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웅빈 특파원의 여기는 워싱턴] 임금 인상보다 더 가파른 임대료… 쪼그라드는 美 가계

전웅빈 2024. 5. 22.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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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미국 일리노이주 글렌뷰 거리에 내걸린 주택 임대 광고판. 미국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면서 노동자 임금이 크게 늘었지만, 임대료 상승률이 임금 인상률을 앞지른 탓에 가계 재정이 악화됐다. AP연합뉴스

2019년 이후 임대료 30.4% 급등
임금 상승률보다 1.5배 더 치솟아
인플레 먹구름 고소득층까지 덮쳐
올 대선 최대 쟁점으로 부상할 듯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고점 대비 60%가량 하락했다. 특히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을 뺀 근원 CPI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3.6%까지 내려앉으며 2021년 4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낙제점을 주고 있다. 최근 블룸버그·모닝컨설트 여론조사에서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가 재정적으로 나았다며 향수를 느끼는 유권자는 과반(51%)을 차지했다. 인플레이션 데이터 너머에 물가 상승 압박을 받는 유권자들의 분노가 만연하다는 의미다.

실제 미국인들의 주머니는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최근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은 코로나19 팬데믹 때인 2021년 8월 미국 가계의 초과 저축액이 2조1000억 달러로 역대 최고 수준에 달했는데, 올해 3월에는 720억 달러 감소로 돌아섰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2년7개월 만에 미국 가계 통장 잔고에서 2조 달러 이상이 증발한 것이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는 동안 미국 노동자 임금은 크게 늘었지만, 물가 상승률이 그보다 더 가팔랐기 때문이다. 부동산 정보업체 질로우는 2019년 이후 임대료 상승률이 임금 상승률보다 1.5배 높았다고 분석했다. 지난 4년간 미국 임대료는 30.4% 상승했는데 임금 인상률은 20.2%에 그쳤다. 특히 미국 50대 대도시 중 44개 지역에서 임대료 상승률이 임금 인상률을 앞질렀다.

지역별로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와 탬파 지역은 임대료 상승률이 각각 52.6%, 50%에 달했지만 임금 인상률은 20.4%, 15.3%에 그쳤다. 임대료로 내는 돈이 급증하는 동안 월급은 소폭 오르면서 가계 재정이 크게 악화된 것이다.

소득 증가분보다 급격한 임대료 인상은 대선 승패를 가를 주요 경합주에서도 도드라졌다.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경우 임대료 상승률(39.1%)과 임금 인상률(16.6%) 격차는 22.5% 포인트에 달했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와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미시간주 디트로이트도 임대료와 임금 증가율 격차가 두 자릿수(19.9~23.4% 포인트)로 집계됐다.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는 격차가 9.8% 포인트였고, 위스콘신주 밀워키만 임금 인상률(26.3%)이 임대료 상승률(25.8%)을 소폭 앞섰다.

CBS방송은 “임대료가 임금 인상을 앞질렀다는 건은 많은 미국인들이 월급 대부분을 주거 자금에 사용하고 식료품이나 저축, 보육 등 다른 필수 소비에 인색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필수 소비재 가격도 올랐다. 비영리 단체 ‘차일드 케어 어웨어 오브 아메리카’는 “미국에서 두 자녀 평균 보육비용이 50개 주 전체 평균 임대료를 앞질렀다”며 “45개 주에서 보육비가 평균 모기지 대출 상환금보다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미국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소의 ‘가계 예산 계산기’에 따르면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2자녀 보육비(각 4세, 8세 기준)는 월평균 3100달러로 주택 가격(2베드룸 아파트 기준 2033달러)보다 1000달러 이상 많았다.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72%가량 몰표를 던진 미시간주 워시테노 카운티도 보육비가 2151달러로 주택 가격(1383달러)보다 768달러 더 들었다.

가계 재정 악화는 소비자들의 소비 습관을 변화시키고 있다. 지난주 발표된 월마트 1분기(2~4월)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 증가한 1615억 달러로 전문가 예상치(1595억 달러)를 뛰어넘었다. 그런데 매출이 늘어난 것은 고소득 소비자 유입 때문이라고 월마트는 설명했다. 저가 제품을 주력 상품으로 내놔 중산층 이하 소비자들을 겨냥해 왔는데, 최근 고소득 소비자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미국 금융중개회사 LPL 파이낸셜의 제프리 로치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지난 몇 년 동안 경제는 가계 지출이 주도했지만 이제 소비자들은 ‘지출을 줄이자’고 말하기 시작했다”며 “드디어 인플레이션 압력이 고소득층까지 덮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경제는 여전히 강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최근 둔화했다”며 “임금 상승률이 감소했고 미국인들은 주택이나 자동차, 세탁기와 같은 대형 구매를 미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플레이션과 그에 따른 가계 재정 악화는 대선의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ABC방송이 입소스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올해 대선 투표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이슈(중복 응답)로 경제(88%)와 인플레이션(85%)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범죄(77%), 의료복지(76%), 민주주의(76%) 순으로 나타났다. 이민자(69%)나 낙태권(57%), 이스라엘 전쟁(48%)은 순위가 낮았다.

같은 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경제나 인플레이션을 잘 다룰 것이라고 답한 비율은 각각 48%, 44%에 달했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 경제정책의 신뢰도보다 14~16% 포인트 앞선 수치다. WP는 “바이든의 정책이 미국인들 재정 상황을 개선시켰다고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민주당 캠페인에는 새로운 부담”이라며 “올가을 대선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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