 서울대 동문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을 '서울대 N번방' 사건으로 명명한 언론 보도들. |
ⓒ 네이버 |
"N번방에서 발생한 범죄의 핵심은 아동·청소년 성착취, 성학대다. 아동·청소년 성보호법도 N번방을 계기로 개정됐는데, 언론에서 '서울대판 N번방'이라고 보도하면 대중들은 'N번방처럼 심각한가 보다'라고 여기고 넘기게 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가해자가 마음만 먹으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범행 도구로 쓸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고, 여성이든 남성이든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범죄다."
원은지 추적단 불꽃·미디어 플랫폼 얼룩소 에디터는 최근 서울대 졸업생이 포함된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과 관련해 언론이 '서울대판 N번방'으로 명명하며 기사를 쏟아내는 것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
그는 "(두 사건은) 비교가 불가능한 범죄다. 디지털 성범죄 관련 큰 사건이 나면 N번방 사건으로 호명되는데, 언론에서부터 제대로 불러야 한다"라고 말했다. N번방 사건은 2018년부터 2020년 초까지 텔레그램을 매개로 한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 범죄로, '박사방' 주범으로 잘 알려진 조주빈은 총 42년 4개월을 선고받았다.
"서울대생 아니어도 쉽게 저지를 수 있는 범죄"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21일 지인 등을 상대로 딥페이크 영상을 제작하고 텔레그램 등에 유포한 혐의 등으로 서울대 졸업생 2명과 공범 3명을 검찰에 넘겼다고 밝혔다. 원 에디터는 주범인 남성과 지난 2년 반 동안 텔레그램에서 대화를 주고받으며 그를 검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이번 사건의 경우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나 SNS 프로필 사진만 있으면 누구나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대비하고 싶어도 대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측면의 심각성이 잘 드러나 보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서울대생이 아니더라도 겪을 수 있는 피해고, 서울대생이 아니더라도 쉽게 저지를 수 있는 범죄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한다"라고 강조했다.
2021년에 인지된 이번 사건이 3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최근에 피의자 검거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데는 포기하지 않았던 피해자들 덕분이었다.
지난 2021년 7월경 서울대 졸업생인 피해자는 텔레그램에 가입하자마자 자신의 얼굴을 합성해 만든 딥페이크 영상을 무더기로 받았다. 그는 텔레그램 메시지가 담긴 핸드폰을 쥐고 경찰서를 방문했지만 경찰에서는 정작 '텔레그램은 잡기가 어렵다'면서 난색을 표했고, 결국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했다"면서 수사 중지·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피해자는 자신과 같은 피해를 입은 서울대 졸업생 11명과 함께 2021년과 2022년 각 지역의 경찰서에 고소장을 냈다. 하지만 '피의자 특정 불가'를 이유로 수사가 중단되고 끝내 불송치되자, 직접 가해자를 찾아나섰다. 그 결과 원은지 에디터와 만날 수 있었고 정보를 취합해 텔레그램에서 가해자에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2023년 12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재수사 지시를 받아 올해 초부터 수사에 나섰다.
원 에디터는 이에 "피해자가 직접 본인의 이야기를 갖고 언론사에 글도 쓰고 방송국과 인터뷰도 하면서, 불송치 결정이 난 이후에 항고, 재항고, 재정신청까지 사법 체계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하셨다"라면서 "피해자의 에너지가 없었다면 나도 (성범죄 가해자와의) 답 없는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1일 해당 사건을 다룬 전자책 <나 잡으려고 텔레그램 가입했어?>를 냈다.
▲ 21일 오후 보도된 MBC 뉴스데스크 자료 화면. |
ⓒ MBC |
원 에디터는 디지털 성범죄 수사인력 확충, 피해자 보호 등 수사기관의 적극적인 대처를 주문했다. N번방 이후로 불법 촬영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했는데도 여전히 수사기관은 '가해자 불특정'을 이유로 미진하게 대응한다는 것이다.
그는 "N번방 이후로 불법 촬영물을 시청하거나 소지만 해도 처벌이 가능하게끔 바뀌었다. 5년이 지난 이제는 불법 촬영물을 보면 범죄라는 합의도 생겼지만, 정작 수사 기관이나 입법 기관에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를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오프라인에서 범인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특별히 선진화된 기술이나 수사기법이 있어서가 아니라 2년 반 동안 대화를 하며 '라포(공감대)'가 쌓였기 때문이다. 다른 사건이 일어나 피해자가 경찰에 가도 여전히 못 잡을 가능성이 크다"라면서 "피해자 중 12명이 여러 군데 경찰서에 신고했음에도 경찰에서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누군지) 특정해오라는 식으로 대처를 했다"라고 아쉬워 했다.
그는 "또 피해자들이 신고한 사건이 관악경찰서로 배당됐는데, 해당 경찰서 수사관 1명이 맡은 사건이 한 해에 120건이 넘더라. 2년 반 동안 매일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대화하면서 느낀 건 수사관이 이걸 매일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었다"라고 털어놓았다.
▲ 원은지 에디터가 쓴 전자책 <나 잡으려고 텔레그램 가입했어?> 표지 사진. |
ⓒ 얼룩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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