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환 “시력 대신 청력과 기억력으로 무대에 섭니다”
송승환(67)은 1965년 8살 때 라디오 드라마로 데뷔해 60년 가까이 드라마, 연극, 영화를 오가며 연기를 하는 한편 ‘난타’ 등의 공연 프로듀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막식 총감독으로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그런데, 평창 동계올림픽 직후 그의 시력이 급격히 나빠졌다. 황반변성과 망막색소변성증으로 30㎝ 안쪽으로만 보이게 된 것이다. 그 거리를 넘어서면 짙은 안개가 가득 찬 것처럼 보인다.
2019년 시각장애 4급 판정에도 불구하고 송승환의 활동반경은 줄어들지 않았다. 2020년엔 원로 연예인을 초대해 대화를 나누는 유튜브 채널 ‘송승환의 원더풀 라이프’를 시작해 현재까지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구독자 수가 26만명에 달한다. 무엇보다 그는 배우로서 활동을 예전보다 많이 늘리고 있다. 올 상반기에는 코미디 연극 ‘웃음의 대학’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연극열전 20주년 기념 시즌의 두 번째 작품으로 지난 11일부터 6월 9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를 시작으로 6월 15~16일 대구 어울아트센터, 7월 5~7일 성남아트센터, 7월 12~13일 세종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다.
송승환은 최근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 대해서 “‘웃음의 대학’은 단순히 웃고 즐기는 코미디 연극이 아니다. 제도나 이념에 갇혔던 인간성의 회복을 그린 수작이다”며 “웃을 일이 점점 없어지는 요즘 웃음의 의미를 상기시켜준다”고 설명했다.
일본 극작가 미타니 코키가 쓴 ‘웃음의 대학’은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 전시 체제에서 희극을 없애려는 냉정한 검열관의 요구에 맞서 공연허가를 받기 위해 대본을 수정하는 극단 ‘웃음의 대학’ 전속 작가가 벌이는 7일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2008년 국내 초연 당시 폭발적 인기를 끌었으며 2016년까지 꾸준히 무대에 오르며 관객 35만 명을 모았다. 9년 만에 다시 돌아온 ‘웃음의 대학’에서 송승환은 서현철과 함께 검열관 역으로 더블캐스팅됐다. 지난 2020년, 2021년 국립정동극장에서 공연한 9년 만의 연극 복귀작 ‘더 드레서’ 이후 두 번째 작품이다.
“‘더 드레서’ 이후 차기작을 찾기 위해 여러 희곡을 읽어보던 중 ‘웃음의 대학’을 만나게 됐어요. 마침 연극열전에서 올해 이 작품을 준비 중이어서 같이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제가 더 나이를 먹으면 검열관 역할을 못 할 것 같더라고요.”
송승환은 11살이던 1968년 이진순이 연출한 ‘학마을 사람들’로 연극에 데뷔한 이래 ‘에쿠우스’ ‘유리 동물원’ 등 다양한 연극에 출연했지만 코믹한 연기는 2006년 ‘아트’가 거의 유일하다. 그는 “‘목욕탕집 남자’(1996) 등 김수현 선생님의 TV 홈드라마에선 코믹한 연기를 한 적 있지만, 무대에서는 코믹한 연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사실 ‘웃음의 대학’도 코미디지만 배우들이 코믹한 연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웃음의 대학’은 스토리의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관객들이 웃게 되는 점이 좋다”고 설명했다.
제대로 볼 수 없는 그에게 연습 과정이나 공연 도중 어려움이 없었을 리 없다. 하지만 앞서 출연했던 연극 ‘더 드레서’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청력과 기억력을 총동원해 극복했다. 대사는 녹음을 반복해서 듣는 방식으로 외우는데, 눈으로 읽는 것보다 오히려 암기 속도가 빨라졌다. 또 무대 위 대도구와 소도구의 위치를 기억하는 한편 상대 배우의 표정은 연습할 때 가까이 다가가 익혔다가 무대에서 연기할 때 떠올린다.
“잘 보이지 않는 만큼 귀가 예민해져야 해요. 상대 배우의 대사를 듣고 감성을 교감해야 하니까요. 무엇보다 같이하는 배우들과 많이 맞춰보며 연습한 덕분에 관객들은 잘 눈치채지 못하실 거에요. 그리고 무대에서 암전될 때 의자에 부딪히거나 단에서 떨어질 뻔한 것은 연출이 제가 무대에 있는 것으로 수정해준 덕분에 문제없습니다.”
송승환은 이번 작품 이후에도 일정이 빡빡하다. 7월엔 그가 제작한 어린이 뮤지컬 ‘정글북’이 올라가고 9월에는 파주출판도시에서 진행되는 ‘파주페어 북앤컬처’의 총감독으로 나선다. 그리고 10월엔 ‘더 드레서’의 재공연이 예정돼 있다.
“요즘 ‘웃음의 대학’ 이후 내년에 출연할 작품 후보로 여러 대본을 읽어보고 있어요. 제작자로서 작품을 만드는 것도 좋아하지만 앞으로 노역 배우로서 열심히 할 생각이에요.”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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